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가 남성 黨대표라면 감히 '언컨트롤러블'이라 했을까"

최보식 선임기자 2017. 7. 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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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가 대리 사과하겠다면 사전에 내게 양해 구했어야..
임종석 실장은 마땅히 여당 대표실부터 들러야 했다"
"솔직히 나를 향한 '독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다'는
강한 이미지 부담돼.. 나도 化粧하고 꽃 좋아해"

추미애(59)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곱게 화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보름 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을 찾아가 대리 사과하면서 "추 대표는 언컨트롤러블(uncontrolable·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지요. 사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런 평가가 있더군요. 본인도 알고는 있습니까?

"(웃음) 당대표를 누가 감히 컨트롤하려고 합니까…. 앉자마자 뜨겁게 들어가시네요."

―남들에게 끌려다니는 것보다야 나쁘진 않다고 봅니다.

"끌고가려는 게 기성 정치의 계파적 발상입니다. 저는 국민을 바라보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대표는“박지원 전 대표는‘제보 조작 사건’에 직접 개입했거나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당초 국민의당과의 갈등은 '머리 자르기' 발언에서 비롯된 거죠?

"박지원 전 대표가 '제보 조작 사건에 관련 있다면 내 목을 내놓겠다. 추 대표는 뭘 내놓을래'라며 먼저 자극했습니다. 날 끌어들이려는 수법임을 알고 그땐 대꾸를 안 했습니다. 일주일쯤 지나 한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목을 내놓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끔찍한 말이다. 목이 아니라 진실을 내놓아야 한다. 머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고 답한 겁니다."

―박지원 전 대표가 제보 조작 사건의 '머리'라고 봅니까?

"대선 나흘 전에 당원 혼자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분이 직접 개입했거나 보고를 받았다고 봅니다. 관련성을 부인하다가 검찰 조사에서 '36초간 통화' 사실이 드러나자, 내 인터뷰 발언을 증폭시킨 겁니다. 이분은 뉴스를 뉴스로 덮는 데 익숙하니까요."

―추 대표에 대해 "언행이 거칠다" "여당 대표가 품격 없이 당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있더군요.

"저는 정중하게 말한 겁니다. 헌정 질서를 바로세우는 이번 대선에서 제보 조작은 용서할 수 없는 죄질입니다. 협치(協治)를 내세워 이를 덮어둘 순 없습니다."

―추 대표가 '야당을 쪼갠다'고 하더군요. 국민의당을 해체·흡수하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발언은 아닙니까?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공당(公黨)이 야바위나 깡패 집단처럼 불의를 감싸는 집단이 돼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저 당은 자정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제가 쪼개고 할 게 없습니다. 정당은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배인데, 민심과 배치되는 정당은 자연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에게 건넨 "상추·고추·배추 즐겨 드시라, 추미애까지"라는 발언이 화제가 됐는데,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국민의당은 제보 조작 사건을 정쟁화해 정부조직법과 추경예산 통과에 연계시켰습니다. 추경에 빗대 '추'가 들어간 것은 쳐다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영수회담에 먼저 도착해 문재인 대통령과 한담하니 '추경이 통과돼야 휴가라도 생각해볼 텐데' 하더군요. 제가 '저쪽에서는 추가 들어간 것은 다 싫어하니 어쩌죠' 했어요. 그 뒤 회담 자리에서 제가 '상추·고추·배추 즐겨 드시라, 추미애까지'라고 말했던 거죠."

―유머 감각이 있군요.

"많이 있어요. 우리 딸이 적당히 하라고 말릴 정도죠."

―청와대를 떠날 때 문 대통령에게 "여당 대표 대리 사과 하지 말고 저와도 소통하자"고 했는데? 이건 진심이지요?

"아주 진심이죠. 청와대에서 대리 사과를 하겠다면 사전에 제게 양해를 구했어야 합니다. 더욱이 사과하러 오는 장소가 국회였어요. 임종석 실장이 마땅히 여당 대표실부터 들렀어야지요."

―'추미애 패싱(passing)'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자존심이 상했겠습니다.

"대표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위상이 흔들리는 겁니다. 정권을 받쳐주는 그릇이 부서지는 겁니다."

―정권 출범 직후 '내각 추천권'을 갖겠다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가 포기했지요?

"당헌(黨憲)에는 담았어요. 이번에는 반대해 물러섰지만, 제가 옳았다는 걸 느낄 겁니다. 인사는 공론화하고 투명할수록 좋습니다. 닫아놓았을 때 이번처럼 인사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내각 추천권을 요구한 것은 정당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권은 유한하나 정당은 영속하는 것이니까요."

―요즘 문 대통령 지지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추 대표에 대해 '추다르크' '더 탱크' '가디언'이라며 추앙 일색이라더군요. 당초 추 대표는 친문(親文) 세력은 아니지 않습니까?

"김대중 때도 저는 동교동 가신이 아니었고, (웃음) 어느 누구에게도 살랑살랑해서 가깝게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왜 이럽니까?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니(문재인 애칭)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들 합니다. 제가 권력을 공유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가치를 공유하려는 걸 아니까요."

―문 대통령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 때문인가요?

"제가 그런 가치에 공감하고 문 대통령과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보는 거죠. 그 지지층이 우쭈쭈쭈 해주기를 겨냥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편에 서는 가치이지요. 정치를 하는 이상 그런 가치를 가져야 하는 거죠."

