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의 사람·사이-박종운]"보기 좋게 찍혔다" 원전 비판 원전 학자

서의동 선임기자 입력 2017. 8. 4. 21:46 수정 2017. 8. 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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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원전 안전’ 전공 박종운 교수
ㆍ“한국형 원전이 세계 최고 수준? 주요국 중 한국만 원천기술 없어”
ㆍ“원전 늘면 연구비도 늘어…학계, 더 나서서 사업자 이득 대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의 건설 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원자력계가 똘똘 뭉쳐 반발하고 있다. 원자력 학계는 집단성명도 두 차례나 냈다.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인 박종운(53·사진)은 이 대열에서 비켜서서 원전 추진파들의 주장들을 논박하고 있다. 원자력 학계의 ‘핵심 학맥’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에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13년간 근무해 현장 사정에도 밝은 박종운이 정면으로 반기를 들자 원자력 학계는 적잖이 당황한 듯 ‘단톡방’에서는 성토 글이 난무한다.

지난달 31일 월성원전에서 멀지 않은 동국대 경주캠퍼스 연구실에서 박종운을 만났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월성원전까지 길찾기 검색을 해보니 곡선거리로 41㎞였다. 직선거리로는 불과 30㎞쯤 된다.

‘원전사고 대응과 안전’ 분야를 전공한 박종운이 원전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은 월성 1호기 안전성 평가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2년 뒤인 2013년, 설계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에 대해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에 전문가로 참여하면서 이웃 나라의 대참사에도 바뀔 줄 모르는 원전업계의 ‘눈 가리고 아웅’식 적당주의에 염증을 느꼈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소송에서는 원고 측 증인으로 나서면서 원전 추진파들의 ‘눈엣가시’가 됐다.

그는 “원전밀집도가 너무 높은 곳에 신고리 5·6호기를 또 짓겠다고 하니 반대한 것”이라며 “학계 1차 성명 때 동료교수가 사인을 받으러 왔길래 ‘난 안 하겠다. 건의면 몰라도 왜 성명까지 내느냐’고 했다. 그 후 2차 성명 때도 불참했으니 독보적으로 찍힌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운은 최근 들어 방송출연과 신문기고 등을 통해 ‘원전마피아’들이 부풀려온 ‘한국 원전의 신화’가 얼마나 허황됐는가를 일깨우고 있다. 그가 그렇다고 급격한 ‘탈원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원전이 사양화되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는 세계적 에너지 전환 흐름에서 한국만 소외돼 ‘갈라파고스화’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체다.

그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조성비와 폐로·사고처리 비용을 타국 수준으로만 반영해도 원전의 발전단가는 액화천연가스(LNG)보다 비싸진다”며 “원천기술도 없고, 산업규모도 삼성전자의 10분의 1에 그치는 원전산업을 성장산업, 주력 수출산업으로 과장해서 호도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의 좁은 땅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원전을 더 지어서는 안된다”며 “박근혜 정부 시절 고리 1호기 폐로 때는 잠자코 있던 원전학계가 이토록 집단 반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천기술도, 혁신도 없는 한국 원전, 어떻게 세계 최고냐”

- 원자력 업계는 한국형 원전이 기술력과 경제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데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면 산업에 악영향이 크다고 한다.

“원자력 기술국 중 한국만 원천기술이 없다. 미국 CE(현 도시바-웨스팅하우스에 합병) 기술을 돈 주고 사왔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수출할 때도 웨스팅하우스에 5000억원을 기술료로 지불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기술이 최고인가? 고리 1호기부터 한울 1·2호기까지는 외국에서 지어준 거다. 영광 3·4호기 때부터 ‘국산화’했다지만 외국 가서 기술을 배우고 사왔다. 미국에는 원전업계의 ‘삼성’ 격인 웨스팅하우스 외에 제너럴 일렉트릭(GE), 컨버스천 엔지니어링(CE) 등이 있는데 한국은 마이너급인 CE에서 기술을 도입했다. CE가 나중에 웨스팅하우스에 합병됐고, 도시바로 넘어간 웨스팅하우스가 경영 손실로 파산했다. 그런 회사들이 망했으니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내가 최고’라는 격이다. 울진 3·4호기를 ‘한국형 표준원전’이라고 하지만 미국 회사에 설계도를 받아 와서 자문받고 카피한 거다. 원천기술은 미국인데 우리가 카피 작업했다고 ‘국산화’라고 하는 거다.”

