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급 악순환-하] 쌀 보조금 관행, 보다 발전적인 방안 모색해야 할 때

김현주 입력 2017. 7. 29. 13:01 수정 2017. 8. 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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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 변화에 따라 쌀 소비는 해마다 급감하고 있지만, 쌀 재배면적이나 생산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수급 불균형으로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농가가 쌀 농사를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쌀에 치우친 정부의 보조금 정책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쌀값 폭락 사태를 막고, 농가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는 전례에서 벗어나려면 쌀에 치우친 보조금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쌀 생산량은 419만7000t으로 전년보다 3.0% 줄어드는 데 그쳤다. 432만7000t이었던 전년 생산량보다는 소폭 감소한 것이지만, 401만t이었던 2012년보다는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벼 재배 면적은 77만8734㏊로 전년보다 2.6% 좁아졌다. 쌀 생산량이나 재배 면적은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 추이가 매우 더딘 편이다.

2006년 쌀 생산량이 468만t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사이 10.3% 줄어든 데 비해 소비량은 급격히 줄고 있다. 2006년 78.8㎏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61.9㎏으로 10년 사이 21.4%나 급감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130.1㎏에 달했던 1984년과 비교하면 절반을 밑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식생활 서구화 등의 영향으로 올해 1인당 쌀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6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인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런 추세가 앞으로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62년 118㎏에 달했으나, 50년 후인 2012년에는 56.3㎏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쌀 소비량은 해마다 급감하는 추세지만, 국내 생산이 이런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공급과잉이 심화하는 구조라고 지적하고, 쌀 소비량은 앞으로도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급 과잉으로 쌀값 폭락해도 정부가 나서서 농가 소득 보전해줘

공급 과잉에 따른 쌀값 폭락 사태는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지불하는 변동직불금이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농업보조금 한도를 초과하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했다.

쌀 변동직불금이란 정부가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가소득 감소를 보전해 주는 제도인데, 수확기 산지가격이 목표가격을 밑돌면 차액의 85% 내에서 기본 보조금(고정 직불금)을 뺀 금액을 보전해준다.

지난해 들어 급격한 소비 감소와 풍년 등의 영향으로 쌀값(수확기 산지 80㎏ 기준)이 12만9711원으로 폭락하면서 정부가 보전해야 할 차액이 대폭 늘어나 급기야 WTO 농업보조금 한도를 초과했다.

WTO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 따라 한국의 농업보조금 상한액(AMS)을 1조4900억원으로 설정했는데, 정부가 지급해야 할 변동 직불금 규모는 1조4977억원이 된 것이다.

결국 정부는 WTO 기준에 맞춰 변동 직불금 지급 규모를 AMS 한도인 1조4900억원으로 깎아야 했다. 정부가 변동 직불금 등의 보조금으로 쌀 농가의 수입을 떠받쳐주는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는 차액 자체가 크지 않지만 앞으로도 수요 감소 등으로 계속 쌀값이 추락하면 농민들이 보조금을 받지 못해 보게 되는 손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농민 반발 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쌀 재배 면적 축소 등 근본적 농정(農政) 혁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올해는 지난해 대비 쌀값이 소폭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쌀 재배 면적 축소와 직불제 개편, 해외원조 확대 등 근본적 개선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日 변동직불제 2014년 폐지, 고정직불제도 내년에 폐지할 방침

우리와 마찬가지로 식생활 서구화에 따른 쌀 소비 감소와 공급 과잉 사태에 직면한 일본은 지난 2013년부터 아베 신조 총리 주도로 정책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총리실 산하에 '농림수산업·지역의 활력창조본부'를 설치해 쌀 정책 개혁 추진과 관련한 중추적인 역할을 맡도록 했고, 아베 총리가 직접 본부장을 맡아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쌀 보조금 정책의 양대 축인 변동 직불제는 2014년 폐지했고, 고정 직불제는 내년에 폐지하기로 했다.

또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지탱해온 쌀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타 작물 전환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쌀 농가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콩이나 밀, 보리 등 다른 작물에 주는 보조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보조금 정책을 선회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논에 벼을 심는 비율이 90% 이상이지만, 일본은 60% 안팎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타 작물 전환 유도 정책의 영향으로 논콩이나 밀, 보리 등의 맥류(麥類)를 많이 심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인데도 국내 농가들이 좀처럼 쌀 농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것이 기계화율이 가장 높아 쌀 농사가 가장 쉽고 편한 데다,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분을 대부분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정부의 쌀 보조금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우리도 일본처럼 고품질 식용 쌀의 가격은 시장에 맡기고, 가공·사료용에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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