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경·염규현·조의명 MBC기자 3인이 말하는 MBC

김도연 기자 입력 2017. 8. 2. 10:17 수정 2017. 8. 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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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장겸의 반인륜적 폭력, 정의 구현으로 마침표 찍어야” … 이 시대에 MBC 뉴스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한 방송사 PD는 MBC 상황을 ‘좀비 영화’에 비유했다. “발악하는 좀비들과 그들과 필사적으로 싸우는 인간들.” 2012년 공정방송 MBC 파업 이후 5년이 그러했다.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 157명’이라는 부당 전보 및 징계 수치는 타 사업장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탄압의 실상이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저항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합리한 체제를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밖에선 ‘공영방송 MBC를 되살려야 한다’는 지지와 ‘이제 MBC는 포기하자’는 체념이 공존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필사적으로 싸우는 인간들”의 인격과 노동은 파괴되고 메말라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김민식 MBC 드라마 PD의 외침은 MBC 안에서 언론인으로서 다시 살아보겠다는 절규였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외침은 구성원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 구호가 확산됐고 적지 않은 시민들의 호응이 있었다.

제작 일선에서도 저항의 바람이 불었다. PD수첩 제작진들은 일상적 아이템 통제에 반발해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PD수첩이 제작돼 왔던 시사제작국을 포함해 여러 부문의 MBC 언론인들은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정상화를 위한 날을 벼리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MBC 기자 3인도 그러했다. 양윤경(2003년 입사·41), 염규현(2009년·35), 조의명(2008년·36) 기자는 2012년 파업 동지로 지금은 다른 부서에 소속돼 있다. “밖에 있는 사람”인 양 기자는 비제작부서 미래방송연구소 소속이다. 염규현 기자와 조의명 기자는 각각 보도국 경제부와 시사제작국 ‘2580’에서 보도를 이어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 먼저 염 기자에게 현재 MBC 보도국 상황을 물었다.

▲ 조의명·양윤경·염규현 MBC 기자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현재 MBC 보도국 상황은 어떠한가? 여러 보도가 있었지만 보도국 내 이야기는 잘 전해지지 않았다.

염규현(이하 염) :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인력 가운데)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인력은 대략 20여 명 남짓인 것 같다. 편집부 등 제작에 참여하지만 방송 리포트는 못하는 기자를 포함하면 70여 명이다. 전체 보도국 인력 가운데 방송에 나갈 수 있는 인력은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주요 포스트는 정치부나 법조 출입일 텐데 기존 기자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치부에 한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법조에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그곳에서 보도를 두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남아있는 기자의 경우 사회부나 경제부, 기획취재부에 일부 있다.”

- MBC 보도국 기자가 외부 인터뷰에 나서긴 쉽지 않았을 텐데? 계기가 있다면?

염 :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 언론 인터뷰를 한다는 게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자격이 있는가하는 의문. 최근 좋은 기사를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다.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자괴감도 컸다. ‘나 회사 생활 아직 많이 남았는데….’라는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동료들과 같이 연대하고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노조를 ‘나치’라고 하거나 노조의 MBC 보도 모니터 보고서를 찢는 등 보도본부 간부들에 의해 비상식적인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보도국 내부에서는 어떻게 버티고 있나?

염 : “더 외면하게 되는 것 같다. ‘역치’가 올라갔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놀랍지 않다. 일상 자체가 침전한 느낌이다. 내가 나머지 기자들을 대표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남은 기자들 경우 ‘소극적 방어’ 태세다. 처음에는 ‘잘못된 보도나 편향된 보도가 나가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싸움에 임했다면 지금은 그런 보도들을 ‘내 입으로는 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저항을 소극적으로 내면화했다고 해야 하나. 실제 새로 선발된 기자들이 많다보니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적 기사’가 기존 기자들에게 배정되는 확률도 줄었다. 즉,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사고(社告)에 준하는 리포트들은 새로 들어온 분들이 맡고 있다. 물론, 모든 경력 기자들이 회사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파업 이후 들어온 기자들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기존 기자들에는 자괴감을 넘어선 관조와 달관의 태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외부에 있는 분들이 저희에게 ‘왜 가만히 있느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지만 마치 젖은 솜처럼 마음이 무거워진 경향도 있는 것 같다.”

