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김석 2017. 8. 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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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때 같은 자식을 잃어버리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삶.

숨 쉬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녹취> 박금자(장기 실종아동 정희택 어머니) : "후회할 저기가 없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맨날 우는 거야 그냥. 그래도 이 마음의 고통이 안 없어져."

실종된 아이를 찾아 헤맨 20년 세월.

생업은 포기한 지 오래, 화목했던 가정도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녹취> 정혜경(장기 실종아동 김하늘 어머니) : "하늘이 잃어버리고 (남편이) 180도 변한 거예요. 술만 먹으면 너 때문에 하늘이 잃어버렸다고…"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은 죄책감과 절망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오늘도 실종된 아이를 찾아 거리로 나서고 있는데요.

현재 실종된 아동은 6백여 명,

이들을 찾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경기도 안산의 한 주택가.

장기 실종아동 정유리 양의 집입니다.

유리가 실종된 건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1년, 만 11살 때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바로 그 해였습니다.

정원식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북받쳐 오릅니다.

<인터뷰> 정원식 : "장기 실종아동 정유리 아버지 "개구리 소년 그 얘기들밖에 안 했잖아요. 그 당시. (한숨) 그리고 나는 얘 잃어버리고서는 참 한동안은 솔직히 얘기해서 입이... 말문을 닫다시피 했었어요. 그냥 성질만 나고."

딸의 행방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아버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딸의 실종 장소를 다시 찾았습니다.

당시에도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는 이 공원에서 유리 양은 친구들과 놀다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목격자 한 명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정원식(장기 실종아동 정유리 아버지) : "반은 미쳐있었으니까. 그런 거 저런 거 생각 않고서는 그렇게 다녔어요. 그렇게 다니고... (근데도 봤다는 사람은?) 없어요. 봤다는 사람은."

<녹취> "잃어버린 자식 찾고 있습니다."

<녹취>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딸의 얼굴이 담긴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벌써 몇 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

딸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딸을 잃어버린 26년 전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아버지의 시계.

다시 만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편지에 적어 띄웁니다.

<녹취> "유리야. 네가 세상에 태어나 아빠 품에 안기던 때를 아빠는 잊을 수가 없구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딸인데 너는 지금 내 곁에 없구나. 유리야,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건 맞지? 언젠가 엄마 아빠 눈동자에 네 모습을 담을 수 있겠지? 사랑한다 유리야. 우리 빨리 만나자."

10년 이상 장기 실종아동은 전국적으로 240여 명.

오랜 기간 아이를 찾아 헤매다 보면 가족의 단란했던 삶도 함께 실종되고 맙니다.

심지어 가정 해체로까지 이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인터뷰> 김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소장) : "70%가 자살이나 이혼의 상태에 있어요. 장기실종 같은 경우에. 그리고 이제 찾기 활동에 매진하다 보면 직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가 없고 하기 때문에 실직이 되거나 또 가계 경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게 돼요. 그런데 이게 언제까지 이어지느냐. 아이를 찾을 때까지잖아요."

실종아동을 찾고 가족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률이 만들어진 건 지난 2005년.

관련 법이 만들어지면서 실종아동 문제를 전담할 민간기구도 꾸려졌습니다.

해마다 이곳에 접수되는 2만여 건의 실종 사건 가운데 끝내 가족을 못 찾는 경우는 최근엔 극히 드뭅니다.

CCTV가 곳곳에 설치돼 있고 경찰의 수사 역량도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10년, 20년이 넘은 장기 실종아동들.

워낙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속적인 경찰 수사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실종아동 정책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마저 줄었습니다.

<인터뷰>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예방도 중요하고 찾기도 중요하고 굉장히 다양한 의미에서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실제로 계속 예산이 느는 것이 정상이지 이렇게 예산을 줄이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선순위가 그렇게 낮을 수밖에 없는 이런 생각이 들고요."

지난달 13일, 인천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

선수들의 옷차림이 다른 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자기 이름 대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고 경기에 나선 겁니다.

바로 장기 실종아동의 이름입니다.

