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발에 한반도 문제 운전석에 떼밀려 내려오는 문재인 정부

차세현 2017. 7. 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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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 흐트러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7.6 베를린 구상’을 통해 내민 손을 북한이 두 차례에 걸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로 뿌리쳤다. 사실상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의 완성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동북아 안보 구도를 흔들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한·미·일은 밀착하는 대신 중·러와는 더 멀어지는 쪽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역내에서 미국의 억지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핵 무장까지 완성할 경우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등에서 “나는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는 바란다”며 “바로 지금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설득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실마리를 풀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28일 밤 북한은 기습적으로 화성-14형 미사일 2차 발사를 감행했고 결국 문 대통령은 동북아시아 안보 구도에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세 가지 전략적 ‘결단’을 했다. 우선 한반도에 이미 들어와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 결정이다. 1년 안팎이 걸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거친 뒤 배치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국방부 발표 15시간 30분만에 번복했다. 또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에 탄두중량 500㎏으로 제한된 한·미 미사일지침(Missile Guideline)의 개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500㎏에서 1톤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던 걸 이번에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 유엔 안보리 제재 등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이 실감할 수 있는 한국만의 대북 독자 제재를 검토하라는 지시였다. 세가지 결단은 북한은 물론 중국을 정면으로 자극하는 내용이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선 더이상 한국이 미·일과 중·러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반대한다”는 수준의 논평을 했다. 하지만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 결정엔 ‘엄중한 우려’, ‘단호한 반대’, ‘강력한 철거 촉구’라는 자극적인 수사를 총동원해 비난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전략 무력으로 (미국에게)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했을 뿐 한국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문 대통령이 직접 사드 완전 배치를 발표한 것은 ‘결국 한국은 미국 편이 아니냐’고 여겼던 중국의 인식에 확신을 심어준 격”이라고 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한·미 간에 북핵 공조의 틈이 줄어드는 만큼 한·중 간 공조의 틈은 점점 벌어지는 모양새”라며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이미 예견됐던 만큼 이를 감안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숙의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당장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 국면이다. 미국이 마련해 중국·러시아 등과 협의 중인 초안에는 대북 원유 수출 제한, 북한산 석탄 수출 금지, 해상·항공 활동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북한·대중국 압박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트윗에서 “중국은 우리를 위해 북한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지속하도록 더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합법적인 거래를 하는 제3국의 기업 및 개인도 제재) 등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적 마찰을 감수하면서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 한국이 조만간 미·중간의 힘겨루기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할 처지다. 존 휴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이와 관련, “(북한의 ICBM 역량은) 미국인들에게 리스크가 있는데 한국을 계속해서 도와줘야 하는 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며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위치가 약화되고, 제로섬 게임에서 볼 때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ICBM이 동북아 안보 환경의 '게임 체인저'로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한미 동맹에 변화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30일에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 현재 북한을 압박해야 하고, 독자적인 제재 방안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다고 볼 순 없다”며 “어떤 탈출구로서의 남북한 대화라는 부분의 여지는 계속 살아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세현·유지혜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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