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다트의 '거의 모든 것'

2017. 7. 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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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여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다트 역시 아무리 타고난 기질 등이 출중하다고 해도 게임의 종류와 룰 등을 제대로 알아야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누르면 확대됩니다.)

다트를 예전 주택복권 추첨이나 길거리 이벤트 도구로 쓰는 돌림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요행을 바라는 뽑기 판이다. 실력이 좌우하는 스포츠로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일관된 집중력과 팔 동작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화살을 꽂아야 하고, 이기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두뇌 스포츠이다. 2000년대부터는 온라인 전자 다트 인구가 늘면서 각종 대회가 열려 승부를 겨뤄보려는 생활체육인들도 많아졌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아무리 타고난 기질 등이 출중하다고 해도 게임의 종류와 룰 등을 제대로 알아야 승자가 될 수 있다.

다트 게임도 종류 있어요, 점수 계산은 이렇게

‘제로원(01) 게임’은 가장 대중적인 게임이다. 정해진 점수를 줄여 마지막을 먼저 0으로 만들면 이긴다. 딱 0으로 마무리해야만 이기는 기술이기에 게임을 어렵게도 하고 재미있게 한다. ‘301’, ‘501’, ‘701’, ‘901’, ‘1101’, ‘1501’. 다섯 종류가 있다. 모두 끝이 ‘01’로 끝난다고 하여 ‘제로원’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에 남은 점수보다 높은 점수를 맞히면 ‘버스트’(Bust)가 되어 직전 점수에서 다시 시작한다.

‘크리켓 게임’은 15에서 20까지 6개 숫자와 ‘불’(Bull)만 가지고 게임을 한다. 이 7개 유효 구역에 상대보다 먼저 다트 3개를 넣어 내 영역을 만들고 거기서 점수를 올리는 방식이다. 3개를 다 넣고 난 뒤부터 그 영역에 넣을 때마다 점수가 올라간다. 3배 영역(트리플)에 넣으면 가장 유리하다. 내 영역을 먼저 만들어 거기서 점수를 계속 올릴 것인지, 상대가 가진 영역을 언제 저지할 것인지 전략을 요구하는 고난도 게임이다.

내 실력 뽐내고 싶어요, 대회는요?

2005년 온라인 연결이 가능한 다트가 개발되어 다트 동호인이 급격히 늘면서 공식 대회도 잇달아 열리고 있고 전업 다트 선수라는 직업도 생겼다. 현재 한국에서는 다트 대회가 매달 한번 이상은 열린다. 대한다트협회(KDA)가 프로대회 ‘퍼펙트’를 한 해 6번 개최하고, 아마추어 대회인 ‘마스터즈 토너먼트’도 5차례 연다. 이 밖에도 ‘다트클럽 최강전’, ‘원 리그’ 등이 있다. 다트라이브코리아가 아마추어 대회인 ‘플라이트 챔피언십’을 연 2회, 프로 투어인 ‘코리아’를 5차례 연다. 한국에서 프로 선수는 등록제라 양쪽 대회를 오갈 수 없다. 회원 규모와 상금 액수(1등 700만원)가 큰 ‘퍼펙트’가 인기가 높다. 스틸 다트 대회는 대한다트연맹(KDF)이 리그를 열고, 서울 홍대와 이태원, 경기 평택 등지에서 주말에 작은 대회가 열린다.

다트, 이것만은 알고 해야

▷ 다트는 먼저 던지는 쪽이 절대 유리하다. 던질 순서를 정하는 것을 ‘디들’(diddle)이라고 하는데, 한 발씩 던져 가운데 ‘불’에 가깝게 간 쪽이 먼저 공격한다.

▷ 한 라운드에 다트 3개를 던진다. 이를 ‘1스로’라고 하며, 1스로를 마치면 상대 선수와 차례를 바꾼다. 게임별로 라운드 수가 정해져 있다.

▷ 다트를 야구 하듯 던지면 안 된다. 야구에서 볼을 던지는 방식은 빠르고 멀리 던지기 위한 것이다. 다트를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

▷ 표적에 조금 더 가깝게 가기 위해 선을 넘으면 안 된다. 던질 때는 발끝이 ‘스로라인’(던질 때 서는 선)의 끝을 넘지 않도록 한다.

▷ 다트판 앞을 가로질러 다니는 행동은 금물이다. 내가 던질 차례가 됐어도 사람이 앞에 있으면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 상대의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는다. 상대가 던질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야유를 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 환상적인 플레이에 환호와 격려를 보낸다. 상대가 고득점을 냈을 때나 멋진 플레이를 펼쳤을 때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게 매너다.

스틸 다트와 소프트 다트는 달라요

전통적 다트는 끝이 뾰족한 금속으로 된 스틸 다트다. 스틸 다트가 원조 다트다. 소프트 다트가 나오면서 주객이 전도되어 스틸이니 하드니 하는 접두어가 붙는 운명이 되었다.

소프트다트판은 곰보자국 같은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여기에 플라스틱 팁이 꽂히면 센서가 반응해 득점을 화면에 표시해준다. 다양한 응용 게임이 내장되어 있고, 밋밋한 스틸 다트와 달리 웅장한 음향과 화려한 그래픽이 흥을 돋운다.

손에 들고 던지는 소프트 다트 한 개의 무게 규정은 20g 이하여야 한다. 스틸 다트는 길이 30.5㎝ 이내, 무게 50g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데 보통 18~24g 사이를 쓴다.