―문재인 지지 세력을 확보하니 추 대표에게는 지금이 정치 인생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웃음) 꽃가마를 타야 전성기죠. 몸무게가 빠질 정도로 힘들어요. 제가 오뚝이처럼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양심에 비춰 떳떳하게 살아왔기 때문이죠…. DJ가 '마누라와 자식 앞에서 당당하면 가시밭길에 서있을 수 있다'고 했어요."

―항상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다면 정말 놀라운 일인데요.

"항상은 아니지만…"

―당내에서는 우원식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더군요. 두 분 중 누가 더 문제가 있다고 봅니까?

"이번 추경예산 표결 때 우리 당에서 24명이 외유했고 2명은 불참했습니다. 우리 지지자들의 질타가 쏟아졌어요. 민주주의 의식이 그만큼 높아진 겁니다. 의원들이 외유한 것은 원내대표가 도장을 찍어줬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고를 당대표인 제게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쪽이 문제인지 판단해보십시오."

―판사를 하다가 DJ에게 발탁됐지요. 1997년 대선 때 당에서 대변인을 시켜 김대중 후보 수행을 맡기려고 하자 "얼굴마담이나 장식용으로 대하지 마라"며 반발했다고요? 패기가 있었군요.

"그전에 제가 부대변인을 해봤는데 잘 안 맞았어요. 그런데 '여성대변인'으로 임명하겠다고 해서 거절한 거죠. 저는 '여성' '여류' 같은 접두사가 붙는 걸 싫어해요."

―1997년 대선 때 TK 유세를 진두지휘하면서 '추다르크' 별명을 얻었지요. 이건 마음에 듭니까?

"지역감정을 허무는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했는데, 언론에서 '추다르크'라고 써준 거죠. 그 별명은 마음에 듭니다."

―추 대표에게서 '세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솔직히 '독하다'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온다'는 식의 강한 이미지가 부담이 됩니다. 저도 화장하고 입술에도 바릅니다. 꽃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여성이 대통령이 되려면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어록도 있더군요?

"어떤 스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종군 여기자가 긴 치마를 입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죠. 제게 '누아르(Noir)'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상가(喪家)에 검은 정장 차림으로 조문을 갈 때 뒤에 비서실장과 당직자들이 따라붙잖아요. 그 광경이 흡사 조직의 여(女)보스처럼 비쳤는지… '여자가 걸음걸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도 들었어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추 대표에 대해 '어깨에 너무 힘주고 걷는다'고도 하더군요.

"걸음걸이는 무릎 관절이 안 좋아서 그렇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은 판사 시절 진술조서를 읽던 습관에서 목이 거북목처럼 됐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성이니까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만약 남성 대표라면 감히 '언컨트롤러블하다'고 하겠습니까.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포장됐겠지요."

―추 대표는 먼저 이성(異性)의 팔짱을 끼거나 포옹을 잘 하더군요. 그건 남성처럼 보이기 위함입니까? 실제 남성 정치인이 그렇게 했으면 성적 논란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겠지요.

"어느 정치인은 지하철 역에서 지나가는 여성에게 포옹도 하던데 그건 성희롱이 아니고, 저만 하면 그럽니까.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제가 장하성 실장의 팔짱을 끼니 한사코 뿌리치는 겁니다. 그 장면을 본 대통령께서 장 실장에게 '왜 한사코 빼느냐'고 물으니, '가정을 위해서'라고 답변하더군요."

―추 대표는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다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요?

"앞장선 것은 아니고, 오히려 탄핵을 막는 입장이었어요. 탄핵하면 총선에 자살골이 될 것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탄핵이 당론으로 채택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왜 갈등이 있었습니까?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움직임과 대북 송금 수사 문제로 갈라선 겁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비교하면요?

"김대중은 넓은 도량, 비상한 기억력, 사안을 이해하는 능력, 역사를 내다보는 안목이 탁월했습니다. 함께 있으면 배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무현은 편하고 따뜻하고 솔직했습니다. 국민을 자랑스럽게 만든 대통령이었지요."

―박정희에 대해 그런 평가를 듣기는 어려울 테고, 수치로만 공과(功過)를 말하면요?

"6대4입니다."

―홍준표 대표와는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라는 인연이 있더군요. 그런 홍 대표가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했다고요?

"홍준표가 원내대표를 맡았을 때입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3년 연기하자는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언쟁이 붙자 환노위위원장인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 홍 대표와 앞으로 대화가 되겠습니까?

"지난번 방문했을 때 '팔짱을 끼자'고 하니까 응했고, '애나 봐라'는 말도 사과했으니까요."

―홍준표의 자유한국당 장래는 어떨까요?

"국민이 피로해하지 않을까요. 희망을 볼 수가 없잖아요."

―추 대표가 괜찮게 보는 보수 정당의 인물이 있나요?

"보이지 않던데요. 언론 탓도 있어요. 쓸 만한 재목을 비춰야 하는데, 가령 김진태 의원 같은 사람을 비추면 됩니까."

―만약 보수 정당의 리더라면 어떻게 살릴 겁니까?

"여태껏 했던 것과 반대로 하면 될 겁니다. 국민은 정치에 진심(眞心)을 보고 싶어 해요. 제가 속한 진보 정당의 역사를 봐도 진심 어린 지도자를 만나면 성공하고 아니면 실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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