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도 못 뗀 '7·6 베를린 구상'

정용수 2017. 7. 27. 14: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 한국정부가 제안한 휴전선일대 적대행위 금지 D-데이(27)까지 감감
오히려 군사적 긴장 고조하고, 현대아산 고 정몽헌 회장 추도식 거부하며 문 닫아
문재인 정부 대북구상, 한국 운전석론 차질 우려 나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7·6 베를린 구상’이 첫 발도 떼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남북 간 휴전선에서 적대행위 금지,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 남북대화 재개 등 4개 사항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어 지난 17일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열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정부는 특히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을 특정하고, 휴전선 일대에서 남북의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회담을 21일 열자고 북한에 요구했다. 정전협정 체결 64주년인 27일을 일종의 ‘D-데이’로 삼은 것이다.
북한은 정전협정체결일(27일)을 기해 휴전선일대의 적대행위를 중단하자는 남측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은 채 평양 '조국해방전쟁기념탑' 앞에서 장병들의 충성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이 27일 당일까지 아무런 응답이나 조치를 하지 않아, 올해 정전협정 체결일은 그냥 넘어가게 됐다. 북한은 오히려 육군,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공군) 장병들을 모아 결사항전을 결의하고, “미국이 오판할 경우 핵 선제 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분위기다. 북한은 또 다음달 4일 금강산에서 고(故) 정몽헌 현대 회장의 추도식을 열겠다는 현대아산의 제안에 대해서도 “이번에는 어렵게 됐다”며 완전히 문을 닫았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군이 (대북방송 중단 등) 선제적으로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국회담에 대해 북측이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구상했던 일정을 넘기긴 했지만 북한이 호응할 경우 언제든지 군사회담을 통해 긴장완화 조치를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6월 24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시범단 일원으로 방한한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게 내년 2월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가를 주문했다. 이를 포함하면 정부는 ‘7·6 베를린 구상’ 네 가지를 모두 북한에 던진 셈인데, 북한이 외면하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덤비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전직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지도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고, 대남 라인도 교체됐을 뿐만 아니라 핵이나 미사일 능력, 경제상황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난 9년간 사실상 단절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사전 교감이 필수적인데 너무 쉽게 제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 속도를 높이며 미국과 담판을 시도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특사파견이나 비공개 접촉을 통해 입장조율 과정이 필요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모양새를 보이거나, 지속적인 러브콜을 되풀이 하면서 오히려 북한을 부담스럽게 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대화 드라이브가 멈칫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를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주도하겠다는 ‘운전석론’도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