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과속 개혁에 등 돌린 佛 민심

오윤희 국제부 기자 2017. 8. 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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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희 국제부 기자

지난 5월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에마뉘엘 마크롱(40)은 프랑스에 변화를 몰고 올 구원투수처럼 보였다. 경쟁자였던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가 반(反)이민과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며 극우의 논리를 펼쳤지만, 마크롱은 프랑스 고유의 가치인 '톨레랑스(관용)'를 지키면서도 친(親)시장 정책을 도입해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프랑스 경제는 지난 20여년간 2% 미만의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었다.

당선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마크롱은 상당한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대선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마크롱이 이끈 신생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와 '민주운동당' 연합은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350석을 휩쓸며 0석에서 제1당으로 도약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악수로 속내를 표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강렬한 악수를 해서 트럼프의 기선을 제압하는가 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 회견에선 푸틴 면전에 대고 러시아 국영 언론들을 가리키며 "(정부의) 선전 기관"이라고 직격탄을 날려 화제가 됐다. 많은 프랑스 유권자가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겠다"는 젊은 지도자의 신선한 행보에 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최근 입소스 여론 조사에서 집권 직후 64%였던 마크롱의 지지율이 42%로 20%포인트 넘게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임기 초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때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해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 불렸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조차 집권 두 달 무렵 지지율은 55%였다.

전문가들은 인기 하락의 주요 원인이 마크롱의 개혁 속도에 있다고 분석한다. 의욕이 앞서다 보니 주변의 의견을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린다는 것이다. 국방 예산 삭감과 예산·세제 개혁 과정에서 주위를 찍어 누르는 듯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반대 의견을 낸 합참의장을 전격 경질한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필리프 드파르주 선임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마크롱 대통령은 너무 빨리 가고 있다.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아주 크게 넘어질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우리 정부를 볼 때도 개혁 조급증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탈(脫)원전에 대해선 여전히 찬반 의견이 팽팽히 갈리는데도 이미 착공한 사업까지 멈춰 세웠다. 최저 임금 인상, 부자 증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국가 운영체계 전반을 흔들 정책도 전례 없이 빠르게 일방적으로 추진 중이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개혁이 국민의 발걸음과 같은 보폭인지, 혹시 조급증에 빠져 홀로 과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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