- 원전 분야가 앞으로 투자하고 키워나가야 할 첨단산업이나 혁신산업인 건 맞나.

“(1977년에 지어진) 고리 1호기나 (지난해 가동 시작한) 신고리 3호기나 원자로계통은 기본 뼈대가 같다. 원자로와 증기발생기가 기본인 발전구조는 지난 몇십년 동안 크기만 커졌고, 안전계통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사고가 났을 때 주입하는 냉각수를 격납 건물 외부에 둘 거냐, 내부에 둘 거냐 하는 정도다. 원자력발전은 검증기간이 길어 일반 산업에서 쓰는 첨단기술을 바로 갖다 쓸 수도 없다. 사실 첨단기술도 별로 필요 없고, 연구는 많이 했지만 실제 적용한 것도 거의 없다. 원전이 복잡해 보여도 10년이면 다 따라할 수 있다. 중국도 10년 만에 기술 확보했잖아. 그런데도 우리가 바닥부터 시작해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어려운 대단한 기술력을 축적해 온 것처럼 호도한다. 로봇을 쓰거나 하는 첨단산업도 아닌 원전을 놓고 자꾸만 ‘최고의 기술’이라고 자찬하는데 듣기 신물 난다.”

- 한국이 UAE 외에 다른 곳으로 원전을 수출할 가능성이 있나.

“거의 없다. 일본, 중국, 러시아 3개국이 수출에 적극적이다. 동구권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끊으면 망하는 나라들이라 러시아 원전을 살 수밖에 없다. 헝가리가 러시아 원전을 2기 사기로 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같은 무지막지한 원전 사고를 일으켰는데도 정식 계약은 아니지만 인도에 원전 6기를 수출하는 협약을 맺었다. 인도는 러시아와도 2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서유럽에서 원전 건설은 영국밖에 안 남았고, 다른 나라들은 다 줄이고 있다. 영국도 노후 원전 폐로하는 분만큼만 신규 원전을 짓는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현재 짓고 있는 원전들의 공정이 지연되고 있다. 가스값은 내렸는데 원전 건설 비용이 너무 올라서 짓느냐 마느냐 설왕설래 중이다.”

인터뷰를 한 뒤 미국이 원전 2기의 건설을 중단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욕타임스 등은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공서비스위원회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젱킨즈빌에 짓고 있는 서머 원전 2·3호기의 건설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 우리가 수출할 만한 지역이 별로 없다는 거네?

“원전 거래는 기술력·경제성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 거래 성격이 강하다. 인도가 러시아, 일본과 거래하는 것도 전략적 고려 때문이다. 후쿠시마에서 대형사고를 낸 일본의 원전을 인도가 사려는 걸 봐라. 그 나라가 원전 사고를 일으켰건, ‘탈원전’을 하건 거래할 땐 고려 대상이 안된다. 그런 것 없이 수출하려면 돈을 대줘야 한다. UAE에 원전 수출한 것도 12조원을 28년간 빌려주기로 이면계약 했던 거잖아.”

- 원전 수출이 어렵다면 원전 해체는 한국에 블루오션이 될 수 있나.

“2040년까지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150기가 해체에 들어간다. 도시바, 아레바 같은 메이저 원전기업들이 해체 전문회사들과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2040년까지 우리는 해체 경험이 고리 1호기 하나 정도에 그칠 거다. 그 얕은 경험으로 어떻게 진출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원전 해체하려면 아무래도 같은 유형의 원전을 가졌거나 해체 대상 원전을 공급한 나라와 계약할 거 아닌가. 우리 원자로는 유럽형과 전혀 다른데 우리와 계약을 맺으려 할까. 원전 해체 산업을 블루오션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은 원전 해체를 ‘아파트 철거’ 정도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

■“핵폐기물 처분 대책이 없다”

- 원전추진파들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 없이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계속 짓는 격 아닌가.

