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와 눈맞춤

2017. 8. 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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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Her Eyes

세상도, 인생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예리. 청춘의 한 페이지에 그녀의 맑은 시선이 머문다

화이트 레이스 러플 블라우스는 Nina Ricci.

레터링 티셔츠는 On & On. 언밸런스한 체크 스커트는 Ports 1961.

슬리브리스 니트 톱은 Maison Marais.

아이보리 배색의 니트 톱과 스커트는 모두 Isabel Marant Etoile. 태슬 장식의 샌들은 Santoni.

레드 벨벳 원피스는 Dior.

드라마 촬영 중이죠 <청춘시대2>를 찍기 시작한 지 3주 됐어요. 오늘 쉬는 날인데 나와줘서 고마워요 휴일은 반납했어요. 영화 <더 테이블>이 개봉하면 더 바빠질 것 같아요. 최근 신나게 논 건 언제예요 결혼 앞둔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오랜 친구인데 여행 한 번 다녀온 적 없었어요. 이대로 보낼 수 없더라고요. 거창한 여행은 아니지만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둘만의 추억을 만들었어요. 제주도는 어딜 가면 좋나요 많이들 바다를 찾는데 저는 숲이 좋았어요. 차를 두고 한적하니 숲길을 거닐거나 오름을 오르기도 했어요. 지난해 이맘때 <청춘시대>가 방송됐어요. 시즌2를 예상했나요 전혀요. 다른 배우들도 그랬어요. 마지막 촬영하고 다같이 울었어요. 다시 못 볼 것처럼 펑펑. 그런데 ‘벨에포크’에 또 오게 될 줄이야. 하하. 안 봐도 촬영 분위기를 알 것 같아요 서로 합이 잘 맞아서 쓱쓱 진행되고 있어요. 감독님만 걱정하세요. 너무 순조로워서 뭔가 놓치는 건 아닌가 하고. 당연히 좋으니까 <청춘시대2>에 출연했겠죠? 이 작품의 어떤 점이 좋아요 다섯 청춘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어요. 한 명 한 명 너무 좋아요. 연민도 느껴지고.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서로를 보듬는지,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요. 자신이 연기한 진명이 어떤 삶을 살지 상상해 봤어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치열하게 살던 진명은 마지막 회에서 자신을 위한 여행을 떠났죠 진명은 여행하면서 비로소 혼자가 되고, 혼자라는 상태에 대해 고민했겠구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달라지고 성장하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졌어요. 시즌2에서 진명은 취업에 성공했다면서요. 예상대로 달라졌나요 전편에서 진명이 처한 상황이 너무 안 좋았어요. 저는 하우스 메이트들과 똑같이 20대 청춘의 쾌활함과 명랑함을 가진 사랑스런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그런 진명을 만나고 있어요. 연기하면서 ‘진명이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하며 알아가고 있어요. 말투나 목소리 톤조차 미묘하게 달라진 걸 느껴요. ‘생계형 청춘’ 진명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고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괜찮게 살고 있는 건가?’라며 시청자들이 자문하게 만들었어요. 본인도 예외는 아니었을 텐데요 지난해에 참 바쁘게 활동했어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재미있을 것 같아, 해볼래!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다 보니 일이 늘어났어요. 그러다 여유가 생기고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잘 살고 있는지 점검해 봤어요. 결론은 지난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여성이 주체가 되는 드라마와 영화들을 했거든요. 올해는 그러지 못해 안타깝지만, 지난해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지금 한예리는 청춘인가요 네! 제가 체감하는 저만의 나이란 게 있어요. 얼마 전까지는 스물두 살 같았는데 지금은 스물여섯 살쯤 됐어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몰라요. 하하. ‘마음만은 청춘’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 말이 맞아요. 서른의 청춘, 마흔의 청춘, 오십의 청춘이 있다고 봐요. 부모님도 ‘지금 나이에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마시고 행복을 위해 뭘 하고 싶은지 찾으셨으면 해요. 예순에 맞이할 청춘기에 꼭 있었으면 하는 건 소소하게 같이 춤추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대중이 본 적 없는 한예리의 10대는 어땠나요 무용밖에 모르는 아이였어요. 춤이 전부라고 여겼고, 춤추는 동안 행복했어요. 그래서 제가 없고 무용만 있었어요. 뒤늦게 ‘나는 왜 아무 생각도 안하며 살았지?’라며 저를 돌아봤죠. 친구들이 고등학생 때 할 법한 고민을 저는 대학 졸업쯤 했어요. 평생 무용만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중, 예고, 한예종을 다니면서 부딪힐 일도, 고민할 일도 없었어요. 자신을 깬 계기는 영화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달라졌어요.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좋아하는 것의 가짓수가 꽤 돼요. 행복지수도 높아졌나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어요. <청춘시대>만 봐도 20대는 많이 흔들리잖아요. 