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장의 뉴스분석] 말로는 기업 띄우고, 연일 짐 지우는 정부

김준현 입력 2017. 7. 29. 01:54 수정 2017. 7. 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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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기업 잘돼야" 호프미팅
"일자리 늘리면 혜택" 강조하면서
고용 감소 기폭제 최저임금 압박
비정규직, 법인세 이슈도 큰 부담
“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됩니다.”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호프미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 기업은 기만 살려주고 신바람만 불어넣으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틀에 걸친 간담회에서 기업의 등을 두드려주는 발언도 여러 번 했다. 원론적이고도 당연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재계는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재벌 개혁’을 강조해 온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결이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스트레스 지수는 급상승 중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상충 스트레스’에, 풀어주고 밀어주기보다는 구석으로 몰아가는 ‘압박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제1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세제와 예산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공약에 따라 대폭 올리자 고용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또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2, 3차 협력업체들이 어려울 수 있으니 도와 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는 대기업엔 부담이다.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대기업이 메워주라는 뜻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도 신규 일자리 창출엔 되레 마이너스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원전 관련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얘기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탈원전 방침과 모순되는 탓이다.

조세 정책 역시 기업의 등을 두드려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선후보 시절엔 가장 나중에 건드리겠다던 법인세를 정부 출범 초부터 높일 태세다. 전문가들은 증세 효과(약 3조원 추정)와 사업장 해외 이전 등의 부작용 사이에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불안해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법인세율을 올리면 세수는 생각만큼 늘지 않고 외국 자본만 빠져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다”며 “주요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조 실장의 말대로 각국은 법인세를 서로 낮춰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명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이다.

물론 재계가 정부 방침이나 가이드라인을 거스르는 건 아니다. 늘 그래 왔듯이 기업들은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앞두고 상생협력 방안 등 선물 보따리를 쏟아냈다. 현대·기아차가 500억원을 마련하는 등 2, 3차 협력사의 최저임금 부족분을 메워주겠다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출범 초기 정부의 서슬을 목도한 기업인들의 조건반사적 의사결정인 셈이다.

이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비판했던 경총이 정권 실세에게 호통을 당한 바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인 통신비 인하의 실행을 위해 강한 압박을 받았다. 기업들은 권력 말 잘 들어야 뒤탈이 적다는 걸 이미 체득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거 하나는 변함없다는 게 기업인들의 탄식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잘되는 나라라면 기업 편에 서서 기업이 뭘 원하는지 경청하고 그걸 들어줘야 한다. 대통령과 기업인의 만남을 통해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경제정책을 정비해야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kim.jun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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