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남아 저가여행 뒤엔 '착취의 고리'

최미랑 기자 2017. 8. 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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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항공권 값도 안되는 패키지, 현지 가이드가 부담 떠안은 뒤 고객에 전가

이모씨(55)는 지난겨울 태국 여행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이씨는 3박5일 동안 방콕과 파타야를 여행하는 패키지 상품을 35만원에 샀다. 현지에 가보니 가이드는 “옵션을 들지 않으면 관광할 곳이 없다”며 20달러를 더 내라고 요구했다. 가이드의 요구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은 일정이 아예 쇼핑으로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라텍스, 차, 잡화…. 이씨는 관심도 없는 상품을 보느라 종일 진을 뺐고, 쇼핑을 마치자마자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2일 국내 대형 여행사들의 웹사이트에서는 저가 패키지 여행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ㄱ사의 경우 태국 방콕·파타야를 4일간 여행하는 상품은 31만9000원부터, 베트남 다낭을 4일간 여행하는 상품은 39만9000원부터 판매한다. 성수기임을 감안하면 숙박료·식비는커녕 왕복항공권값도 밑도는 가격이다. 이런 상품이 어떻게 가능할까.

대형 여행사-현지 여행사-현지 가이드로 이어지는 ‘갑-을-병’의 착취구조가 저가여행을 떠받치고 있다는 게 종사자들의 지적이다. 대형 여행사가 손님을 보내지 않으면 고객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현지 여행사와 여기에 소속된 가이드들은 대형 여행사의 ‘갑질’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결과가 현지에서 관광객들에게 ‘옵션’ 강요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풍부하게 알려주는 좋은 여행을 손님들께 선사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대형 여행사들은 손님들을 비행기에 태워 현지로 보낼 뿐, 여행에 드는 숙박비·식비·입장료 등은 책임지지 않아요. 이는 거의 전적으로 손님들이 추가 관광상품을 구매하거나 쇼핑을 했을 때 떨어지는 수수료로 메꿔야 합니다. 메꾸지 못하면 일을 하고도 적자가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님들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는 거죠.” 태국에서 20년간 가이드로 일한 전중길 한국노총 통역가이드연합본부 사무국장(47)은 지난 1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생활고로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26일 베트남 다낭에서 한인 가이드 문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문씨의 동료 가이드들은 그가 저가 여행상품에서 난 적자를 메우느라 돈을 벌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평소 주변에 “집세도 밀렸고 밥 먹을 돈도 없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태국에서 가이드로 일해온 전 사무국장과 박인규 한국노총 통역가이드연합본부 본부장(48)은 이런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고자 지난달 초 귀국했다. 이들은 국회와 대형 여행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저가여행 착취구조의 밑바닥에 있는 태국 한인 가이드 284명이 해외 가이드 최초로 노조를 결성해 지난달 7일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한인 가이드들도 오는 15일 한국노총에 가입한다. 노조는 대형 여행사를 대상으로 현지에서 수수료로 메꿔야 하는 비용을 축소하고, 가이드들에게 근로기준법에 의한 노동시간을 보장하고 초과근무수당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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