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급 악순환-상] "없어서 못 먹던 쌀이 이제 애물단지가 됐네요"

김현주 2017. 7. 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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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비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올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양곡연도(2016년 11월~2017년 10월) 기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9.6㎏으로 전망됐다.

하루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163g 정도로, 밥 한 공기에 쌀 120g 정도가 필요한 점을 고려할 경우 하루에 한 공기 반도 채 먹지 않는 셈이다.

이는 쌀 소비가 최대치에 달했던 1970년(373.7g)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2012년 70㎏대가 붕괴한 뒤 5년 만에 앞자릿수가 또 바뀌는 것이다.

실제 1963년 통계 집계를 시작 이후 오르락내리락하던 쌀 소비량은 1984년(130.1㎏)부터는 30여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역시 전년보다 1.6% 줄어든 61.9㎏으로, 또다시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1인당 쌀 소비량은 2027년 47.5㎏까지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이은 풍작, 정부 양곡 재고량 '산더미'

이처럼 쌀 소비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지만 생산량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몇년간 풍작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정부 양곡 재고량이 200만t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하면서 쌀 가격도 폭락을 거듭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쌀 가격이 농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13만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 결과 정부가 농가 소득보전을 위해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 예산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한도인 1조4900억원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급기야 올해 변동직불금은 실제 계산보다 다소 낮게 책정됐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처럼 쌀을 소비하는 일본과 대만의 경우 이미 1인당 쌀 소비량이 50㎏, 40㎏대로 추락한 상황이라며 이들 국가의 사례만 보더라도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쌀 소비량 자체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쌀, '농축산 생산액 1위' 돼지에게 내줘

이런 가운데 쌀이 지난해 농축산 생산액 1위 자리를 돼지에게 내줬다. 쌀 가격이 20여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식습관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도 겹치면서 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품목별 농업 생산액 가운데 1위는 돼지로, 6조7702억원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쌀 생산액은 전년(7조6972억원) 대비 16%이상 급감하면서 6조4572억원에 머물렀다. 돼지 다음의 2위로 물러났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이 농축산물 생산액 1위 자리에서 밀려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비록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올해 역시 돼지 생산액(6조6003억원)은 쌀(6조5372억원) 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비록 돼지와 쌀의 생산액 차이 자체는 크지 않지만 한국 농업 정책이 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쌀 농가 수가 양돈 농가보다 174배나 많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주목할만한 변화다.

◆한국인 식단, 쌀에서 육류 중심으로 변모

쌀 생산액이 돼지에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쌀값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작년 수확기 평균 산지 쌀값은 1가마니, 80㎏ 기준으로 12만9711원이었다. 2015년(15만659원)보다 14% 하락했으며, 1995년 이후 21년 만에 농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3만원 선이 붕괴됐다.

지난해 수확기에 비가 자주 내리고, 이상 고온 등으로 수발아(벼 이삭에서 싹이 트는 현상) 피해가 컸다. 이에 따라 작년 쌀 생산량은 419만7000t으로 전년보다 3% 감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급량이 수요보다 많았고, 이는 쌀값 하락으로 이어졌다.

당장 벼 재배 면적을 대폭 줄일 수 없고, 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일도 없어 쌀값이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쌀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돼지와의 생산액 격차가 계속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있는 점도 쌀보다 돼지 생산액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1인당 연간 돼지 소비량은 23.3㎏(추정치)으로 2011년(19㎏) 이후 5년 사이 22%나 늘었다. 쌀 소비가 해마다 줄어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즉, '밥=쌀'로 대표되던 한국인의 식단이 점차 육류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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