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42번가' 김석훈, "사람· 숲 공부 중..연기가 최종 목적지 아냐"

정다훈 기자 2017. 8. 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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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보다 중요한 건 공기와 자연..숲 해설가를 꿈꿔"

[서울경제] 지난 5일 디큐브아트센터 개막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무명의 코러스 걸 페기 소여가 스타가 되는 과정을 화려한 탭댄스 군무와 함께 담은 뮤지컬이다.

1980년 뉴욕 윈터 가든 극장에서 초연한 뒤 브로드웨이에서만 5,000회 이상 공연됐다. 국내에서는 1996년 초연 이래 20년 간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30여 명의 앙상블들이 타임스텝으로 탭댄스를 추는 오프닝 무대인 “오디션” 씬을 시작으로, 21주년 공연에서는 뉴 버전부터 추가된 계단 씬(Stair Scene)과 거울 씬(Mirror Scene), 메이크업룸 씬(Make-up room Scene) 등의 완성형 무대를 선보여 호평을 이끌어냈다.

배우 김석훈/사진=샘컴퍼니
김석훈은 신참내기 페기 소여를 스타로 키우는 카리스마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을 맡아 14년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데뷔 20년 차 배우 김석훈은 이지적인 외모와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지닌 반듯한 이미지 배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연기가 배우로서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숲 해설가등 전달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의 삶의 철학은 곰곰이 새겨들을 이야기들이 많았다.

◇ ‘킹 앤 아이’(왕과 나) 이후 14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 14년 만에 하는 뮤지컬이라 무척 떨려요. 드라마 촬영은 안 떨리는데, 공연은 엄청 떨려요. 그래도 무대를 좋아해서 그런지 조명을 받으면 힘이 나요. ‘아 해볼까’ 그럴 때가 있어요. 사실 뮤지컬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요. 공연을 보러간다면 연극 보단 뮤지컬을 보러가는 편이죠. 하다보니 뮤지컬은 많이는 출연하지 않았네요.

◇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페기소여가 주인공인 뮤지컬이다. 이번에 맡은 줄리안 마쉬 역은 그리 비중이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 비중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중요한 건 내가 이 역할을 ‘이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요. KBS 드라마 ‘징비록’ 속 이순신 역을 제안 받았을 때는 굉장히 망설였어요. 그의 고민과 시대적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반대로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줄리안 마쉬는 이해하기 쉬웠어요. 내 주변에 연출가도 많고, 현장에서 직접 봤으니까요. 배우 출연이 불발 됐을 때 연출가들이 얼마나 힘들고 다급한지는 정말 잘 이해하죠. 한마디로 연출가의 얼굴은 간암 말기 환자처럼 낯이 완전히 흙빛이에요. 저희 공연 42번가처럼 갑자기 대타가 스타가 되는 케이스도 수 없이 봤구요. 그래서 이건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무엇보다 수 많은 코러스들이 주인공인 뮤지컬입니다.

사진=CJ E&M㈜, ㈜샘컴퍼니
◇ 인간에 대한 이해에 중심에 둔 배우인 듯 하다.

▶ 어린 시절 배우 수업을 들을 때도 ‘사람을 많이 알아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은 사람이 연기를 잘 해요. 이해가 가야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인물에 너무 빠져서 하지는 않아요.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온전히 빠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성적으로 정확히 이해함과 동시에 감성적으로도 어느 정도 빠져야 되겠죠. 단 전 너무 역할에 빠지면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가 재미없죠. 다큐멘터리 같고. (웃음)

◇ 캐릭터에 대한 공감도를 먼저 보는 배우라면, 이번 ‘브로드웨이 42번가’ 대본을 보고 하나 하나 꼼꼼하게 접근해 나갔을 것 같다.

▶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뉴욕을 배경으로 해요. 캐릭터 이름에 따라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요. 페기소여 성장기가 주요 내용인데, 이 친구의 이름은 마가렛의 줄임말을 써요. 마가렛은 정확하게 영국인이거든요. 그렇다면 줄리안 마쉬는 어떤 나라 출신일까 생각해 봤어요. 하나 어원을 따져보니, 줄리어스가 로마의 황제 줄리어스 시저에서 나온 거예요.

그렇게 추론을 해나가다 보니 이탈리아인 아니면 스페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성적인 독일 혹은 영국 쪽 출신은 아닐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 쪽은 철학이 발전한 나라여서 그런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생각을 먼저 해서 ‘공연을 하지 말아야겠구나’란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이탈리아인이라면 할 수 있다 생각했을 듯 해요. 신참 배우를 36시간 안에 응원과 채찍을 번갈아 주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습성이랑 닮은 점이 많은 쪽이 이탈리아 사람들이라고 들었어요.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엄마 무지 팬다고 하잖아요. 불 같이 화를 내지만 속정이 있어요. 어찌보면 줄리안마쉬가 우리나라의 걸걸한 연극연출가랑 비슷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역할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 지금까지 유인촌, 남경주, 송일국, 이종혁 등이 줄리안 마쉬를 연기했다. 이전 배우들과 다른 포인트가 있나?

▶ 저도 오래전에 호암아트홀에서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본 기억이 있어요. 저는 쇼 코미디는 처음이라 감은 아예 없어요. 어떤 작품이든 시작 전에 인물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줄리안 마쉬도 꽤 꼼꼼하게 탐구했어요. 극을 끌어가기 위한 연출가 역이잖아요. 전체적인 극은 제가 끌어가니까요.

