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결정된 공장이전이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고?

금준경 기자 2017. 7. 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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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전방·경방 구조조정, 해외공장 이전을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돌리는 보수언론의 왜곡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기승전 ‘최저임금탓’이다.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자 보수언론이 반발하고 나섰다. 건물주 및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를 외면한 채 자영업자 피해를 강조하던 보수언론은 최근 들어 ‘중소기업’의 피해를 부각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지 않다.

지난 28일 보수언론은 전방(옛 전남방직) 조규옥 회장 인터뷰를 통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탓에 구조조정을 하게 됐다’는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해외로 떠나는 공장 욕하던 나였는데… 최저임금 때문에 버틸 여력 없습니다”(조선일보) “최저임금 올라 직원들 해고해야 한다니”(중앙일보) “조규옥 회장의 절규… ‘최저임금·전기료 오르면 섬유업은 끝’”(매일경제) “조규옥 전방 회장 ‘근로시간 단축까지 하면 공장 모두 닫을 수밖에’”(한국경제) 등이다.

▲ 28일 조선일보 보도.

앞서 25일 보수언론은 “최저임금이 올라 공장을 해외로 옮길 수밖에 없다”는 경방(옛 경성방직) 김준 회장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최저임금 너무 올라’… 한국 떠나는 기업들“(동아일보) ”최저임금 때문에…100년 기업 국내상장 1호 경방이 떠난다“(조선일보)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100년 기업 경방의 脫한국”(매일경제) “김준 회장의 탄식 ‘공장 아주머니들 일자리는 어디서 찾나’”(한국경제) 등이다.

조선일보는 28일 사설에서 “장수 기업이 새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결정타에 공장 문을 닫거나 해외로 설비를 옮긴다고 한다”면서 “급격한 인상이 소상공인이나 영세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도 어떤 충격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3만 원이 넘는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고, 자녀들에게 나이키 신발 한 번 안 사주면서 경영했다는 조 회장은 ‘(해고하지 않으면) 다 죽는데 어떡해’라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 25일 한국경제 보도.

이처럼 관련 기사는 국내를 꿋꿋이 지켜온 ‘장수 애국’기업이 최저임금 인상 탓에 직원을 해고하고 해외에 이전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감성적인 방식으로 다루며 정부 비판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경방과 전방의 사례는 ‘최저임금 인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방의 베트남 이전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라 2008년부터 계획됐다. 2008년 당시 경방 김담 부사장이 파이낸셜뉴스와 한 인터뷰를 보면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은 선택이 아닌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경방의 베트남 공장은 2013년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가동됐으며 지난 4월 2공장을 증축했다. 최저임금 인상 탓에 한국을 떠난다는 보도는 사실상 ‘오보’다.

베트남 공장 이전이 불가피한 게 아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29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미국으로 의류제품을 무관세 수출하려면 원사(실)도 베트남산을 써야 해 이를 대비해 경방 등이 베트남으로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장 이전인 것이다.

한국일보는 29일 기사에서 “경방이 최저임금 인상을 버텨낼 여력이 없는지도 따져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방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0% 늘어난 425억 원에 달했다. 경방 섬유산업 종사 직원 412명에게 지급되는 연간 인건비는 134억 원이며, 최저임금 인상률 16.4%를 적용해도 연간 21억 원의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부담이 크다고 보기 힘들다.

▲ 29일 한겨레 보도.

전방은 경방과 달리 경영위기에 처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횡령 사건, 사업 다각화 실패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건비 인상 탓에 경영이 악화된 건 아니다. 이미 전방은 최근 3년 동안 섬유사업 분야 영업손실이 연간 100억 원에 달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전방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올 초부터 논의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그만큼을 기업 부담으로 환산하는 것도 비약이다. 경향신문은 28일 “현재 방직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주부사원이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어 해당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고 보도했다. 전방의 경우 근속기간이 오래된 주부사원이 많고, 이들은 평균 250만 원 가량의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연차가 낮은 일부 직원의 인건비만 오른다는 것이다.

산업 재편 과정인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 두 기업 모두 산업화 시기 활성화됐던 낮은 인건비의 노동집약 산업으로 한국 시장에서 지속가능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 같은 기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최저임금 인상폭을 낮추는 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언론은 인터뷰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발언 속 사실관계를 따져야 한다. 두 기업의 경영정보가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최근 전방, 경방 관련 보도는 ‘최저임금탓’을 하며 구조조정의 명분을 쌓으려는 기업과 최저임금 인상 저지를 위해 유리한 사례를 검증 없이 이용한 보수언론의 합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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