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일한 피폭국' 선전.. 조선인 피해자엔 무관심"

김성현 기자 2017. 7.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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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제작 자문 시바타 도시아키]
나가사키 원폭 피해 가정 출신.. 20여 년째 조선인 강제 징용 조사
시바타 도시아키 ‘나가사키 재일(在日)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은 “군함도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명확한 진상 조사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26일 개봉한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가 끝난 뒤 나오는 자막의 제작 자문 명단에는 일본인 인권 운동가 시바타 도시아키(紫田利明·66)씨의 이름이 첫 줄에 나온다. 그는 1994년부터 '나가사키 재일(在日)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20여 년째 일제 말기 조선인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다. 2015년 '군함도' 답사를 위해 류승완 감독이 일본을 찾았을 때 군함도 현장 안내를 맡았던 전문가이기도 하다. '군함도' 개봉을 맞아서 방한한 그를 최근 만났다.

시바타의 부모님은 1945년 8월 9일 당시 나가사키 원폭(原爆) 피해자다. 시바타 역시 선천성 심장 이상으로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나가사키의 선박 회사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섬인 하시마(端島)까지 식수를 공급하는 운반선에서 일하셨고 결국 원폭 피해를 겪었다"고 말했다. 하시마가 1940~1945년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됐던 '군함도'다. 군함도는 일본 해상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1945년 당시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 1300여 명이 하시마와 인근 섬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바타는 "어릴 적부터 '군함도' 주변 섬과 나가사키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곱 살 때부터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군함도'를 가봤지만, 평생의 화두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호세이(法政)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1980년대 후반 나가사키로 귀향(歸鄕)했다. 그 뒤 원폭 피해와 조선인 강제 징용 문제를 실태 조사하고 현장 보고서로 펴내는 일을 하고 있다. 1982년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첫 책자가 나왔고, 2014년 7번째 보고서가 출간됐다. 그가 몸담고 있는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펴낸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은 이달 중 한글판으로도 출간 예정이다.

시바타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있었던 8월 9일이면, 원폭 조선인 피해자를 추모하는 위령제를 열고 있다. 그는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被爆國)'이라고 선전하지만 정작 조선인 원폭 피해나 강제 징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과 중국의 국민을 강제 동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일본의 치열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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