금속 침이 꽂히는 스틸다트판은 플라스틱일 수 없다. 떡갈나무나 코르크, 종이점토 등으로 만든다. 사이잘삼(마) 재료를 최고로 친다. 사이잘삼은 열대에서 나는 용설란 종류로 주로 밧줄을 만들 때 쓴다. 이를 엮어서 압축한 뒤 증기로 찌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단단하게 만든다. 흔히 보는 코르크는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장식용이다.

스틸이든 소프트든 숫자 배열은 똑같다. 하지만 다트판 크기는 다르다. 스틸다트판 지름은 34.4㎝(13.5인치), 소프트다트판은 39.4㎝(15.5인치)다. 스로라인부터 다트판까지 거리도 스틸은 237㎝인 반면 소프트는 243㎝로 더 멀다. 먼 만큼 판의 표적은 크니까 조건은 비슷한 셈이다.

다트의 절묘한 숫자 배열, 누가 만든 걸까?

[500년 넘는 다트 역사]

다트는 ‘작은 화살’이다. 화살 하나가 다트(dart)이고, 게임은 다트(darts)로 표기한다. 영국에서 유래했고 스포츠로 정착시킨 나라도 영국이다. 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 일본, 대만, 홍콩 같은 아시아 국가도 다트를 스포츠로 인정하고 있다.

올림픽 종목 가운데 창던지기와 양궁이 다트와 닮았다. 손으로 직접 던지는 창던지기와 도구를 써서 맞힌 점수를 더하는 양궁이 합쳐진 모양새다. 1980년대 국내 일간지 기사를 검색해보면 ‘다트’라는 단어가 한 호텔 바에서 열렸던 ‘작은 창 던지기 대회’에서 거론된다.

‘100년 전쟁’(중세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과 ‘장미전쟁’(15세기 영국의 왕위쟁탈전) 등 장기 전투가 지겨워진 영국 병사들이 소일거리로 간단한 게임을 생각해낸 것에서 유래했다. 처음엔 부러진 화살을 포도주 통에 던지는 영국식 투호였다. 오크통마저 귀해지자 군인들은 통나무를 잘라 부러진 화살을 던지고 놀았다. 나이테가 마르면서 생긴 갈라진 틈이 자연스럽게 점수 구역이 됐다.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선을 긋고, 구역마다 득점을 구분했다. 다트 보드의 원형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장미전쟁에서 랭커스터 가문이 승리하자 영국은 안정을 찾았다. 귀향한 병사들은 선술집(Pub·펍)에 몰려들어 전쟁의 추억을 나눴다. 누군가 ‘추억의 표적 맞히기’ 놀이를 제안했고, 누군가는 ‘그때 못 끝낸 걸 오늘 결판내자’고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전쟁터 다트는 술집에서 되살아났다. 펍 주인은 영업 전략으로 손수 만든 다트 판을 벽에 걸고 더 많은 손님을 불러들였다. 다트와 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다트는 생김새와 노는 방법, 룰이 각양각색이었다.

다트 판의 절묘한 숫자 배열은 누가 만든 걸까? 높은 숫자를 노리면 양옆에 도사린 낮은 숫자들이 달려드니, 욕심을 내면 낭패를 보는 구조다. 1896년 영국의 목수인 브라이언 갬린이 지금과 같은 다트 판을 고안했다고 하나, 당시 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그런 인물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1992년 영국인 토머스 버클이 잡지 <다트월드> 기고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 윌리엄 버클이 1913년에 숫자 배열, 더블과 트리플 계산법 등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 자료를 내놓진 못했다.

높은 숫자 옆에 낮은 숫자를 배치하고 영역을 구분해 두 배와 세 배로 계산하는 현재의 다트 판을 ‘런던 보드’라고 한다. 어떤 보드는 골동품 애호가의 수집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세기 초 영국은 도시와 지방을 불문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다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제 다트는 전세계인이 즐긴다. 미국에 다트를 전한 이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간 개척자들이다. 아시아 국가로는 홍콩이 제일 먼저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 일류 호텔과 외국인 밀집 지역의 바를 중심으로 알려졌다. 맥줏집은 벽에 코르크 다트 판을 거는 게 유행이었다. 1990년대 중반 전자다트가 도입되어 대학가를 중심으로 다트방이 우후죽순 생겼지만 2~3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다트가 여러 명이 어울리는 스포츠로 인식되지 못하고 기계 판매에만 그친 탓이다.

2000년 초반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세계 최초로 온라인 기능을 탑재한 다트를 개발해 상금을 건 정기 대회를 열자 동호인이 급격히 늘었다. 이 회사는 다트 시범선수단을 구성해 전국을 돌며 알리기 시작했다. 맥줏집과 바에서나 보던 다트는, 이제 전문 다트 바는 물론 당구장, 볼링장, 게임센터, 카페, 음식점, 미장원, 직원휴게실이나 고객대기실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트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은 소프트 다트(전자다트)의 탄생이다. 1986년 미국의 한 회사가 다트를 전자화했다. 플라스틱 팁이 박히면 센서가 점수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스틸 다트의 위험성과 계산의 복잡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 전후 온라인과 연결된 제품을 한국과 일본, 스페인, 중국 등이 내놓으면서, 다트 붐을 일으켰다.

유춘희 <다트 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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