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기자와 만납시다] "탑시다" VS "안돼요!"..인천 시내버스는 '캐리어와 전쟁' 중

김동환 2017. 7.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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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세요! 다른 승객들이 불편해하신다니까요!”

“한 번만 태워주세요. 금방 내릴 건데, 뭘 그리 불편해한다고….”

한참 승강이를 벌인 끝에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결국 버스에서 내렸다. 그의 오른손에는 여행용 가방이 들려 있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휴가를 즐기고 온 것 같았다. 문밖에는 여행용 가방을 든 또 다른 여성이 서 있었다. 남성의 아내로 추정됐다.

 

인천국제공항 앞 버스 정류장. 시내버스를 타려는 이들과 기사간의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여행용 가방을 들고 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서다. 인천시는 추가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 뾰족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3번 출구 앞 버스 정류장에는 시내로 들어가는 간선버스 노선이 정차한다. 공항을 오가는 인천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선이며, 송도신도시를 거쳐 부평 등 구도심을 지난다.

이들 버스에서 여행용 가방을 든 이들의 탑승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더욱 자주 발생하는 분위기다. 정류장 앞에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과 인천광역시 버스운송조합약관 등을 이유로 들며 여행용 가방 든 이용객은 버스에 오를 수 없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지난 25일, 인천공항 앞에서 버스 승차를 거부당한 김모(45)씨는 “여행용 가방을 들었다고 버스에 못 탈 줄은 몰랐다”며 “집에서 나올 때는 별일 없었는데 왜 공항 앞에서 이런 일을 겪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해했다. 그는 “규정을 지키려면 일관되게 시내에서부터 거절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항 갈 때는 태우면서 시내로 들어갈 때는 태우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다른 버스를 기다리던 한 항공사 승무원은 자주 공항을 오간 덕분인지 ‘꼼수’를 썼다. 승무원의 여행용 가방은 2개로 나눌 수 있는 덕에 하나를 먼저 갖고 버스에 오른 후, 나머지 하나를 들고는 재차 타는 모습이 관찰됐다. 가방을 나누면 정류장 앞에 세워진 안내문의 규격을 만족하는 셈이 되어서 기사도 탑승을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인천국제공항 경유 시내버스의 여행용 가방 승차규정을 알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안내문에는 “1인당 중량 10kg 이상이고, 규격 50×40×20(㎤)인 경우 운수종사자가 승차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제조사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길이로만 따지면 기내에 반입할 수 있는 여행용 가방도 버스 승차가 아슬아슬하다.

승무원은 가방을 따로 떼어내 통제사항을 지킨 셈이다. 안내문에는 안전운행과 다른 여객의 편의를 위해서 자동차 출입구 또는 통로를 막을 우려가 있는 물품을 자동차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행위를 통제한다는 글도 보였다.

 

인천국제공항 앞 버스 정류장. 시내버스를 타려는 이들과 기사간의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여행용 가방을 들고 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서다. 인천시는 추가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 뾰족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다른 승객에게 불편 끼칠 우려가 있거나, 통로 막을 수도 있는 화물을 든 이의 탑승을 거부한다는 규정은 예전부터 있었다”며 “잘 모르시는 기사분들께서 간혹 태우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내버스를 고집하시는 분들에게 공항 리무진 사용을 권한다”며 “‘아래 짐칸에 여행용 가방을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천연가스를 쓰는 버스 특성상 짐칸에는 내압용기가 들어 있어서 그럴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휴가철에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불만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규칙을 받아들이셔서 기사분들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나는 태워주겠지’하는 일부 승객의 태도도 문제다.

인천공항 앞에는 리무진 버스 노선 30여개가 지나지만, 대부분 요금이 만원 안팎이어서 적잖은 부담을 느낀 이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조금이나마 돈을 아끼려 시내버스 탑승을 고집하는 바람에 기사와 승강이를 벌일 수밖에 없고, 다른 승객들에게도 불편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

인천시는 지난 5월 e버스를 도입했다. 출퇴근시간대 공항 근로자들과 여행객들이 시내버스에 몰리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자 해결책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인천시청, 주안, 부평 등 구도심을 출발해 인천공항을 오가는 노선으로 교통환경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시는 기대했다.

 

인천국제공항 앞 버스 정류장. 시내버스를 타려는 이들과 기사간의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여행용 가방을 들고 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서다. 인천시는 추가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 뾰족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개념 노선 탄생을 반기는 이가 많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근 시간대(3회), 퇴근 시간대(1회)에만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그 외 시간에는 언제든 시내버스에서 여행객과 일반 승객의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인천시 관계자는 “관련 부처에서 버스 업체들과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추가 방안을 연구 중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어서 정확히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인천=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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