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살면서 공황장애가 사라졌어요"

최민지 기자 2017. 7. 31. 22: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서울 ‘한 지붕 세대 공감’ 정책에 독거 어르신·청년 ‘웃음꽃’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 공감’ 사업으로 8개월간 함께 생활한 전세은씨(왼쪽)와 이선재 할머니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의 이 할머니 빌라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말 가족이 필요했어요. 내가 살아 있는지 들여다봐줄 사람요.”

대학원생 전세은씨(32)에게 이선재 할머니(73)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경기 수원에서 함께 살던 가족이 지방으로 이사가면서 혼자 남게 된 전씨에게 혼자살이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간 꼼짝없이 집 안에만 누워 있던 적이 있는가 하면, 세들어 살던 원룸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떼인 일도 있었다. 악재가 이어지면서 전씨는 공황장애를 겪었다.

연극배우이기도 한 그는 무대에서 웃을 수도 대사를 하기도 힘들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도 탈 수 없었다. 혼자 방 안에 누워 있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던 때, 이 할머니를 만났다.

‘남남’인 전씨와 이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 공감’에 참여하면서다. 한 지붕 세대 공감은 어르신과 대학생이 주거공간을 함께하는 사업으로, ‘공유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 주거정책 중 하나다. 어르신이 집 안의 빈방을 내어주면 학생은 주변 시세의 60% 수준의 임차료를 내고 말벗이나 간단한 심부름을 한다. 6개월 계약으로 시작해 연장도 가능하다. 빈방이 1개 이상 있는 60세 이상 어르신과 대학 및 대학원 재·휴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2014년 초부터 2017년 7월 현재까지 총 526가구 593명의 학생이 이 사업에 참여해 새 가족을 만났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의 한 빌라에서 만난 전씨와 이 할머니는 다정한 친할머니와 친손녀 같은 모습이었다.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고 교직생활을 하며 혼자 3남매를 키웠어요. 자식들이 다 장성해 독립해 나가게 되니 허전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 그때 전씨를 만났다. 할머니에게도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이다.

변화가 찾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씨는 할머니와 살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연극활동을 시작했고, 올 초부터는 학교 조교 일도 하게 됐다.

변화는 이 할머니에게도 찾아왔다. “한번은 내가 전동휠체어랑 충돌해 119를 타고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당장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세은이밖에 없었어요. ”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생활습관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밥을 해놓고 기다리는데 밥을 안 먹으면 그렇게 속이 상하더라고.” “전 세끼를 다 챙겨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세끼를 꼭 다 챙겨드시거든요.” 하지만 식사를 함께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자 갈등도 사라졌다.

공간을 공유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이 할머니는 전씨가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방 3개짜리 빌라(69.73㎡)를 뜨끈하게 데우려면 난방비 30만~45만원이 드는데, 세은이가 있어서 지난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전씨도 할머니 집에 들어오면서 생활비가 절반으로 줄었다.

함께 생활한 8개월의 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무엇인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전씨는 “혼자 살면서 너무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낸 평범했던 일상 자체가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전씨는 이 할머니의 집을 나왔다. 누수 문제로 곰팡이가 생기는 등 방 상태가 악화되면서다. 이 할머니의 집을 나와 선택한 곳 역시 한 지붕 세대 공감에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공유주택이다. 그는 “타인과 함께 살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