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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열의 하프타임] 중요한 순간 그는 A대표팀의 멤버가 되었다

조회수 2017. 7. 27. 14: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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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관련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메일이나 SNS를 통해 선수로서 유럽진출 뿐만 아니라 분석관, 기자, 협회직원, 에이전트 등 다양한 진로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에는 피지컬 코치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예전에는 생소한 직업이었습니다. 그 생소했던 그 길을 묵묵히 걸어 온 사람, 신태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위기의 A대표팀에 합류한 이재홍 피지컬 코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본 칼럼은 이재홍 코치의 스토리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코치 본인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피지컬코치를 하게 된 계기

이재홍 코치는 축구선수 출신입니다. 대구 토박이입니다. 대구 반야월초, 대구 대륜중, 대구공고에서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고교시절에는 연령대 대표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재대 시절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부상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대구공고 시절 U-17대표팀에도 뽑히면서 나름대로 축구 선수로서의 미래를 꿈꾸었죠. 고교 2년때 부상이 찾아왔고, 결국 대학에 들어가면서 부상때문에 은퇴를 했어요. 아쉬웠죠.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부상으로 인해 피지컬 코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일 수도 있죠.” 라며 웃습니다.

U-17대표선수로 뽑혔을 때 당시 이재홍 코치 (제공: 이제홍 코치)

“2002년이 제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재활-복귀-재발-치료-재활-복귀를 거치던 시기) 가장 감동적인 시기였어요. 제 두눈으로 축구라는 단일 스포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은사님께서 피지컬 코치라는 직업과 역할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그 길을 권유해 주셨어요. 바로 마음의 결정을 했죠. 선수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축구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많은 선수들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그래서 도전하게 되었어요.” 라며 피지컬코치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선수로서는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겠지만 축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지컬코치의 과정과 역할

“세종 대학교로 편입을 하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영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요. 쉽지 않았죠.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만 했지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목표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꾸준히 공부를 했어요. 이 후에 영국으로 떠났고, 존무어대학 석사과정을 하려다가 전공능력이 부족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석사과정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었기에 힘들었지만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그런 노력을 하늘이 알아준 것일까? 드디어 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2011년 8월 홍명보 감독님이 이끄시는 올림픽팀의 이케다세이고 코치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꿈만 같았어요. 하나하나 열심히 배웠죠. 100%가 아닌 101%로 일한다는 마음으로. 그 결과 2011년 겨울, 우리나라 대표팀의 피지컬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피지컬 테스트 항목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남녀 연령대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을 위해 일할 수 있었구요. 현재는 부산아이파크 구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A대표팀에서도 일하게 되었어요. 운이 좋았죠.”

피지컬 코치의 길을 걷는데 큰 영향력을 준 세이고 코치와 함께 (제공 :이재홍 코치)

“피지컬 코치는 적절한 훈련강도와 양으로 체력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지컬 데이터와 장비를 활용해 개인적인 훈련 프로그램도 디자인 해 줄 수 있어야하구요. 실례로 나이가 들수로 회복속도가 늦기에 GPS 데이터를 통해 연령에 따른 피로 회복속도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또한 피지컬 코치는 오로지 체력 훈련만 담당하는 코치, 축구의 기술적인 부분을 체력 훈련에 접목시키는 코치, 기술적인 부분과 전술적인 부분을 체력 훈련에 접목시키는 코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에 따라 다른 유형의 역할을 맡길 수 있기에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운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언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 보람된 순간 그리고 기억에 남는 선수

그에게 피지컬코치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과 선수 그리고 보람을 언제 느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2015년 17세 대표팀이 일본에서 하는 친선대회에 나갔어요. 그 때가 생일이었는데 선수들이 생일 파티를 해준 것이 기억에 남아요. 특별한 순간이 보람되게 느껴졌던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프로그램을 잘 소화하고 발전한 모습을 통해 ‘내가 도움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때는 항상 이 일에 대한 보람을 느껴요. 이 길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구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던 생일파티 모습 (제공: 이재홍 코치)


“정말 인상에 남는 선수가 있어요. 한 명은 같이 해보지 못한 선수이고, 한 명은 함께 해 본 선수에요. 전자는 기성용 선수에요. 그를 보면서 ‘이런 유형의 선수는 앞으로 한국축구에 나오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큰 신장에 신체 발란스와 볼 컨트롤 능력이 뛰어났고, 킥의 정확도도 뛰어났으니까요. 후자는 황희찬 선수에요. 그 선수는 흑인처럼 탄력이 뛰어나고 스피드와 웨이트를 통한 체력까지 겸비한 선수입니다. 아직까지는 국제 대회에서 폭발력이 있는 상대방은 확실하게 압도하지는 못하지만 트레이닝을 통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성실한 선수이기 때문에 기대가 됩니다.”

선수들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이 기억에 남고, 선수들이 좋아지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재홍 코치.  현재 그가 성공라고 말할 순 없지만 좋은 코치임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축구팬들이 위기상황이라고 하는 A대표팀의 피지컬 코치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A대표팀. 이루어진 꿈, 이루어질 꿈

“대표팀에서 호출을 받고 처음에는 감격했어요. 꿈꾸던 자리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감격이 부담으로 변하더라구요. 지금은 이란전과 우즈벡전에서 모두 승리해서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집기간이 짧기 때문에 선수들이 좋은 컨디션을 회복해서 두 경기에 120% 쏟아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임무를 잘 수행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진출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팬이 직접 찍어준 사진  (제공 : 이재홍 코치)

그토록 오랜시간 꿈꿔왔던 자리를 제안받는 순간 크게 감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감격도 잠시, 그는 현실을 직시하며 부담이 커져갔고 동시에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보람을 느꼈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축구를 사랑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야 합니다.”라며 피지컬 코치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이 단순한 문장은 그의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이 원하는 해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문장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 짧은 문장이 그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하며 그의 여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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