<녹취> 야구 중계진 : "행사의 취지를 모르시는 분들은 어 윤희상 선수 뒤에 이름이 왜 김하은이지 하고 놀라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김하은 선수는 실종아동의 이름입니다."

장기 실종아동을 찾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선수부터 감독까지 모두 실종아동의 이름을 달았습니다.

<인터뷰> 최정(SK 와이번스 선수) :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열심히 찾으려고 노력하시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저희도 최대한 많이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경기 전 시구 행사에 나선 두 사람.

이재인, 이영희 씨 남매입니다.

두 사람에겐 놀랍도록 극적인 사연이 있습니다.

거리에 전차가 다니던 1960년대 서울 남대문시장.

1965년 8월, 당시 만 7살이었던 이영희 씨는 노점상을 하던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갔다가 그만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그 길로 영영 이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게 50여 년 세월이 흘러 지난해 10월.

과자 봉지 뒷면에서 우연히 실종아동의 사진을 본 이 씨의 가족이, 실종아동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이 나왔습니다.

50여 년 전에 실종된 이영희 씨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놀랍게도 친오빠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52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인터뷰> 이재인(오빠) : "낯설지가 않아요. 어머니가 젊어서 살아오신 것 같아요. 그래서 아, 그냥 눈물이 나올라고 먹먹했어요. 왜냐하면 얘가 여자의 몸 가지고 그동안 살아온 거, 그것만 생각하다 보니까는..."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남남으로 살았을 두 사람.

이제 가족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삶의 시작점에 섰습니다.

<인터뷰> 이영희(동생) : "저희 오빠가 정말 저희 오빠잖아요. 피를 나눈 오빠. 우리 엄마가 낳으신 저희 오빠잖아요. 오빠라는 그 단어가 이거구나."

2014년에도 40년 동안 생사를 몰랐던 엄마와 딸이 극적인 상봉을 했습니다.

유전자 검사 덕분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실종아동과 장애인을 찾은 경우는 400건에 달합니다.

<인터뷰> 김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소장) : "아, 가족들이나 우리 관련된 기관들에서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런 어렸을 때의 실종의 기억이 있거나 또 부모 가족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서 한 번 행동을 해보는 것이 시도를 해보는 노력이 어쩌면 더 빨리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유전자 검사 절차도 의외로 간단합니다.

신분증명서를 가지고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뒤 유전자를 채취하면 끝.

수집된 유전자 정보는 곧바로 실종아동전문기관으로 넘어가 실종아동을 찾는 데 사용됩니다.

<인터뷰> 박철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아동계) : "장기실종자 발견에 이 유전자 분석 사업이 효과가 매우 큽니다. 실종아동등 또는 그 가족분들께서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채취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장기 실종아동 가족에게 또 하나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바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개발한 3D 몽타주 시스템입니다.

실종아동의 사진에 인공 지능 기술을 적용해 얼굴 윤곽, 피부 처짐과 주름, 피부색 변화 등을 계산한 뒤, 현재 나이를 선택하면, 실종아동의 현재 모습에 가까운 얼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12살 때 사진을 변환한 몽타주가 결정적인 단서가 돼 38년 전에 실종됐던 한 남성이 극적으로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인터뷰> 김익재(한국과학기술연구원 영상미디어연구단장) : "원래는 장기미제사건의 해결에도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실종된 가족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실종아동 찾기 쪽에 좀 더 무게를 싣고 그런 쪽에 많이 활용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이른바 태완이법이 발효되자 경찰은 장기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을 만들었습니다.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중요 미제사건 4건이 해결되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하지만 실종아동 문제는 아직도 사법당국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인터뷰>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이게 내 문제가 될 수 있다 라고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정책 입안자도 훨씬 더 관심을 많이 가져주실 거고 그러다 보면 예산과 인력이 확대되고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찾아지고 실종문제가 없는 그런 나라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2017년 6월 말 현재 18살 미만 실종아동은 600여 명.

이들이 부디 무사히 돌아와 주길 가족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석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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