“(원전 작업원의 작업복, 교체된 부품 같은) 중저준위 핵폐기물도 경주에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이런 실정인데 방사능 수치가 수백배 더 높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무슨 수로 확보할 건가. 처분장 문제 때문에라도 원전은 줄여가야 한다. 수용할 지역도 없고, 돈도 엄청 든다. 어떤 전문가는 ‘핀란드 온칼로에 최종처분장이 생겼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태평한 소리를 하는데 핀란드는 원전이 고작 2기뿐인데도 최종처분장 확보에 수십년이 걸렸다. 2013년부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 수백번 논의했지만 최종처분장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중간저장하자고 결론 냈잖아. 발전소 저장수조에 핵연료봉이 꽉 차면 빼내서 콘크리트 건물에 건식저장하는 게 중간저장 시설인데 수명이 100년도 안된다. 최종처분장 확보가 어려워 중간저장을 하다 보니 거기에만 또 막대한 돈이 들어가게 된다.”

-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을 확보하기가 그만큼 어려운가.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동국대 경주캠퍼스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교수는 “좁은 한국 땅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도 원전을 더 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수백m 지하에 적어도 직경 2㎞가 넘는 암반이 있어야 하고 암반에 물이 스며들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미국이 유카마운틴에 최종처분장 건설을 추진했다가 수억년 전에 물이 흐른 흔적이 확인되자 계획을 접어버렸다. 물이 스며들면 암반에 균열이 생기고, 폐기물 저장 용기가 부식될 수 있으니 처분장으로 못 쓴다. 경주 양북면 지하 200m에 짓고 있는 중저준위 폐기장 부지도 물이 스며드는 바람에 차폐 조치하느라 2조원인가 더 들어갔다. 우리는 지하에 그 정도 규모의 암반 지형이 있는지 조사한 적도 없다. 부지를 확보했다 쳐도 주민들이 수용할 거 같은가. 원전부지 안에 임시 저장시설 짓는 계획도 제대로 얘기하기 어려운 형편인데, 이 좁은 땅덩이 어디다 최종처분장을 만들겠단 거냐. 미국도 최근 에너지부가 사우스다코타 등 3개 주의 지하 2~5㎞에 처분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지층 조사를 하려다가 주민들 반대로 포기해 버렸다.”

- 어떤 원자력 전문가가 ‘2040~2050년이면 사용후핵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40년에 될 거 같으면 벌써 되고도 남았을 거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해서 연료의 독성과 양을 줄이겠다며 1950년대부터 고속로(고속중성자를 이용해 핵연료를 생산하는 원자로)를 개발해왔지만 성공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고속로는 냉각재로 물 대신 나트륨을 쓰는데 불이 자주 났다. 프랑스, 일본에서 실패했고, 경제성도 없다. 선진국들 다 실패했는데 우리가 뒤늦게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거다. 사용후핵연료의 체적을 100분의 1로 줄인다는 것도 검증 안된 이론이다. 게다가 중수로의 사용후핵연료는 대상 외다. 설사 (경수로의) 사용후핵연료를 제로화시킨다고 해도 30%에 달하는 중수로 핵연료는 그대로 남는데 어떻게 100분의 1로 줄인다는 계산이 나오나. 허언들이 난무한다.”

