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기가 겁나는 남성들

2017. 7. 2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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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비행기를 타고 이국적인 해외에 가서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에 이완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상상이 오히려 섬뜩한 공포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무역 회사를 운영하는 50대 남성의 사연이다. 업무상 적지 않은 해외 출장이 있는데, 최근 출장에서 난기류에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쳐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후 비행기는 물론 엘리베이터 타기도 힘들어졌다고 한다. 큰 계약이 성사돼 계약서를 쓰기 위해 중국에 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괴로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비행 공포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클리닉에서 자주 보게 된다. 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국한돼 발생하는 공포를 특징으로 한다. 공포가 과장되고 비합리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두려움을 만든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두려움과 공포가 유발된다.

비행 공포증은 그 공포의 대상이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이다. 비행을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엄습하고 티켓까지 사게 되면 그 공포감이 더 증가한다. 노력해서 공항까지는 갔지만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더 용기를 내 비행기에 착석하고 이륙까지 성공했지만 공포감이 과도하게 일어나다 심한 불안 반응, 즉 공황발작이 엄습하는 경우도 흔하다.

공황발작은 호흡이 곤란해지고 심장이 마구 빨리 뛰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찾아오기에 더 이상 비행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승무원들도 비상 상황으로 인식해 회항하는 경우마저 있다. 비행 공포증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공포의 대상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공포를 경험하면 이어서 회피 행동을 찾아오기 때문에 삶이 매우 불편해진다. 비행기 공포에서 엘리베이터 공포, 지하철 공포, 터널 공포, 영화관 공포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공포증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
통계상으로 10명에 1명꼴로 찾아올 수 있고 실제 외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다. 사실 공포감 자체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비행 공포증을 예로 들어 보면 비행기는 안전한 이동수단이나 사고가 나면 치명적이다. 그러다 보니 이착륙할 때나 불안정한 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출렁거릴 때 가슴이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뇌 안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위험이 다가온다고 생각할 때 공포라는 불안 신호를 내어준다. 그러나 보통은 그 신호가 조금 생기다가 사라진다. 우리 뇌의 중앙통제센터에서 그 신호에 대해 살펴보고 실제 위험이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전해’라고  상황을 재평가하기 때문이다.

공포증은 그 불안 신호에 대한 재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위험보다 훨씬 크게 우리 뇌가 인식하게 된다. 제 비행기가 추락할 것이라 뇌가 인지해 버리니 불안, 초초한 마음에 숨이 막히고 가슴까지 답답해 온다. 그리고 회피 행동이 강하게 일어나 승무원에게 회항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 이 공포를 경험하게 되면 아예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회피 행동을 보이게 된다. 평소 용기 있게 살던 강한 남자도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뇌에 피로가 찾아와 불안 신호도 더 크게 발생하고 그 불안 신호에 대한 재평가도 과민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공포증에 효과적인 대처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공포의 재경험을 막아야 한다. 공포증인 것을 알게 되면 보통 ‘내가 이렇게 약하다니 내 의지로 고쳐볼 테야’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은 우리 뇌 안의 자동 시스템이라 내가 의지로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꼭 의지가 약해서 공포증이 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강한 의지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뇌가 지쳐서 예민도가 올라가 공포증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또 의지로 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뇌의 공포 반응이 더 강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공포증에는 약물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혼자 해보다 잘 안 되면 약물치료를 받겠다는 것보다는 초기에 적극적인 약물치료로 증상의 재경험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회피 행동을 없애기 위해 공포 대상에 대한 노출 치료를 시행한다. 비행 공포증이라면 먼저 부산, 제주도, 일본이나 홍콩 식으로 비행 거리를 늘려 가는 것이다. 성공 경험이 뇌의 중앙통제 시스템에 정보로 입력돼 과도한 공포 반응을 점점 잠재우는 것이다. 노출 치료를 다른 말로는 체계적 탐감각(systemic desensitization)이라 부른다. 공포를 체험해 과민해진 뇌 안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조금씩 단계별로 자극에 노출시켜 그 예민도를 다시 정상 수준으로 낮추어준다는 이야기다.

부산, 제주도 등 가까운 국내에서 시작해 일본, 홍콩, 그리고 미국 순으로 노출 강도를 높여 뇌의 예민도를 점점 낮추어주는 것이다. 노출을 하더라고 공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뇌가 더 예민해져 공포증이 심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약물치료와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약으로 증상을 조절하면서 노출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다. 처음엔 ‘약만 먹으면 이 정도는 괜찮아’에서 ‘약을 먹지 않고 그냥 갖고만 있어도 편해’로 공포증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

공포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나 위험에 대한 불안 신호가 심해졌다고 생각되면 불안 요소를 없애기 전에 내 뇌가 지쳐 있지 않나 생각해봐야 한다. 운동으로 지친 근육기관은 그냥 쉬면 회복이 되지만 우리 뇌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피로가 잘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다. 뇌는 행복하게 해줄 때 피로에서 회복되고 다시 에너지가 충전돼 활기를 찾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잘 노는 것이 공포증에 대한 예방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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