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그릇에 돼지 뼈가 수북"..양심불량 손님에 배달족 눈물

김형준 2017. 7. 28.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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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배달한 건 간짜장인데, 동물 뼈가 수북이 담겨 돌아왔어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 배달원 정모(38)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릇 수거를 갔다가 쓰레기만 잔뜩 얻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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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에 생활 쓰레기 담아 내놔

동네 장사라 수거 거부 꿈도 못 꿔

반말은 기본… 현금 던지기까지

배달원들 “인격모독 가장 힘들어”

“제가 배달한 건 간짜장인데, 동물 뼈가 수북이 담겨 돌아왔어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 배달원 정모(38)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릇 수거를 갔다가 쓰레기만 잔뜩 얻어 돌아왔다. 간짜장 한 그릇을 주문한 손님이 돼지족발을 먹은 뒤 남긴 것 같은 동물 뼈를 빈 그릇 가득 채워 집 앞에 내 놓은 것. 정씨는 “음식물쓰레기인지 일반쓰레기인지 헷갈리는 걸 보관하다가 빈 그릇 반납할 때 함께 내놓은 것 같다”고 어이없어 했다.

정씨는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 축에 속한다”고 했다. 먹기 힘들 정도로 쉬어 버린 김치 같은 음식물쓰레기부터 생선가시, 머리카락 뭉치, 기저귀, 담배꽁초 등 배달원 생활 7년간 돌려받았던 생활쓰레기들이 그의 입에서 하나하나 나열됐다. 가져온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수거하면서, 왜 쓰레기를 가져왔냐는 주인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분에 못 이겨 눈물을 쏟은 것도 여러 번. 정씨는 “10곳 배달하면 2, 3곳에선 꼭 이런 식인데, 그렇다고 손님과 얼굴 붉혔다간 우리만 손해”라고 한숨을 쉬었다.

‘배달의 민족’ 자부심을 품고 도심 곳곳을 누비는 음식 배달원들이 배려를 잊은 양심불량 손님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내놓으면 알아서 가져가는’ 배달음식 그릇에 이런저런 쓰레기를 함께 내놓고 있다는 한탄. 괘씸하단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한 번 인심을 잃으면 금세 영업에 타격을 입는 ‘동네 장사’ 특성상 쓰레기를 되돌려주거나 수거를 거부하는 등 ‘반격’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견디기 어려운 건 또 있다. 인격모독이다. ‘고맙다’는 얘기는 못 들은 날이 많아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는 게 이들 얘기. 송파구 방이동에서 10년째 음식 배달을 하고 있는 김모(41)씨는 “남녀노소 불문, 반말은 기본”이라며 “계산 때 현금이나 카드를 던지듯 주거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을 땐 우릴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한 음식배달 전문업체에서 현직 배달원 50명에게 ‘배달하며 가장 힘든 순간’을 묻자, ‘인격 모독’을 꼽은 배달원(17명)이 눈.비 등 기상상황(16명), 재촉전화(7명)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도 ‘고객이 왕’이란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어나는 갑질로, 시민들 소양이 과거보다 발전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서비스에 감사하는 뜻을 직접 전하는 작은 습관만 실천해도 배달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크게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행인 건 곳곳에서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빗길에) 천천히 조심해서 와 달라”던 주문 고객 배려에 감동받은 배달원이 참외에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은 쪽지를 붙여 선물한 ‘참외 미담’이 화제가 됐는데, 이를 접한 배달원들은 박수를 보냈다. “게시물 내용도 감동이었지만, 밑에 달린 ‘공감 댓글’에 더 감동받았죠” 김씨는 “우리도 사람인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접은 받았으면 한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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