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와인, 공장서 만든 소고기, 수확량 늘리는 빅데이터 농법..

샌프란시스코·팰로앨토/강동철 특파원 입력 2017. 7. 28. 03:20 수정 2017. 7. 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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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이미 현실이 된 미래] [5] 농업·식탁 위의 혁명 '푸드테크'
- 와이너리 아닌 실험실 와인
와인의 糖 성분·알코올·향 분석.. 화학물질 합성해 맛과 향 복제
- 단백질·지방 합성한 인공 소고기
도축한 고기보다 친환경적, 영양도 사람 따라 맞춤형 제공
- 농장에 들어온 AI·빅데이터
경작지 분석해 비료량 등 '처방'.. 비용 30% 절약, 수확은 25% 늘어

지난 5월 13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둣가의 한 창고. 이곳은 와인 제조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아바 와이너리의 사무실이다. 사무실 한편의 냉장고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프랑스 보르도 등 세계 각지의 유명 와인이 쌓여 있었다. 알렉 리(Lee) 아바 와이너리 CEO가 와인 두 병을 꺼내 가져왔다. 한 병은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사라코 모스카토 다스티' 2016년산이었고, 다른 한 병은 라벨이 없었다. 차례로 마셔보니 와인 전문가가 아닌 기자로서는 두 와인의 맛과 향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리 CEO는 "라벨이 없는 와인은 사라코 모스카토 다스티를 실험실에서 복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바 와이너리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와인 성분을 기계로 분석하고 있다. 와인별 알코올 함유량과 고유의 향 등을 화학적으로 재구성하면 '복제 와인'(작은 사진)이 만들어진다. /아바 와이너리

아바 와이너리는 포도를 수확해 숙성시키는 전통적 와인 제조 방식 대신 실험실에서 와인을 만든다. 안쪽에 있는 실험실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액체와 기체의 성분을 분석하는 크로마토그래피 기계로 와인 성분을 분석하고 있었다. 리 CEO는 "와인의 당 성분과 알코올, 향을 분석한 뒤 아미노산과 에탄올·화합물 등을 이용해 분자 단위로 합성한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제조한 소고기, 실험실에서 만든 와인

자료: 얼라이드마켓리서치·비즈니스 인사이더

아바 와이너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첨단 기술은 식품 산업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의 농업과 축산업은 엄청난 물과 사료가 필요하고 폐기물과 온실가스도 쏟아져 나온다"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하게 되면 날씨나 강우량 등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해지고 동물 도축 자체도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고급 레스토랑 비노 에노테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 20여개 가운데 7개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이 레스토랑의 신메뉴 '임파서블 버거'를 먹고 있었다. 이 햄버거는 가격이 18달러(약 1만9000원)로, 소를 도축하는 대신 단백질과 지방 등을 합성한 인공 소고기 패티로 만들었다. 햄버거 패티를 칼로 잘라보니 안쪽은 붉은빛이 돌았고, 육즙 같은 액체도 흘렀다. 입에 넣고 씹자 고기 특유의 질감도 느껴졌다.

2011년 창업한 임파서블 푸드는 밀·감자에서 추출한 단백질과 코코넛 오일·콩에서 추출한 지방 원료를 합성해 인공 소고기를 만든다. 비타민·아미노산·설탕·곤약 등을 활용해 소고기의 맛·색·질감을 재현했다. 지난 3월 미국 오클랜드에 매월 400만개 이상의 패티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했고 현재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팰로앨토,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지의 43개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인공 소고기는 가축을 도축해 만든 고기보다 친환경적이면서 영양도 사람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수확할지 미리 아는 '처방 농법'

농장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세계 최대 종자 회사 몬산토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작물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처방 농법'을 보급하고 있다. 5월 16일(현지 시각) 오전 8시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몬산토 본사 연구소에 들어서자 캔자스·일리노이·아이오와 등 미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 지도가 대형 모니터에 비치고 있었다. 지도는 적외선 카메라 화면처럼 붉은색·녹색·파란색 등으로 표시돼 있었다. 크리스티 딕슨 몬산토 대외협력 본부장은 "농장의 수많은 트랙터에 블루투스 통신 장비를 부착해 얻은 농작지별 수분량, 질소량, 병해충 상태, 미생물 함유량 등을 종합해 만들어낸 지도"라며 "붉은색은 예상 수확량이 평년보다 적은 곳, 녹색은 예상 수확량이 많은 곳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는 농부가 태블릿PC에 나타난 옥수수밭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한 '처방 농법'은 생산 비용을 30% 줄이면서도 수확량은 25% 이상 늘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몬산토

여기에 강수량, 기온 같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비료를 몇 ㎡마다 몇 ㎏씩 뿌리면 생산량이 20%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알려준다. 딕슨 본부장은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면 작물 선택, 파종 시기, 비료량 조절 등 40가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 가운데 한두 가지만 정확하게 이루어져도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된다"며 "처방 농법을 이용하면 생산 비용을 30% 줄이면서도 수확량은 25% 이상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몬산토의 데이터 농법을 적용한 미국 옥수수 농가의 1에이커당 생산량은 160부셸(4352㎏)에서 200부셸(5440㎏)까지 늘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농업 혁명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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