-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과 시용·경력 기자들과의 갈등도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들은 기존 기자들이 시용·경력 기자들을 ‘왕따’시킨다고도 했다.

염 : “인간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파업 복귀 후) 선배·동료들이 밖으로 쫓겨난 상황에서 대체 인력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됐던 그들에게 갑자기 허심탄회하게 ‘잘 지내자’라고 하긴 어려웠다. 일정 부분 서로 간 불편했던 게 사실이고, 소수였던 그들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지금은 선인장이 자라서 화분을 삼킨 격이다. 남아있는 기자들이 더 소수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소외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에게 ‘우릴 왕따 시키냐’ 이런 발언은 하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규모와 숫자에서 나오는 갈등도 있으리라 본다. 새로 일터에 온 사람 입장에서 그걸 상처로 느꼈을 수 있겠다 싶다. 우리가 처한 구조적 상황이 그분들을 동료로 인정하기 어렵게 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경력 기자들을 많이 선발하다보니 지금은 그들끼리도 서로 서먹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전처럼 흑백으로 재단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난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점점 더 MBC 기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던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보도에 대해 견제 내지는 저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이 거의 없다.”

▲ MBC 보도국 경제부 소속 염규현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과연 좋은 기사를 써보려고 했었나 자괴감”
“물에 젖은 솜처럼 어느새 저항이 무거워졌다”

양윤경 기자는 4년째 비제작부서 생활을 하고 있다. 2012년 파업 뒤 경제부에서 ‘공정방송 배지’를 달고 마이크를 잡았다가 이후 내근 부서로 배치됐다. 파업 참여 기자들의 동향을 파악해 사측에 보고한다는 이야기가 있던 한 기자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했다가 인사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MBC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인 배현진씨와의 갈등도 비제작부서 발령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 비제작부서로 배치된 까닭은 무엇이었나?

양윤경(이하 양) : “말하기 참 민망한 이야기다. 여자 화장실에서 배현진씨가 물을 틀어놓고 양치질을 하고 거울도 보고 화장도 고치고 해서 배씨에게 ‘너무 물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잠그고 양치질을 하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에 배씨가 ‘양치하는데 물 쓰는 걸 선배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했고 서로 몇 번 말이 오간 뒤 내가 ‘MBC 앵커인데 당연하죠’라고 말하고선 퇴근했다. 출근했더니 부장이 부르고 난리가 났다. 이 사건에 대한 경위서를 써야 했고 한 선배는 ‘인사가 날 수 있다’고 하더라. 심지어 진상조사단까지 꾸려졌다.(웃음) 사실 관계 확인 차 CCTV도 돌려봤다고 했다. 당장 인사가 나진 않았지만 당시 부장의 말대로 정기 인사 때 인사가 났다. MBC 보도국 내부 분위기를 상징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경영 쪽 지인으로부터 내가 포함돼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현진씨와 있었던 일이 방아쇠가 된 것 같았다.”

- 비제작부서 4년째면 다시 마이크를 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을 것 같다.