저도 그랬고, 서른이란 나이의 안정감을 기대했어요. 그 나이가 되면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한 시간이 한결 선명해지고 생각도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대로 됐나요 확실히 30대가 좋아요. 저란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된 만큼 재미있고 행복해요. 미래의 나에게 답을 듣고 싶은 게 있다면 엄마로서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요.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낳고 잘 키우는 사람을 보면 신기해요. 희생은 물론이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잖아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결혼에 대한 막연한 고민은 한 사람을 평생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게 가능할까? 이 생각을 많이 해요. 결혼은 가능성과 믿음으로 하는 건데, 상대가 봤을 때 제가 믿음직한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자신을 그리 신뢰하지 않거든요. 하하. 춤과 연기는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은 대상인가요 오래해 온 무용은 남편 같아요. 50년쯤 지지고 볶고 사랑도, 상처도, 많이 주고받은 남편이랄까. 이제는 인생에서 무용이 없으면 헛헛하고 외로울 것 같아요. 연기와는 연애하는 기분이에요. 지금은 정말 좋은데 마음이 식으면 다신 안 볼 것 같아요. 질질 끌고 갈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해요. 올해 3월 ‘위안부’라 불리게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공연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에 무용수로 참여해 화제가 됐고, 최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로 활동했어요. 배우로서 영향력을 쓰는 일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연기를 시작해서 작은 역할을 맡았을 땐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 감사했어요. 그런데 배우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고 뭔가를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위치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알고 나니까 그냥 지나칠 수 없더라고요. 최근 다양성영화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소속사 대표님이 “우리 예전에는 배우 일 하면서 삼시세끼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돈도 벌고 회사도 커졌으니 영화산업에 좋은 일 할까?”라고 하시는데 너무 맞는 말인 거예요. 훌륭한 감독, 좋은 배우들이 계속해서 나오려면 다양성 영화시장이 발전하고 지속돼야 해요. 여기에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배우는 정하담과 이수경. 수경 씨는 주연을 맡은 영화 <용순>이 인상적이었어요. 입을 꽉 다물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여고생을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건강하고 예뻤어요. 하담 씨는 연기력이 워낙 탄탄하고 굉장히 매력 있는 얼굴을 가졌어요. 다른 작품을 통해 계속 보고 싶어요. 힘이 더 생기면 뭘 하고 싶어요 그땐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 같아요. 영화산업 말고도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많잖아요. 동물보호든 인권 문제든 제가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공부해야 하고,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그 일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때로는 말 한 마디가 힘이 되기도 해요. 지금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평소 이 말을 좋아해요. “식사하셨어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잘 먹고 잘 자야 해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기도 해요.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식사를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신을 위해 하루에 한 번은, 힘들다면 이틀에 한 번은 꼭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겨먹었으면 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 같아요. 마음에 구김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배우란 직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연기하는 일이에요. 현실과 밀접히 맞닿아 있어야 해요. 그래서 어느 정도 구김과 때는 나쁘지 않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 구겨져야겠어요 때도 타고 멍도 들고 인생의 쓴맛, 단맛, 죄다 느끼면서 살겠습니다.

사진 김선헤

스타일리스트 박세준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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