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2년] "15년도피 살인범, 수갑 채우자 오열..이젠 죄 짓고 못삽니다"

2017. 7. 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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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가서 날씨를 찾아보시면 아실 겁니다. 장모(52) 씨를 집앞에서 기다리다가 대문에서 딱 수갑을 채웠습니다. 당신을 2002년 12월 14일 가리봉 호프집 살인사건 피의자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 행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장 씨가 고개를 푹 숙입니다. 차에 태워서 돌아오는 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겁니다. 방금까지 마른하늘에. 어? 홍 형사 이거 왜 이러지? 누가 그럽디다. 돌아가신 분 한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다고."

2002년 작성된, 누렇게 빛바랜 사건 조서를 뒤적이던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팀장 정지일 경감은 '가리봉 호프집 살인사건' 피의자를 수갑채우던 순간 쏟아지던 폭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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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미제사건전담 정지일 팀장 인터뷰
-“체포순간 갑자기 폭우…망자의 한(恨) 풀린 듯”
-“형사 눈빛 꿈에 나왔다며 그간 무서웠다 털어놔”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기상청 가서 날씨를 찾아보시면 아실 겁니다. 장모(52) 씨를 집앞에서 기다리다가 대문에서 딱 수갑을 채웠습니다. 당신을 2002년 12월 14일 가리봉 호프집 살인사건 피의자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 행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장 씨가 고개를 푹 숙입니다. 차에 태워서 돌아오는 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겁니다. 방금까지 마른하늘에. 어? 홍 형사 이거 왜 이러지? 누가 그럽디다. 돌아가신 분 한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다고….”

2002년 작성된, 누렇게 빛바랜 사건 조서를 뒤적이던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팀장 정지일 경감은 ‘가리봉 호프집 살인사건’ 피의자를 수갑채우던 순간 쏟아지던 폭우를 떠올렸다. 

서울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팀 정지일 팀장이 15년전 작성된 사건 조서를 다시 살피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2015년 8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1999년 5월 20일 황산테러를 당해 숨진 김태완(사망 당시 6세) 군의 사건을 계기로 형법이 개정됐다.

경찰은 각 지방경찰청에 미제사건 전담팀을 만들었다.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살인사건을 추렸다. 273건이 나왔다. 10년 전에는 찾지 못했던, 혹은 찾았으나 감식이 되지 않던 DNA와 지문, 족적과 조서를 다시 살피고 또 살폈다.

그렇게 서울청 미제팀은 깨진 맥주병에서 쪽지문 하나를 찾아냈다.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으로 쪽지문 주인을 찾아냈다. 족적(발자국) 분석기법도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 분석 결과 당시 범인은 뒷굽이 둥근 형태의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결론이 나와 용의자 신장을 추정할 수 있었다. 쪽지문 결과와 비교하자 용의자가 특정됐다.

“죄 짓고는 못 삽니다. 장 씨를 잡던 순간으로 돌아가면 처음에 부인을 합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그래서 우리 형사 중에 한 분이 그랬죠. 자기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하라고. 그랬더니 장 씨가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옵니다. 그리고 조사실 책상에 앉혀놓고 조사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립니다. 아까 그 형사 눈이 사실 어젯밤 꿈에 나왔다고, 그동안 너무 무서웠다고요.”

서울지방경찰정 중요미제사건 전담팀 정지일 팀장이 가리봉 호프집 살인 사건의 핵심 단서가 된 쪽지문이 묻어 있던 깨진 맥주병 조각의 현장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정 팀장은 오래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과정에서,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유가족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정 팀장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을 여러 번 만나야 했습니다. 혹시 저희가 모르고 빠뜨렸던 것이 있을 수도 있고 하니까요. 팀원 중에 딱 2명만 정해서 유가족과 연락하게 했죠. 장 씨를 검거하고 나서 검거 경위도 설명드렸습니다. 유가족이 이제는 어머니께 떳떳하게 제사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한테는 그것만 해도 어디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서울청 미제팀은 이제 다른 살인사건 서너 건을 중심으로 수사 중이다. 최근 방송 등을 통해 공개된 ‘노들길 살인사건’도 그 중 하나다. 2006년 7월 4일 서울 영등포구 노들길 옆 배수로에서 알몸 상태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증거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씻겨진 상태였다. 목격자의 증언은 엇갈렸다. CCTV 영상은 마땅한 게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팀원 2명이 새로 합류했다.

“이제 용의자가 800명으로 추려졌습니다. 하나하나 찾아봐야죠. 잡힐 때까지 할 겁니다. 어딘가 있을 범인, 당신도 발 뻗고 편히 못 자고 있을 겁니다. 이제 그만 경찰로 오셔서 자수하시고 남은 생이라도 마음 편하게 사십시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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