- 한국 원전의 발전단가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폐로, 사고처리 비용을 너무 낮게 책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고처리 비용을 2014년에 인상했지만 1kwh당 겨우 1.8원 늘렸다. 프랑스는 수명연장 비용이 1기당 2조원에 육박하는데 우리는 2000억원 수준으로 잡아 놨다.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조성비용을 일본은 120조원으로 예상하는데 우리도 아마 100조원은 들어갈 거다. 게다가 25기의 발전소 부지에 건식중간저장 시설을 짓기로 했으니 50년간 이곳에 보관할 경우 12.5조원(1기당 연간 관리비 100억원)이 더 들어간다. 폐로비용도 영국은 1기당 1조8000억원, 독일은 3조6000억원으로 잡는데 우리는 고리 1호기가 6400억원 수준이다. 사고처리 비용도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300조원가량 된다. 국내 원전 25기가 40년간 사고처리 비용을 나눠 쌓는다고 하면 1kwh당 38원이 발전단가에 반영돼야 한다.”

- 사고처리 비용은 은행이 대손충당금 쌓듯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근데 그렇게 되면 원전의 발전단가가 kwh당 106원(2015년 기준)으로, 액화천연가스(LNG)의 발전단가(101원)보다 비싸진다. 그러니 기를 쓰고 반영하지 않으려는 거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났을 땐 사고비용을 반영했는데 왜 후쿠시마 사고는 반영하지 않는가. 더구나 후쿠시마는 원전 반경 30㎞ 내 주민이 17만명에 불과했다. 우리는 원전 밀집도와 인구를 감안하면 40배나 더 위험한 걸로 평가된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월성원전까지 길찾기 검색을 해보니 곡선거리로 41㎞였다. 직선거리로는 30㎞쯤 되는 거리다. “월성원전에서 반경 30㎞라면 경주·울산권 인구 150만명이 들어간다. 부산 고리원전은 400만명이다.”

- 동남권 원전은 주변 도로가 너무 협소해 대피하기도 쉽지 않다.

“대피 불가능이다. 500만명이 어디로 갈 거냐. 방재계획 세워놨다고 하지만 실제 사고가 나면 통제불능일 거다. 더구나 방재계획을 자치단체가 담당한다.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자치단체에 떠맡기고 있는 거다.”

■ 동문 학맥으로 똘똘 뭉친 ‘원전마피아’

건설 일시 중단 결정이 내려진 울산 울주군 서생면의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현장에 크레인들이 멈춰서 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3개월간 여론을 수렴한 뒤 공사 지속, 중단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 신고리 원전과 관련해 원자력 분야가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내는 느낌이다.

“원자력학과는 예전엔 서울대, 경희대, 한양대밖에 없었는데 졸업하면 원자력 분야 외에 달리 갈 데가 없다. 그러니 원전산업을 보호하고 키우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원전 분야 종사인력 3만5000명 중에 원자력학과 출신이 8%에 불과하지만 이 중 박사가 40%가 넘는다. 가방끈이 기니 상위직으로 진출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고위직들이 서로 동문 학맥으로 묶여 있다. 원전이 많아지면 학계 연구과제와 연구비도 늘어나니까 학계가 더 나서서 사업자 이득을 대변한다. 일부는 정부에 들어가서 (고속로 같은) 허황된 연구하라고 밀어준다. 정부·연구원·규제기관·학계가 똘똘 뭉쳐 있다. 세상에 이런 ‘마피아’도 없을 거다.”

- 이들은 탈원전 하면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올 것처럼 주장하는데.

“원전산업은 한 해 매출이라고 해봐야 25조원, 삼성전자 매출 10% 남짓한 정도로 규모가 작다. 20조원이 한수원이고, 협력업체 매출은 5조원밖에 안된다. 전형적인 역피라미드다. 원전은 자주 짓는 게 아니니 부품이나 핵심설비의 수요는 많지 않다. 업체들의 생산물량 중 10%가량만 원전에 공급되는 거라서 원전에 납품 못한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다. 탈원전 한다고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것처럼 주장하는 건 말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원전이 공공산업인데도 마치 성장시켜야 할 산업에 주력 수출산업인 것처럼 취급하는데 너무나 과장돼 있는 거다.”

- 원전 사고들을 보면 원자력업계는 ‘은폐 체질’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피폭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 같다.