양 : “물론 있다. 그러나 우린 목구멍에 풀칠은 한다. 진짜 어렵게 고공농성을 하는 분들이나 우리보다 더 오래 쫓겨나 언론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신 분들이 있다. 나는 어쨌든 사무실에 앉아 직원으로 일은 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내가 미디어에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저만 힘든 것은 아닌데….(이 대목에서 목멘 양 기자가 눈물을 보여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중간에 육아휴직을 다녀왔다. 망설임이 없었다. 도피의 의미도 있었다. 나와 달리 온전히 그 시간을 버텨낸 동료들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속이 문드러졌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복귀해 리포트를 하고 싶다는 조급증이 있다. 14~15년차 중견 기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현장 기자를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 미래방송연구소 소속 양윤경 MBC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조의명 기자는 지난 3월 ‘시사매거진 2580’ 제작 과정에서 세월호 인양 지연에 대한 정부 책임론과 박근혜 정권에 부정적인 인터뷰 등을 빼라고 지시받았다. 심지어 ‘진실’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며 삭제를 요구받았다. ‘PD수첩’ 노동 아이템 불허로 제작진의 제작 중단 사태를 부른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지시였다. 조 기자는 양심에 따라 국장 지시를 거부·항의하고 ‘주의’ 징계를 받았다. 시사제작국 기자·PD들은 지난달 26일 “현재의 시사매거진 2580은 강점이었던 제작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며 “부장과 데스크는 아무 결정권이 없고, 심층 아이템을 취재할 기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 2580의 자율적인 논의 과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로 인한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부르고 있다”면서 조 국장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다.

- ‘PD수첩’에 이어 ‘시사매거진 2580’, ‘경제 매거진’ 등 시사제작국 기자·PD들도 지난달 25일 총회를 열고 조 국장의 사퇴와 제작 거부 가능성을 시사했다.

조의명(이하 조) : “이번 사태는 국장 1인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9년 동안 MBC 기자·PD들이 어떻게 공격받았고 함락됐으며, 어떻게 싸우고 패배하고 망가졌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2580을 거친 기자 전원을 대상으로 아이템 통제, 외압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2580은 MBC 내에서 ‘율도국’으로 불렸다. 2580은 제작 난이도도 높은 편이고 출입처 위주로 돌아가지 않아 ‘정치적 야망’이 큰 사람들에겐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다. 갈등을 부르는 인사들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변방에 관심이 없었던 거다. 2580은 MBC 보도 파트에서 기사만 고민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걸린 것이다. ‘역도들이 이상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웃음) 취재 기자 12명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물갈이하는 데 몇 달 걸리지 않았다. 인사발령 2~3번이면 끝난다. 여기까지 침공하는 걸 보니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임계점도 다다랐다. 남은 게 없으니 우리 입장에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 그동안 2580 기자들에 대한 징계도 적지 않았다. 징계와 부당 전보는 MBC에서 기자 조직을 와해하거나 공정 보도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편집자 주: 지난 6월 언론노조 MBC본부 자료를 보면, 2012년 파업 과정과 그 이후 조합 활동을 이유로 내려진 부당 징계가 지난 5월까지 71건에 이르렀고 부당 교육과 전보 배치된 사람들은 187명에 달했다.)

양 : “장기간 조금씩 반복적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 마치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조건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100여 명 이상의 인력이 자기 일을 뺏기고 기존 업무와 무관한 외딴 곳에서 몇 년 동안 허송하고 있다는 건 일반 사업장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 : “혹자는 ‘기자 일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기자여서가 아니다. 꿈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그 꿈을 짓밟는 부당노동행위다. 기술직에서 열심히 종사하던 이를 기자직으로 옮겨놔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삶에 대한 파괴 행위다.”

염 : “자기 전문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직역 분야를 소위 유배지처럼 만드는 것은 기자들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해당 전문 직역을 가진 분들도 모욕하는 처사다.”

“2580까지 건드려… 이제 우린 잃을 게 없다”
“자유롭고 날카롭던 소통이 해사 행위로 규정”

- 과거 MBC와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조직 내부가 위축된 것 같다.

양 : “MBC 보도국 문화는 타사와 많이 달랐다. 구성원들 사이에 유대감도 컸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가 컸다. 보도 현장과 결과물에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최고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컸다. 지금은 어떠한가. 적어도 뉴스는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달하는 게 기본인데 MBC는 기본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단독과 특종을 따지기 이전에 기본도 안 된 상태다. 언론이라면 다뤄야 할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한 MBC는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안에서 그런 상황을 직시해야 하는 선·후배 동료들은 더 힘들 것이다. 이 시대에 MBC 뉴스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떤 의미일까.”

