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부가가치세, 40년 잠에서 깨어날 때

김종윤 2017. 7. 3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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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리치 핀셋 증세는 '중부담, 중복지' 사회 해법 안 돼
부가세 올려 골고루 부담해야 고소득층 증세 명분 생겨
김종윤 경제부장
1970년대 한국은 두 가지 도전에 나선다. 경제 개발과 방위력 증강이다. 경제 개발 전략의 핵심은 중화학공업 육성이었다. 방위력 증강의 목표는 독자 무기체계 개발이었다. 큰돈이 필요했다.

당시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세수 여건이 좋을 리 없었다. 새로운 세금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마침 복잡했던 간접세를 정비할 필요도 있었다.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배경이다. 물품세·영업세 등 8개 세목을 흡수해 77년 7월 부가세가 탄생했다. 세율은 기본세율 13%에 상하 3%포인트를 조절하는 방식이었다가 10%로 최종 결정됐다.

40년이 흘렀다. 지금 세금 프레임 논쟁이 뜨겁다. 문재인 정부가 불을 지폈다. 과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 꺼낸 카드는 근로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증세 안을 ‘명예 과세’라고 불렀다. 그는 “초대기업·초고소득자가 양극화 극복을 위해 명예스럽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야당의 맞불은 ‘편 가르기 증세’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안에는 계층 편 가르기와 오락가락만 있다”고 날을 세웠다.

‘명예 과세’든 ‘편 가르기 과세’든 여야가 함께 인정하는 건 세수 확대의 필요성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중(中)부담, 중(中)복지’ 구조로 접어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의 복지 지출 규모(국내총생산 대비)로는 ‘양극화 갈등’을 해소하기 역부족이다. 세금 논쟁이 이런 고민의 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이유다.

그럼에도 따져 볼 게 있다. 유독 회피하는 세금, 부가세다. 강산이 네 번 바뀌었는데도 부가세 개편은 금기어다. 정치적 폭발력 때문이다. 부가세는 물품을 구매하거나 용역을 제공받을 때 내는 세금이다. 소득에 관계없이 단일 세율이 적용된다. 부가세의 이율배반은 여기서 시작한다. 연봉 수억원을 받는 고소득자나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나 부가세 부담은 똑같다. 이런 역진성으로 저소득 계층에 불리한 세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부가세 수입이 만만찮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가세로 61조8000억원이 걷혔다. 총 국세의 25%다. 소득세(70조1000억원)에 이어 둘째로 큰 비중의 세금이다.

부가세율을 1%포인트만 올려도 연간 6조원 이상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초고소득층·초대기업’ 증세안에 따른 소득세·법인세 증세 효과는 연간 3조8000억원에 그친다. 복지를 위해 쓸 돈을 모든 납세자가 공평하게 부담한다는 측면에서 부가세는 최선의 세금인 셈이다.

더욱이 지난해 기준으로 근로소득자의 46.8%, 법인의 47.1%가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다. 납세자의 절반 가까이를 면세자로 두면서 전체 국민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퍼 리치’에게만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건 극단의 편 가르기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5%가 수퍼리치 증세에 찬성한다는 주장도 무책임한 정치공세일 뿐이다. 지난 40년간 한국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이 복지 지출을 확대하려면 부가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OECD는 권고한다. 지난해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부가세율은 19.2%다.

일부에서는 부가세 트라우마를 들먹이기도 한다. 79년 유신 체제에 저항해 부산·마산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시위대는 서부산세무서를 공격했다. 그해 박정희 체제는 붕괴했다.

증세는 모든 정권에 부담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국민이 골고루 납세의 의무를 다하도록 세제를 짜야 한다. 부가세율을 올리면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 늘어나는 게 맞다. 그렇지만 그 세금, 남 주는 거 아니다. 복지 재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모든 납세자가 형편에 맞게 공평하게 세금을 내야 수퍼 리치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더 요구할 수 있는 법 아닌가.

김종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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