“원전의 역사는 ‘은폐의 역사’다. 원래 작업원 1인당 피폭허용치가 정해져 있지만 숙련자에게 수당을 더 주고 다른 사람의 방사선량 기록계를 차고 들어가도록 하는 일이 예전엔 비일비재했다. 서류상으론 두 사람의 피폭량이 동일하지만 그 숙련자는 허용치가 넘는 피폭을 당하는 셈이다. 비상발전기나 과압방지밸브 같은 주요 설비도 원래 불시점검해야 하지만 미리 점검시간을 알려준다. 설계자들과 규제기관, 한수원이 다 짜고 감추다가 불량이 발각되더라도 ‘방사능 누출량은 많지 않다’는 식으로 피해간다.”

- 원전 내부가 워낙 복잡해 완벽하게 점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완벽 점검은 불가능한 얘기다. 많은 경우 검사는 한수원 직원이 직접 하지 않고 한국전력보수라는 외주업체 인력이 들어와서 한다. 한수원 직원들은 최종관리만 한다. 나사 풀고 교체하는 현장일은 다 외부 인력의 몫이다. 우리가 자동차 운전은 잘하지만 고장 나면 카센터에 전화하잖아. 한수원 직원이 딱 그런 식이다. 원천기술이 없는 발전사업자인데 돈은 자기네가 다 벌고, ‘갑질’은 ‘갑질’대로 한다.”

- 최근 영광 한빛 4호기 철판 120곳이 부식됐고, 콘크리트 방호벽에 구멍마저 뚫린 사태는 심각한 거 아닌가.

“이미 1997년 미국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해 이슈가 된 사안인데 우리 규제기관이 뭉개다가 발생한 거다. 100군데 넘게 부식됐다면 관리부실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안정성 평가를 할 때 초음파로 스캐닝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그동안 안 했던 거지. 외국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에게도 ‘인포메이션 노티스(IN)’라는 이름으로 정보가 온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정부에 보고하고, 정부가 사업자에게 조사를 지시했어야 했는데 안 한 거다. 규제기관이 오히려 사업자 눈치를 보며 은폐하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둘러댄다. 지금이라도 원전 가동을 중단시키고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 외국은 사고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프랑스에서 2011년에 원전을 짓는데 강철에 탄소가 과다함유된 사실이 발견됐다. 프랑스 규제기관이 조사한 결과 58기 중 20기에 문제의 강철이 공급된 걸로 확인되자 20기를 한꺼번에 운전정지시켰다. 그 바람에 전력공급이 부족해지자 안 쓰던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고 독일에서 전기를 충당했다. 규제기관이 이 정도로 막강해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 “난 반핵도 찬핵도 아니다”

박종운은 동국대에 부임하기 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13년간 근무해 현장 사정에 익숙하다. “한전과 한수원에서 연구직으로 현장 안전관련 연구를 했다. 원전 사고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기술을 적용해 어떤 설비를 보강해야 하는지와 같은 안전공학이 전공이다.”

- 언제부터 원전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됐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2013년 설계수명(30년)이 다한 월성 1호기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안전성 평가)’를 했다. 민간검증위에 참가해 보니 테스트 방식이나 내용이 엉터리여서 한수원을 많이 비판했다. 그때부터 ‘쟤 반핵 아니냐’는 말이 돌더라. 이후 시민단체들이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 소송을 낼 때 원고 측에서 증언하면서 결정적으로 눈 밖에 난 것 같다. 원자력 분야는 한 사람이라도 바른말 하면 불리하니 ‘문단속’이 심하다. 요즘도 그들 단톡방에서 나를 성토하는 모양이다.”

- 원자력 학계의 집단성명에도 불참했던데.

“원전 밀집도가 너무 높은 곳에 신고리 5·6호기를 또 짓겠다고 하니 반대한 거다. 학계 1차 성명 때 동료 교수가 사인 받으러 왔길래 ‘난 안 하겠다. 정부에 건의를 한다면 몰라도 왜 성명까지 내느냐’고 했다. 고리 1호기도 2차 수명연장할 수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지시로 포기하면서 수조원 손실이 생겼다. 그땐 잠자코 있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탈원전’이라지만 곧바로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부 얘기로는 50년 이상 걸린다는 거잖아. 단톡방에서 ‘박종운이 서명 안 했다’며 시끄러웠던 모양이더라. 2차 성명 때는 우리 과 교수 6명 중 1명만 찬성했다. 나는 2차도 불참했으니 독보적으로 찍힌 거지.”

