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령대 완패, 일본 공포증에 걸린 女농구

2017. 7.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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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한국여자농구가 일본 공포증에 걸렸다.

서동철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대표팀은 지난 24일 인도 뱅갈루루에서 개최된 ‘2017 FIBA 아시아컵’ B조 예선 2차전에서 일본에게 56-70으로 완패를 당했다. 25일 필리핀을 91-63으로 잡은 한국은 1승 2패로 8강에 진출, 27일 오후 2시 30분 뉴질랜드와 한 판을 기다리고 있다.

한일전은 그야말로 완패였다. WNBA에서 뛰는 도카시키 라무(192cm)가 빠져 박지수(195cm)로 해볼 만하다는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한국은 14-12로 1쿼터를 앞섰지만, 2쿼터 단 7득점에 그치며 26점을 내줘 와르르 무너졌다.

한국은 일본의 스피드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한 번의 패스로 번번이 속공을 허용했다. 아시아 최고가드 요시다 아사미(165cm)는 25분만 뛰면서 4점, 4리바운드, 8어시스트, 6스틸로 한국을 압도했다. 일본 주전들은 전반전만 뛰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여유를 보였다.

한국은 유일한 무기 박지수의 높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일본은 이중삼중수비로 박지수를 무력화했다. 설상가상 웬만한 신체접촉에도 파울이 불리지 않아 박지수에게 더욱 불리했다.

결국 박지수는 3쿼터 시작 20초 만에 5반칙 퇴장, 2점, 5리바운드에 그쳤다. 높이의 방패를 잃은 한국은 일찌감치 승기를 놓쳤다. 일본은 느긋하게 2군을 투입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야말로 완패였다.

한국은 속공을 허용한 뒤 따라붙지도 않고 포기하는 듯 나약한 모습까지 보였다. 정신력에서도 한국의 완패였다. 4쿼터 한국이 22점을 넣으며 어느 정도 추격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박혜진과 강아정이 뛰지 못해 졌다는 것도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은 24개의 실책을 범했다.

▲ 한국여자농구의 영광? 옛말일 뿐

한국은 아시아선수권 12회 우승으로 아직까지 최다우승국으로 남아있다. 1965년과 1968년 1,2회 대회 연속 우승을 시작으로 1984년 10회 대회까지 무려 8회를 우승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이 아시아 최강자로 올라섰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아시아여자농구를 양분했다. 90년대 한국은 중국에 밀려 4회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그럼에도 한 수 아래 일본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은순, 유영주, 전주원 등으로 이어지는 90년대 황금세대는 마지막 꽃이었다. 한국은 1997년 방콕대회서 일본을 74-61로 꺾고 우승했다. 2년 뒤 일본 시즈오카서 열린 대회 결승서 한국은 다시 한 번 일본을 68-65로 눌렀다. 사실상 한국농구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정선민 신한은행 코치는 “90년대는 고교농구 경쟁도 치열했고, 좋은 선수도 많이 나왔다. 정은순, 전주원 등 언니들과 눈빛만 봐도 척척 통했다. 태릉에서 합숙훈련도 많이 하고, 유럽으로 전지훈련도 떠났다. 올림픽에서 브라질과 대결할 때도 ‘그래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정선민, 변연하, 이미선 등이 마지막 황금세대였다. 한국은 2007년 안방 인천에서 개최한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중국을 79-73으로 물리치고 마지막 금메달을 땄다. 이후 한국은 노장들에게 의지하며 한동안 아시아 정상에는 있었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젊은 세대 중 국가대표로 제대로 출전시간을 받는 선수는 김단비, 김정은 등 몇 명 없었다. 한국은 노장들이 마지막 투혼을 발휘한 2011년 준우승 후 가파른 내리막을 걷는다.

2013년 이후 한국은 일본농구에 역전을 허용한다. 2013년 결승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65-43으로 완패를 당했다. 변연하, 신정자 등 노장들이 불꽃을 태웠지만, 일본의 황금세대를 넘지 못했다. 2년 뒤 격차는 더 벌어졌다. 한국은 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하며 3위에 그쳤다. 일본은 결승에서 중국을 85-50으로 완파하며 아시아에는 적수가 없음을 확인했다.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올해 대회서 일본은 도카시키 라무의 결장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아시안컵에 참여하며 일본의 우승은 어렵게 됐다. 다만 일본은 호주와 만나 74-83으로 석패할 정도로 강했다. 한국은 호주에 54-78로 참패를 당했다.

▲ 일본공포증에 시달리는 한국농구

전주원 대표팀 코치는 “90년대 우리가 코트장에 들어서면 일본선수들이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청소년 대표팀 때부터 크게 이겼던 상대라 성인이 되어서도 일본에 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2013년 일본과 결승 때 교체로 들어가던 선수가 손을 덜덜덜 떨더라. 큰 경기 경험이 없어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일본은 철저하게 한국의 장점을 습득했다. 한국 지도자들을 데려와 일본선수들을 가르쳤다. 대표팀에도 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귀화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16세 이하 아프리카 선수들을 귀화시켜 연령대 대표팀부터 계속 손발을 맞추고 있다. 수 천 개의 고교에서 쏟아지는 수 만 명의 선수들 중 진주가 계속 발굴됐다. 결국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는 우리가 일본을 두려워하는 지경이다.

한국U19 여자대표팀은 26일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U19 월드컵 16강에서 일본에 47-86으로 참패를 당했다. 박지수가 성인대표팀 차출로 빠지긴 했지만, 한국에서 이주연, 박지현 등 또래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을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가나출신 귀화선수 마울리 스테파니는 8점, 7리바운드로 일본 승리를 거들었다.

여자프로팀 관계자는 “개인기와 기술에서 이제 한국농구는 일본에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과거 한국이 했던 스피디한 기술농구를 이제 일본이 하고 있다. 앞으로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농구명문고교도 선수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저변이 얕다. 인구수는 줄고 있는데, 부모가 자녀에게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은 더 심화되고 있다. 프로리그에서 당장 떨어지는 전력을 만회하느라 외국선수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내선수들의 설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는 여자농구의 영광은 체육교과서에나 남게 되는 것일까. / jasonseo34@osen.co.kr

[맨위 사진] 지난 24일 한일전서 요시다 아사미가 심성영의 마크를 받고 있는 모습 / FIB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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