탈원전 논란속 "전력사용 줄여라"..정부, 3000여 기업에 '급전지시'

이승호 2017. 8. 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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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두 차례 3~4시간 전력 감축 지시
7일엔 급전지시 테스트 감축 시험 실시
수요관리 통해 전력량 확보하는 DR시장
기업에 전력 감축분 만큼 보조금 지급해
탈원전 추진 정부가 예비율 맞추려 했단 주장도
지난 3일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연합뉴스]<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부가 올해 들어 두 차례에 걸쳐 기업들에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급전(給電) 지시’를 내렸다. 7일에도 급전 지시 전 테스트인 ‘감축 시험’을 벌였다. 탈(脫) 원전 반대 진영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전력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기업의 전력사용에 억지로 개입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에 적정한 보상금을 주고 시행한 적법한 조치란 입장이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지난달 12일과 21일에 각각 3시간과 4시간 동안 전력을 감축하라는 급전 지시를 내렸다. 급전 지시는 최대전력 관리를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수요자원거래(DR·Demand Response)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2011년 9·15 대정전으로 전력예비율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은 뒤 정부가 2014년 11월 만든 제도다.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겨울 ‘피크 타임’에 공장, 대형건물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기업이 전기 사용을 줄이면 그 양만큼을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전기를 아낀다’는 의미로 전력 단위인 ‘메가와트(Megawatt)’와 ‘네거티브(Negative)’를 합친 ‘네가와트(NegaWatt)’시장으로도 불린다. 지난 6월 기준 3195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7일에도 급전 지시 제도에 참여하는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감축 시험을 했다. 감축 시험은 급전 지시가 내려질 경우 전력사용을 감축하기로 계약한 기업들이 실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다. 실제 전력수요를 감축할 상황이 발생해 기업에 이를 즉시 지시하는 급전 지시와 다르다. 앞서 전력거래소는 지난달 20일과 24일에도 하계 감축 시험을 했다.

하지만 급전 지시는 지난달 두 차례 외에 2014년 12월 18일, 2016년 1월 28일과 8월 22일 등 제도 도입 이후 총 5차례만 내려졌다. 이 같은 점을 들어 탈원전 반대 진영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전력수급량이 논란이 되는 걸 막기위해 급전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한다.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경우 안정적인 발전 수단인 원전을 줄이면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로 인해 정부가 무리하게 급전을 지시해 전력 예비율을 두자리 수로 맞췄다는 것이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은 “생산현장의 전기를 과도하게 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도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전기를 차단하면서까지 무리한 졸속원전을 추진하지 말고, 기업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력량을 운용해주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부는 지난달 나온 2번의 급전지시가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전력시장운영규칙에서 급전지시를 내릴 수 있는 조건은 세 가지 정도다. ▶전력수급 경보가 ‘준비단계’ 나 ‘관심단계’에 해당ㆍ예상되는 경우 ▶전력수요 예측값이 직전 같은 기간 의 계통최대전력을 갱신하거나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또는 당해연도 목표수요를 초과하거나 그럴걸로 예상되는 경우 ▶수요예측 오차 및 대규모 발전기 고장 등 수급 상황이 급변하는 경우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급전 지시는 일부 발전기 고장에 따른 조치였다. 같은달 21일은 무더위로 작년 최대수요인 8만5180㎿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 21일엔 최대전력이 올해 최고치인 8만4586㎿를 기록하며 여유 공급량을 의미하는 ‘공급예비율’이 올 여름 가장 낮은 수준인 12.3%를 기록했다.

최우석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DR시장은 전기사용자가 전력수요를 자발적으로 감축하고 시장에서 보상을 받는 제도”라며 “7월은 설비예비율은 높았으나 최대전력 경신이 예상되는 등 (급전지시) 기준을 충족해 이를 시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탈원전을 위해 인위적으로 예비율을 높이려 무리하게 전기사용을 줄이도록 요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DR 제도를 활용하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최대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 발전소를 더 짓기 보다는 수요를 관리해 전력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시장이 처음 개설돼 1.4GW였던 전력감축 가능량은 점점 늘어 지난해 1월 2.8GW, 최근에는 4.4GW 수준이 됐다.

최근 신규 원전 1기의 발전용량이 1.4GW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원전 3기를 더 짓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신규 발전소 건설보다 에너지 효율화 등 전력사용 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수요관리는 전력수급 정책에서 앞으로 개척해야할 신 분야”라며 “그동안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던 DR 시장이 이번 급전지시를 통해 기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향후 급전 지시 대상에 일반 가정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이런 수요관리 비중을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DR 시장만 믿고 발전설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에너지 수요량이 폭증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DR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닌 기업체가 과거보다 전력사용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추정치에 불과하다”며 “기업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면서까지 전력생산을 줄이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R을 통한 수요관리 예측이 혹시라도 어긋날 경우 전력수요는 단기에 높아질 수 있다”며 “발전설비 확보를 병행해 여유있는 전력예비율 확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희 교수는 “정부가 급전 지시 사실을 보도자료 등을 통해 알렸다면 탈원전 논란을 의식했다는 비판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며 “탈원전 찬반 논란이 첨예한 상황에서 급전 지시의 필요성과 효과를 제대로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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