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프로는 밤에 아마추어는 낮에, 뭔가 잘못된 여름 축구

조회수 2017. 7. 31. 16: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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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아마추어 축구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프로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장면이다. 

잔디가 주는 푸르름이 가장 강렬한 계절은 역시 여름이다. 그라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 역시 여름과 참 잘 어울린다. 아이들의 볼 차는 모습과 간간이 들려오는 응원소리, 주변에 펼쳐진 울창한 나무와 그늘 아래 더위를 식히는 관중까지. 여름의 축구장은 다른 계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매력이 있다. 단,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부디 사진에서만 전혀지는 느낌을 보고 주변 축구장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위 장면은 시원한 곳에 앉아 사진으로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연일 38도를 웃돌고, 매일 아침 폭염주의보 문자가 전송되는 여름 축구장은 사실 상상 이상으로 덥다. 이제 그림같은 풍경이 아닌 현실판 여름 축구장의 사진을 꺼내본다. 프로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장면들이다. 

여자축구 선수들이 쿨링 브레이크를 이용해 수분을 섭취하고 있다.  

*쿨링 브레이크: 국제축구연맹(FIFA)이 체감온도지수 32도 이상의 무더위 속에서 축구 경기가 진행될 경우 선수 보호를 위해 도입한 경기 도중 휴식시간을 말한다. 심판의 재량으로 쿨링 브레이크를 가질 수 있으며 전후반 30분경에 각각 3분씩의 시간을 준다.

지난 6월17일 오후 2시 김천에서 열린 고등부 왕중왕전과 7월21일 오후 5시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WK리그 경기장 풍경 중 일부다.

고등부 왕중왕전이 열린 6월 김천시의 기온은 7월 말인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혹서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기는 정오에도, 오후 2시에도 펼쳐졌다. 촬영 당시 김천시의 기온은 31도였지만 인조잔디와 육상트랙이 뿜어내는 열기는 상상이상으로 뜨거웠고, 기자는 오후 2시에 킥오프 한 경기를 전반전도 채 다 찍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늘 한 점 없는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힘겨운 날씨였다.  

그런 뙤약볕 아래 선수들은 전·후반 잠깐씩 주어지는 쿨링 브레이크에 의지한 채 90분을 쉼 없이 뛰었다.   

선수들은 화상 위험을 감수하고 인조잔디에서 태클을 감행하는 등 열정적인 경기를 펼쳤다.
볕이 워낙 뜨겁다 보니 몇몇 선수는 무더위에도 긴팔을 착용한 채 경기를 뛰었다.

프로리그라고는 하지만 아직 세미 프로에 가깝고, 환경은 아마추어와 별반 차이 없이 열악한 WK리그 선수들도 위험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7월21일 오후 5시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WK리그 서울시청과 구미스포츠토토 경기장면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6월 이후 프로경기는 대부분 저녁 시간대로 시간을 옮겼지만 WK리그 서울시청의 홈 경기는 여전히 오후 5시에 열리고 있다. 효창운동장의 시설 노후로 야간경기를 펼칠 수 있을 만큼의 조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벤치 자리가 모자라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바닥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구미스포츠토토 선수단 
35도가 웃도는 날씨에 인조잔디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긴팔과 두꺼운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서울시청 오은아 골키퍼  

실내에서 일하는 이들도 더워죽겠다며 '피서'를 떠나는 시기에 땡볕에서 축구라니 문제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차치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더 우려스러운 사실은 촬영 때보다 기온이 더 높아진 지금 전국 각지에서 남여 초·중·고등학생의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KFA 페이스북(@KFA)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혹사를 지적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거르지 않고, '제00회'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모든 K리그 경기가 저녁 7시 이후에 열리는 지금, 건장한 프로 선수들도 못하는 것을 아이들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간혹 야간경기를 진행하는 곳도 있지만 대회 숫자에 비하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어도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는 킥오프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근본적인 해답은 아니다. 10시에 킥오프 한 경기는 정오에 끝나고, 3시 경기를 뛰는 팀은 해가 가장 뜨거운 2시부터 몸을 푼다. 알다시피 저녁 6시에도 볕이 뜨거운 요즘이다. 

조끼만 입은 채 미니게임으로 몸을 푸는 유소년 선수들
지난 5월 프로축구연맹은 마른 잔디로 인해 일어나는 부상을 방지하고, 공격 속도를 높이기 위해 경기 전 그라운드에 물 뿌리기를 의무화 했다. 덕분에 프로 선수들은 그라운드의 열기가 식은 촉촉한 잔디 위에서 저녁 경기를 치르고 있다.

말로는 '즐기는 축구를 하라'면서 막상 아이들이 쉬고, 즐겨야 할 시간에는 '그래도 뛰라' 말한다. 무더위 선수보호를 위해 유소년 리그는 쉬지만 휴식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그 시기에 많은 대회가 열린다. 

2013년 8월 11일. 낮 최고기온 37도에 열린 화랑대기 U-11 결승전 종료 순간. 우승이 확정됐지만 아이들은 옷을 걷어올려 땀을 닦기 바빴다.   
2017년 6월 17일. 언남고와 전주공고의 경기 종료 순간. 언남고(파랑 유니폼)가 4-0으로 대승을 거뒀지만 선수들은 기뻐할 틈도 없이 종료휘슬과 함께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2013년 8월 칼럼: [구윤경의 포토카툰][화랑대기 르포]우승 순간 땀 닦기 바빴던 꿈나무들: http://v.sports.media.daum.net/v/20130821080400040>


우승 순간 땀 닦기 바쁜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칼럼을 쓴 지 4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8월에 해수욕장이 아닌 축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전 대한축구협회에서 촬영한 인터뷰에서 지소연은 여름에 대한 기억을 묻자 "여름에는 거의 못 쉬었어요.. 고등학생 때? 모르겠어요 잘 기억이안나요. 어딜 놀러갔는지..."라고 답했다. 기억날 리 없다. 기록을 찾아보면 지소연은 중·고등학교 시절 여름에 꾸준히 여자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대회에 출전한 초등부 축구팀이 작은 나무 그늘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매년 학부모의 성토가 나오고, 언론에서도 문제를 제기하지만 작은 변화도 없는 것을 보면 뜨거운 여름 아이들의 휴식은 아무래도 어려울 듯 하다. 그렇다면 낮 경기를 피할 규정이라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건장한 성인 남성(프로)은 안 되는데 연약한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혹서기 낮 경기. 그 뒤에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숨어있다. 

이상 고온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리든 말든 우리 고장, 내 대회만 유치하면 된다는 욕심 때문에 아이들은 오늘도 뙤약볕으로 내몰린다. 인재가 발생할 것이 뻔한데 누구도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 일이 터져야 대책을 마련하는 답답한 실정이 또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조명시설을 갖추자니 부담스럽고, 대회는 치르고 싶은 이기심. 대회를 못하게 하자니 껄끄럽고, 대회신청은 받아버린 우유부단. 현명하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운동하는 아이들의 여름은 괴롭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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