조 : “우리끼리도 참 많이 싸웠다. 후배가 선배에게 잘 들이받았던 조직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아래로 갈수록 목소리가 셌던 게 MBC의 강점이었다. 선배일수록 후배들을 무서워했다. 이는 아래의 목소리, 곧 현장의 목소리를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외부에는 그런 모습이 공격적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서로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언제부턴가 이런 문화가 ‘해사 행위’로 간주됐다. 창의성을 만들었던 ‘자유롭고 날카로운 소통’이 이제는 ‘살려두지 않겠다’는 (위쪽의) 통제를 부른다. 생명체에서 피를 쫙 빼는 행위다. 조직의 약동하는 에너지를 경영진이 뺏은 것이다. 아이언맨 흉부에 위치한 ‘발전기’를 확 뽑아 냈달까.(웃음)”

염 : “특히 보도국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기자들의 오전 발제 아이템이 얼마 올라오지 않는다. 주말에는 13~14개 정도인데 보통 20개가 돼야 방송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때문에 신문을 보고 발제하는 경우도 많다. 자체적으로 아이템을 발굴하고 상향식으로 발제가 이뤄지는 게 기본이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기자들이 사안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위로 아이템이 올라갈수록 발언권이 약한 것이 맞는데 지금은 위에서 떨구는 하향식 발제가 지배하고 있다. 좋은 기사가 싹트기 어려운 환경이다. 과거 MBC 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은 MBC가 원래 이런 줄로만 아실 것 같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선 당시 문화를 경험했던 선배들이 빨리 보도국으로 들어와 균형을 잡아주셔야 한다.”

▲ 시사제작국 MBC 2580 소속 조의명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사내 안팎으로 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 요구가 거세다.(편집자주: 김 사장은 MB 정부 때인 2011년 MBC 보도본부 정치부장에 임명된 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5월 보도국장으로 영전했다. 보도본부장, 사장으로 이어진 그의 초특급 승진은 MBC 보도의 급속한 추락 시기와 맞물린다. 언론노조는 그를 ‘언론 장악 부역자’로 꼽았다.) 김민식 MBC 드라마 PD의 필리버스터 이후 시민들의 호응도 크다.

양 : “그가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올라가는 동안 많은 탄압이 뒤따랐다. 그가 구성원에게 저지른 행각은 반인륜적 폭력이었다. 한 사회에는 다양한 성향을 지닌 정치적 주체들이 존재한다. MBC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조직이다. 그럼에도 MBC가 다른 언론보다 앞설 수 있던 것은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보도를 제작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이 시스템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한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존중해야 할 언론사를 딱 하나, 자신의 신념을 기준 삼아 그 외의 시도들은 모두 제거했다. MBC를 사실상 언론사라고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장으로서 부적격한 인물이다.”

조 : “지금처럼 억눌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MBC는 공정방송을 위해 수없이 파업을 했지만 지금의 사장 퇴진 요구와 구성원들의 싸움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방식인 것 같다. 분노가 모든 구성원들 사이에 이처럼 골고루 차 있던 적은 없었다. 또한 언론 적폐를 포함해 사회악과 부조리를 타파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다. 이번 기회에 MBC가 정상화된다면 적폐 청산을 바라는 국민들을 위해 MBC가 긴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일부 시민들은 김 사장의 퇴진을 바라면서도 MBC 기자들의 침묵을 비판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MBC를 외면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이 있을까?