- 스트레스 테스트 때 문제점을 많이 느꼈다고 했는데 예컨대 어떤 것들인가.

“사고의 진행과 대피 및 방재 등을 점검했는데 심각한 사고가 났을 때 대응실패 시 방사능 누출량을 제시하라고 하니 제출하지 않더라. 후쿠시마나 다름없는 참사가 한국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내진 테스트도 유럽은 10만년, 스웨덴은 1000만년간 발생한 데이터를 기초로 하는데 우리는 1만년으로 자르더라. 기간을 늘려 잡으면 더 심각한 지진을 상정해야 하니 짧게 잡은 거다. 자동차 충돌시험할 때 시속 50㎞ 상황만 볼 게 아니라 80㎞도 봐야 하잖아. 근데 50㎞에서 딱 끊은 거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거다. 나중에 가니 한수원은 ‘문을 닫으면 닫았지 설비는 더 보강할 수 없다’고 버티더라.”

- 박 교수는 탈원전론자인가.

“난 반핵도 찬핵도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세계적인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니까 원자력도 맞춰서 가면 된다. 원전을 짓고 있는 영국도 전체 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설치용량 기준으로 20%가 넘는다. 중국도 설치용량으로만 보면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을 넘어섰다. 미국도 올 상반기 신재생에너지의 순간출력이 잠깐이나마 원전을 상회했다. 근데 원자력계가 저렇게까지 반대하고 나서니 반감이 더 생기는 중이다.”

[용어설명]사용후핵연료 방사능, 자연수치로 떨어지기까지 ‘10만년’ ■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 우라늄이 핵분열을 하고 난 뒤 인출된 우라늄 다발인 사용후핵연료는 치사량에 가까운 고농도의 방사능을 내뿜는 위험물질이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이 자연수치로 떨어지는 데는 10만년이 걸린다. 한국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 수조에 저장하고 있는데 이 수조가 포화상태에 도달한 상태여서 최종처분장 건설이 시급한 과제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이 확보된 나라는 핀란드가 유일하다. ■ 중저준위 핵폐기물 = 원전에서 사용한 공구, 작업복 등 방사선 수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폐기물. 경북 경주시에 중저준위 처분장이 조성돼 2015년부터 폐기물을 이곳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중·저준위 폐기물이라고 해도 방사능이 자연수치로 낮아지려면 300년이 걸린다. ■ 영광 한빛원전 사고 = 2016년 5월 한빛원전 2호기의 원자로를 싸고 있는 돔형 격납건물의 철판에서 부식이 확인되고 구멍이 발견됐다. 격납철판은 사고 발생 시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한빛 1호기, 한울 1호기와 올해 2월 고리 3호기에서도 철판 부식이 확인됐다. 올 들어서는 한빛 4호기에서 지난 5월 120곳의 철판 부식이, 지난달 27일 콘크리트 방호벽의 안쪽 57곳에 구멍이 생긴 사실이 확인됐다. 구멍이 생긴 이유는 시공 부실로 콘크리트와 철판 사이에 틈이 생기면서 습기가 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 사용후핵연료의 처리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013년 10월 구성된 정부 자문기구. 2020년까지 처분시설 부지 선정, 여의치 않을 경우 각 핵발전소 안에 중간저장시설 설치·보관 등의 권고안을 2015년 6월 정부에 제출했지만 원자력계와 환경단체 사이의 인식 차이가 커 합의를 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 월성 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대형 자연재해에 대한 노후 원전의 대응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설계수명(30년)을 다한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해 2013년 8월부터 전문가·민간이 각각 검증단을 구성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민간검증단의 검증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채 2015년 2월 수명연장(2022년까지 가동)을 허가했다.

<서의동 선임기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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