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김정은 폭주에 브레이크 걸린 베를린 구상

차세현.유지혜 2017. 7. 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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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한반도 문제 '운전자론'
북한 잇단 미사일 도발에 흐트러져
미 본토 타격 ICBM 사실상 성공
사드 4기 배치, 독자 제재 검토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선언
북·중 정면 자극 3가지 옵션 꺼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 흐트러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7·6 베를린 구상’을 통해 내민 손을 북한은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로 뿌리쳤다. 사실상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의 완성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동북아시아 안보구도를 흔들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한·미·일은 밀착하는 대신 중·러와는 더 멀어지는 쪽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역내에서 미국의 억지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핵무장까지 완성할 경우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등에서 “나는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며 “바로 지금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설득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실마리를 풀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지난 28일 밤 북한은 화성-14형 미사일 2차 발사를 감행했고, 결국 문 대통령은 동북아시아 안보구도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세 가지 전략적 ‘결단’을 했다.

우선 한반도에 이미 들어와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 결정이다. 1년 안팎이 걸릴 일반환경영향평가를 거친 뒤 배치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국방부 발표 15시간30분 만에 번복했다.

또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에 탄두 중량 500㎏으로 제한된 한·미 미사일지침(Missile Guideline) 개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500㎏에서 1t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던 걸 이번에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 유엔 안보리 제재 등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뿐 아니라 북한 정권이 실감할 수 있는 한국만의 대북 독자제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세 가지 결단은 북한은 물론 중국을 정면으로 자극하는 내용이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선 더 이상 한국이 미·일과 중·러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엔 “반대한다”는 수준의 논평을 했다. 하지만 발사대 4기의 배치 결정엔 ‘단호한 반대’ ‘강력한 철거 촉구’라는 자극적 수사를 총동원해 비난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핵전략 무력으로 (미국에)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했을 뿐 한국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문 대통령이 직접 사드 완전 배치를 발표한 것은 ‘결국 한국은 미국 편이 아니냐’고 여겼던 중국의 인식에 확신을 심어 준 격”이라며 “사드 관련 결정을 15시간여 만에 뒤집은 것도 미·중 모두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한·미 간에 북핵 공조의 틈이 줄어드는 만큼 한·중 간 공조의 틈은 점점 벌어지는 모양새”라며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예견됐던 만큼 이를 감안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숙의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동북아 안보 게임체인저 된 북 ICBM … 미 전략적 위치 장기적 약화 분석도

당장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 국면이다. 미국이 마련해 중국·러시아 등과 협의 중인 초안에는 대북 원유 수출 제한, 북한산 석탄 수출 금지, 해상·항공활동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미·일 등 우방국과 함께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방안을 협의 중인데 이르면 31일 시작되는 주에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북한·대중국 압박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트윗에서 “중국은 우리를 위해 북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지속하도록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합법적 거래를 하는 제3국의 기업 및 개인도 제재) 등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적 마찰을 감수하면서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

한국은 조만간 미·중 간 힘겨루기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할 처지다. 그 결과는 한·미·일 대 중·러의 대립구도가 될 수 있다. 이에 더해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북한의 ICBM 역량은) 미국인들에게 리스크가 있는데 한국을 계속해 도와줘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위치가 약화되고, 제로섬 게임에서 볼 때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ICBM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한·미 동맹에 변화를 줄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30일에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 현재 북한을 압박해야 하고 독자적 제재 방안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다고 볼 순 없다”며 “어떤 탈출구로서 남북한 대화라는 부분의 여지는 계속 살아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세현·유지혜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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