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주여성 잔혹史.."맞아도 말할 곳이 없어요"

이성훈 기자 입력 2017. 7. 31. 10:25 수정 2017. 7. 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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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도 하소연할 곳 없는 이주여성

2주 전 보도국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의 한 시골 마을로 시집을 왔다는 A씨였습니다. A씨는 남편에게 맞았는데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A씨의 결혼생활이 처음부터 불행했던 건 아닙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예쁜 딸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잦은 손찌검은 A씨를 지치게 했습니다. 결국 남편과 법적으로 갈라섰는데, 황당하게도 A씨는 아직 남편과 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양육권이 남편에게 있는데 아이와는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을 받아줄 마땅한 거처가 없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A씨는 지금도 남편에게 맞을 때가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몇 차례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친구 한 명 없는데다, 도움을 청할 이웃도 없다고 했습니다.

● 낯선 땅에서 19명이 스러져갔다

가정폭력은 강력사건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지난달 한 이주여성이 시아버지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80대 노인은 피부색이 다른 며느리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심지어 겸상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편견과 아집이 이 노인을 괴물로 만든 걸까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이주여성은 19명에 달합니다. 임신한 몸으로 아파트 9층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추락해 숨진 베트남 여성부터 보험금을 노린 남편에게 살해당한 캄보디아 여성까지. 그 기구하고도 참혹한 사연이 이주여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국내 사망 이주여성 명단 (집계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1) 레*** (2007년 3월 대구, 베트남)
임신한 몸으로 갇혀 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사망

2) 후*** (2007년 6월 충남 천안, 베트남)
입국 한 달 만에 남편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 18대 부러져 사망

3) 쩐*** (2008년 3월 경북 경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 만에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4) 체** (2010년 3월 강원 춘천,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수면제 먹이고 방화하여 사망

5) 탓**** (2010년 7월 부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 만에 조현병 환자인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6) 강** (2010년 9월 전남 나주, 몽골)
가정폭력 피해 몽골여성 E씨를 보호하려다 E씨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7) 황** (2011년 5월 경북 청도, 베트남)
출산한 지 19일 만에 남편에 의해 칼로 난자당해 사망

8) 팜*** (2012년 3월 강원 정선, 베트남)
조현병 남편에 의해 사망

9) 리** (2012년 7월 서울 강동구, 중국)
평소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10) 김** (2012년 7월 강원 철원, 중국)
남편의 폭력으로 나흘 동안 뇌사 상태로 있다가 사망

11) 응*** (2014년 1월 강원 홍천, 베트남)
남편이 목 졸라 살해

12) 전*** (2014년 1월 경남 양산, 베트남 )
남편이 목 졸라 살해

13) 서** (2014년 7월 전남 곡성, 베트남)
남편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

14) 아*** (2014년 8월 충남 천안,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교통사고를 위장해 살해

15) 김** (2014년 11월 경기 수원, 중국)
동거남이 살해

16) 응*** (2014년 11월 제주, 베트남)
한국 남성이 살해

17) 누*** (2014년 12월 경북 청도, 베트남)
남편이 살해

18) 이** (2015년 12월 경남 진주, 베트남)
이혼 후 자녀 면접권을 가진 전남편이 아이와 함께 살해

19) 부*** (2017년 6월 서울, 베트남)
시아버지가 살해
 
● 가정폭력에 신음하는 이주여성들

'2015년 여성가족부 전국다문화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2015년 현재 18만 5천여 명에 달하는 걸로 추산됩니다. 절대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실태를 보여주는 정확한 통계 수치는 없습니다. 다만 가정폭력 상담 건수를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지난해 다문화가족 종합정보전화센터인 다누리콜센터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1만 3천여 건입니다. 이주여성 가운데 7%가 크고 작은 가정폭력을 호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정폭력 특성상 문제가 발생해도 외부에 잘 알리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이주여성이 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폭력 피해 등으로 임시 보호가 필요해 긴급피난처를 이용한 입소자도 523명에 달했습니다.

● 서툰 한국어와 취약한 '사회적 관계 맺음'

아프면 아프다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얘기를 해야 할 텐데, 중국에서 온 A씨처럼 가정폭력에 신음하는 많은 이주여성은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데 소극적입니다. 일단 서툰 한국어가 걸림돌입니다. 한국에 오래 거주했으니 당연히 말을 잘할 거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산입니다. 이주여성의 34%가 언어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더라도 자신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언어 문제도 심각하지만 취약한 사회적 관계가 더 큰 문제입니다. 결혼이민자나 귀화자의 30% 이상이 필요로 하는 사회적 관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이나 집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의논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다 보니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어 새로운 관계 맺음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A씨도 한국어가 매우 서툴렀습니다. (저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중국인 상담 선생님의 통역 덕분에 A씨와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더구나 하루에 12시간 넘게 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가족 외에는 따로 만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회적 고립은 우울증을 불러오고,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대응할 힘도 앗아갑니다.

●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관심은 계속돼야 한다

앞서 가정폭력 문제로 상담을 요청한 이주여성이 전체의 7%라고 말씀드렸지만, 다른 민간단체의 조사에서는 3명 중 1명꼴로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문제가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A씨는 경찰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발생해서 신고하면 당장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경찰이 남편과 한통속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폭력사건으로 한 번 문제가 생긴 가정은 경찰과 지자체가 세심하게 추적 관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가정폭력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반복성'입니다. 한 번으로 그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주여성들에 대한 한글 교육도 절실해 보입니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관계 맺음을 지원해 줄 필요도 있습니다.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모두가 고민해야 합니다. 언어와 사회적 관계는 이주여성들에게는 자신을 방어할 최소한의 무기입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주여성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구성원입니다. 일부는 조국의 동량이 될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때까지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도움이 필요한 이주여성은 아래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홈페이지 : http://www.wmigrant.org

다누리콜센터 : 1577-1366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서울) : 02-3672-7559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충북) : 043-223-5254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부산) : 051-864-2603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전남) : 061-272-1562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전북) : 063-227-2990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대구) : 053-944-2979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경남) : 055-741-6355      

이성훈 기자sungh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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