조 : “솔직히 그동안 MBC에 주신 국민들의 관심은 과분했다. 지금도 과분하다. 사회부 기자로서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았지만 ENG 카메라 두 대 이상 보기 정말 힘들다. 아직 MBC 구성원들이 집회를 열면 기자 분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지금처럼 평기자를 인터뷰하러 와주신다. 물론 시민 관심이 줄어들고 국민들이 많이 포기하셨음을 느끼지만 과거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MBC가 호사스럽게 싸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예전보다 관심을 덜 가져주십니까’라고 묻는 건 사치스러운 질문이다. 국민 관심이 줄어 MBC 구성원들의 투쟁 사기가 떨어진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하는 게 먼저다. 잘해야 관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양 : “가장 선구안이 뛰어난 건 시청자다. 시청자들이 MBC 뉴스 뒤에 있는 제작자들이 바뀐 것을 바로 알아차리셨기 때문에 MBC를 떠나신 거다. 방송처럼 사람에 좌우되는 콘텐츠는 없다. MBC 문화를 경험했고 활약했던 인적 자원이 다시 복귀하고 정말 뉴스다운 콘텐츠가 제작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염 : “나가 있는 선배들이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보도가 나아질 수 있다. MBC 뉴스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내부 구성원이 많아지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실제 몇 년 동안 리포트를 직접 제작하지 못했던 동료가 기회가 주어지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획 보도를 쏟아냈다. 그의 좋은 리포트에 주변 기자들이 ‘쪽팔려서 안 되겠다’며 자극을 받았다. 좋은 기사는 매체 영향력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과 균형 잡힌 판단, 뉴스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공감 능력에서 비롯한다. 사장 퇴진을 주장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소 그가 퇴진해야만 외부에 있는 동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기대에 있기도 하다. 경력 기자들과의 관계 설정은 앞으로 숙제일 수 있지만 결국 동료들이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핵심이다.”

조 : “과거 시청자들은 자신감 있고 패기만만했던 MBC를 사랑해주셨던 것 같다. 가끔 지금의 MBC 모습이 서글프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다. 자신만만했던 젊은이의 이미지였다가 지금은 세게 풍파를 맞고 한숨만 내뱉는 중년의 이미지랄까? 어떤 새로운 언론보다 더 새로운 언론이 되기 위해 정말 발버둥 칠 생각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싸움이 끝나면 시민들은 적폐 청산을 위한 ‘똘기 있는 방송국’을 얻게 되실 거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웃음)”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못다한 말이 있다면?

양 : “우리가 겪어왔던 시간들의 마침표가 흔한 말로 ‘정의 구현’이었으면 좋겠다. 김 사장이 MBC에서 저지른 반인륜적 폭력이 정의 구현으로 끝났다는 내용이 역사책 마지막 구절에 기록됐으면 좋겠다. 더 이상 취재 대상이 아닌 취재 기자로 살아가고 싶다.”

조 : “이 엄혹한 세월에 MBC에서 방송하며 살았다. 2012년 MBC 파업이 끝날 때쯤 방송기자연합회가 주최하는 ‘파업 백일장’에서 짧은 시를 써 장원에 입상했다. ‘자신감’이라는 제목이었는데 현업에서 싸우겠다는 취지였다. 결국 못했다. 현업에서 충분히 싸우지 못했다. 때론 능력이나 힘이 부족했다. 문득 그때가 생각난다. 이번엔 정말 못 지켰던 다짐 꼭 지키고 싶다.”

염 : “빨리 ‘밖에 있는’ 선후배들에게 제 자리를 돌려드려야 한다. 그런 부채의식을 항상 갖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는 것도 쪽팔렸다. 그동안 좋은 기사로 붙어본 것도 아니고 하루하루 내 삶을 지워내기 바빴다. 이제는 내가 자랑할 만한 것을 써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좋은 기사를 쓰면 뭐할까’, ‘MBC 보도국 편집 방향을 보면 아무리 좋은 기사를 쓴들 과연 제대로 읽힐까’ 그런 생각도 컸다. 창피해서라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돌아온 선후배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싶다. 그런 역사를 함께 써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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