이번 작품도 늘 하던 대로 인물 분석을 했을 뿐이고, 완성된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그저 즐기면 될 것 같아요. 대본을 보면 배우가 이 말을 왜 하는지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배우로서 탐구를 하는거죠. 원작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영어 대본도 계속 보고 있어요. ‘이건 쇼 뮤지컬이야’ 라고 반기를 들면 사실 난 할 말이 없어져요. 속으론 대사가 있는 이유가 단순히 의미 없이 그렇지만은 않을텐데라고 생각하죠.

◇ 극중 ‘바보처럼 나가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넌 스타가 돼 있을거야’ 란 줄리안 마쉬의 대사가 나온다. 이렇게 한 순간에 스타가 된 경험을 갖고 있나.

▶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20년 전에 드라마 ‘홍길동’을 찍고 있을 때였어요. 민속촌에서 촬영을 하는데 사람들이 신인인 저보단 다른 배우들에게만 몰리는 거예요. 아직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거든요. 주인공이었지만 그 누구도 제 얼굴을 모르는 거죠. 씁쓸하게 앉아있는데, ‘야 석훈아. 어깨 올려. 첫방 나가면 달라진다. 너 인생이 변한다.’고 했어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실제로 방송을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몰리더군요. 그래서 더 줄리안 마쉬의 말이 이해가 잘 되고 진심을 담아서 말 할 수 있어요.

배우 김석훈/사진=샘컴퍼니
배우 김석훈/사진=샘컴퍼니
◇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을 쇼 뮤지컬의 마지막 맛을 조율하는 역을 톡톡히 할 듯 하다

▶ 쇼뮤지컬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정확하고 재미있게 보면 된다고 봐요. 무엇보다 배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또 하나의 감동을 줄 수 있어요. 감동은 아니고 재미만 주면 약간 비빔밥에 참기름이 빠진 느낌이랄까. 재미에서 감동까지 가면 공연 자체의 시너지가 나잖아요. 그걸 제가 다 가슴에 담아놓고 2달간 연습을 했어요. 결과는 어떨지 몰라요.

◇ 분석력이 뛰어난 걸 보니 연출가를 해도 좋겠다. 연출가에 대한 관심은 없나?

▶ 없어요. 인물 분석에는 관심 있지만, 작품 분석에는 관심이 없어요. 관심 있는 건 숲 해설가요. 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나무 그늘, 초원 등을 좋아해요.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 중입니다.

◇ 숲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지금까지 사람에 관심을 가졌다면, 숲에 눈길을 돌리고 있어요. 우리 사람이 사는데 제일 필요한 게 공기잖아요. 예를 들면 오늘 황사가 발령 됐다고 하면 외출하지 말라고 해요. 숨 쉬기도 힘든데 누가 공연장에 가겠어요. 그건 아무 필요 없는거죠. 아이슬란드에 화산 터졌을 때 칸느 영화제도 다 취소됐어요. 홍수가 났는데 뮤지컬 보러갈 사람이 있나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뭐가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봐요. 예술보다 중요한 건 공기와 자연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 SBS ‘궁금한 이야기Y’ 진행 및 내레이션은 물론, 클래식음악 콘서트 사회자로 나서는가 하면 클래식 라디오 진행도 맡고 있다.

▶ 궁금한이야기 Y. 라디오진행과 내레이션은 하고 싶어서 했어요.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달자’가 목표예요. 배우는 작품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누구의 전달자가 돼준다는 게 가장 위대한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전달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 1998년 중앙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국립극단에 입단했고 드라마 ‘홍길동’ PD가 국립극단을 찾아오면서 연극계를 떠나게 됐다. 매체를 넘나들면서 활동을 이어 온 데뷔 20년 차 배우이다. 그동안 깨달은 게 있다면?

▶ 너무 많은데, 우선 전 “연기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숲 해설가를 한다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연기자가 목표이면 끝까지 해야 해요. 연기가 목적이었으면 연기 외엔 안 했겠죠. 전 ‘전달’하는 게 목적이에요. 연기자란 수단이 꽤 훌륭해요. 전달자 중에 상위 세 그룹의 직업이 있다면 대중연기자, 예술가, 정치인을 들 수 있어요. 그 만큼 훌륭한 직업인 것 같아요. 전달자로 끝나는 게 아닌 “무엇을 전달하느냐”가 중요해요. 무조건 가는 게 목표인 친구라면, 그러다 확 절벽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아요.

◇ “너 왜 연기해?” 란 원론적인 질문에 신선한 답변을 듣고 있는 듯 하다. 이 생각을 언제부터 했나?

▶93년 94년생 크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가끔씩 해요. 20대 때 모르면 평생 고생하거든요. 고생하는 사람 많이 봤죠. 전 20대 빨리 깨달은 편이에요. 누가 알려주진 않았어요. ‘왜 이일을 하냐’란 질문에 답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그냥 좋은거야’란 느낌을 받았어요. 좋기야 좋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행복감이 크니까요. 그렇다면 재미있으면 된 건가?란 질문이 남아요. 내가 ‘이거다’ 싶으면 돈 안 받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즐거움은 금방 사라져요. 한번 상처받으면 그 즐거움은 금방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배우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연기자 인생만을 놓고 보면 ‘망했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내가 연기자가 목표였다면 ‘자살할거야’란 극단적인 생각도 했겠죠. 하지만 전 행여나 그런 상황에 처해도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거라고 봐요. 애초부터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말 한 적도 없고, 무대에서 죽을거야 라고 말 한 적도 없어요. 결론적으로 ‘이걸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이 확고히 서 있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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