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근의 푸드테라피] 돼지감자는 감자가 아니다

글 조홍근(내과 전문의) 2017. 8.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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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옥수수, 밀, 쌀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식물이다. 우리에게 너무 친숙해서 이 식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200년도채 안 되었고, 남미에서 유럽으로 소개된 지 겨우 500여 년밖에 안 된 비교적 새로운 작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감자의 역사

감자는 고구마와 달리 비가 적고 추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안데스 고산지대가 원산지로, 1만7000년 전 이미 야생감자가 남미 지방에 번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최소한 1800년 이전부터 경작되었다고 한다. 감자는 콜롬부스의 신대륙 침략 이후 30년이 지난 1570년경이 돼서야 처음으로 스페인에 소개되었다. 유럽인들에게 별로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진 고구마와는 달리 감자는 외모와 출신 때문에 사람이 먹는 식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우리가 먹는 감자는 땅 속에 퍼져 있는 줄기의 특정 부분이 열매처럼 부푼 부분인데(덩이줄기: tuber) 땅에 묻혀 있고 표면도 우둘투둘해서 유럽인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감자의 전파

아일랜드에서는 17세기부터 이미 감자가 인기였는데,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와 관련이 깊다. 오랫동안 영국 통치를 받던 아일랜드는 앵글로-색슨 계열의 영국인과 달리 골족 또는 켈트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곡물이라는 곡물은 거의 영국에 공출당해서 일반 농민과 서민들은 늘 굶주리다시피 했는데, 키우는 데 손이 덜 가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며 영국인들이 먹지 않는 감자는 그야말로 그들의 구세주고 축복이었다.

그러나 감자가 오늘과 같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데에는 단연코 미국의 역할이 컸다. 미국인들은 유럽인과 달리 음식에 대한 계급적 편견이 없었다. 감자 자체의 맛과 영양과 가능 성에만 주목하고 감자를 거의 국민적음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지금도 인기가 많은 포테이토칩은 미국적 발명품이다. 1850년경 새라토가 스프링스의 반달호텔에는 당시 최고 요리사인 조지 크럼이 있었다. 자부심이 높은 그에게 어떤 손님이 감자튀김이 너무 두껍다고 불평을 하자 골탕을 먹이려고 감자를 최대한 얇게 썰어 튀긴 후 소금을 마구 쳐서 내보냈는데 그게 오히려 반응이 좋아 대량생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감자가 들어온 경로와 시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설명이 있다. 가장 유력한 추정은 1862년 김창한이 쓴 《원저보》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다. 1832년 영국의 상선 ‘로드 엠허스트’호가 태안반도에 한 달 동안 체류했을 때 네덜란드의 선교사 찰스 구즐라프가 농민들에게 ‘마령서’의 종자를 농민들에게 주고 재배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감자의 명칭이다. 감자는 한문으로 ‘감저’에서 나온 말로 생각되는데 사실 감저는 ‘달다’는 뜻으로 고구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감자는 마령서 또는 ‘북감저’라고 불렀다.

감자의 영양학

감자는 탄수화물이 풍부한 대표적인 음식이다. 100g당 77kcal의 열량이 있고 탄수화물이 92%, 단백질이 7%정도의 열량을 준다. 100g당 탄수화물은 18.4g인데 녹말이 15.4g, 당류가 0.8g이고 식이섬유가 2.2g으로 하루 요구량의 9% 정도다. 비타민C가 풍부해서 하루 요구량의 33%를 충당할 수 있으며 비타민B군이 비교적 풍부하다. 반면 비타민A와 D는 전혀 없다. 그래서 감자를 우유와 함께 먹으면 완벽한 비타민 섭취가 된다는 말도 있다. 감자는 가열하게 되면 소화가 쉽게 되는데, 당지수가 높다. 감자 종류와 같이 먹는 음식에 따라 다르지만 당지수가 70~90 정도로 혈당이 빨리 올라간다. 감자를 그렇게 사랑했던 미국에서는 당뇨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감자 소비라는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약 2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요리 방법과 상관없이 감자를 일주일에 두번 이상 먹게 되면 제2형 당뇨병의 위험이 증가했다. 가끔 감자와 고구마 중 어느 것이 더 나쁘냐는 질문을 듣는데, 당뇨인이 아니라면 둘다 가끔 먹는 것은 문제가 없고, 당을 조절해가는 과정에 있는 당뇨인은 당분간 모두 금지하는 것이 좋다. 물론 조절이 아주 잘 되는 경우에는 상황에 맞게 먹는 것은 무방하다.

돼지감자는 감자가 아니다

가끔 돼지감자가 당뇨병에 좋은 지문의받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돼지감자는 이름이 감자이지 감자가 아니다. 돼지감자는 북미가 원산지이며 감자와는 전혀 다른 국화과 식물이다. 영어로는 ‘예루살렘 아티초크(Jerusalem Artichoke)’라고 하는데, 원래 우리나라 이름은 ‘뚱딴지’라고 한다. 워낙 번식력이 좋고 아무데서나 막 자라 상황에 맞지 않게 엉뚱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돼지감자는 열량이 100g당 73kcal이고 탄수화물은 17.4g으로 열량 면에서 감자와 비슷하게 많다. 돼지감자가 당뇨병에 좋다고 하는 이유는 이뉼린(inulin)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소가 많기 때문이다. 돼지감자 외에 이뉼린이 많은 대표적 음식은 치커리, 아스파라거스, 양파, 마늘, 토마토, 바나나, 대파 등이다. 이뉼린은 인슐린과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돼지감자에 천연 인슐린이 많다는 엉터리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이뉼린은 프룩탄(fructan)이라는 과당 중합체의 일종인데 사람의 소화액에 분해가 안 되고 장내 미생물에 의해서 부분 분해가 된다. 섬유소는 장내에서 당과 지방의 흡수를 막고 지연시켜 당뇨병과 고지혈증의 치료에 보조적인 방법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돼지감자와 당뇨병에 대한 연구는 ‘Pub-med’라는 공신력 있는 논문 검색 엔진에 23개 정도밖에 검색되지 않을 정도이며, 그나마 사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좋다는 증거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이뉼린이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돼지감자를 만병통치약으로 오해해서 균형잡힌 식사와 운동요법과 약물요법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특히 돼지감자가 당뇨병에 좋다는 소문에 감자도 좋을 것이라고 유추해석해서 감자를 많이 섭취하면 혈당 조절에 큰 곤란을 겪게 된다. 돼지감자는 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홍근 당뇨와 혈관질환의 전문가로 예방과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내과 전문의. 주요 매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며, 의사는 물론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정기적으로 질환의 메커니즘을 쉽게 풀어 쓰는 글을 쓰고 있다. 《죽상동맥경화증과 지질대사》, 《대사증후군》, 《내몸 건강 설명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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