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싸서 사라지는 약품들.. 환자만 골탕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17. 7. 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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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된 가격으론 원가보전 못해" 제약사 생산·공급 포기 잇따라
요긴하게 쓰던 환자들만 발동동.. 선택권 없어 비싼 외국산 쓰기도

세 살 때부터 피부 여러 곳에 물집이 부풀어 오르는 난치성 피부염을 앓는 A(6)군. 자기 항체와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희귀 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다. 심한 피부염과 혈관염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느라 몸이 붓고 때론 부작용에 시달렸다. 그러다 4년 전부터 서울대병원 피부과에서 '댑손(dapsone)'이라는 약을 처방받아 매일 반 알씩 복용하고 나서부터 증세가 확연히 좋아졌다. 댑손은 한센병(나병) 치료에 쓰이는 일종의 항생제다. 혈관염, 면역세포 관련 질환 등에도 약효가 있어 다양한 질병 치료에 쓰인다. 하지만 A군은 현재 댑손을 먹지 못하고 있다. 다시 그 힘든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돌아갈 판이다.

◇약값이 너무 싸서 사라지는 역설

댑손은 지난해 초 국내 생산과 공급이 중단됐다. 올해 봄까지 재고분이 쓰이다가 남아 있는 약이 바닥나면서 현재는 처방을 해도 약국에서 구할 수 없다. 댑손이 생산 중단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약값이 너무 싸서다. 약값이 한 알에 12~22원이다. 가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유일하게 태극제약에서 생산해 오다가 접은 것이다. 태극제약 관계자는 "원료를 인도에서 수입해왔는데, 인도 회사가 원료 제조를 중단하고, 다른 회사 원료는 너무 비싸 생산 원가를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정진호 교수는 "댑손은 입안이 자주 허는 재발성 구내염에도 효과가 있는데, 환자들이 약을 왜 먹을 수 없냐고 항의한다"며 "신약을 개발한다고 수천억을 쓰면서 요긴하게 쓰이는 약물이 너무 싸서 퇴출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정부는 댑손을 포함해 500여개를 퇴장 방지 약물로 지정해 보호하지만, 약값의 10%를 얹혀주는 방식이어서 22원짜리 댑손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댑손은 한센병(나병)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약물이다. 국내 한센병 환자는 300여명 정도로 이들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무상으로 댑손을 공급받아 복용한다. 그것도 올해 복용분만 최종적으로 공급되고 멈춘 상태다.

◇산부인과 저가 약물도 공급 중단

10개월 된 딸 아이를 둔 주부 K(29)씨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질크림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외부 생식기 유착으로 요로감염 우려가 있다. 이런 경우 에스트로겐 질크림을 발라주면 살이 부드러워지면서 유착이 풀린다. 하지만 이 연고도 약값이 너무 낮게 책정돼 생산이 중단됐다.

자궁 출혈에 쓰이는 프로게스테론 주사제도 삼일제약에서 공급하다가 계속 된 약가 하락으로 생산 중단한 상태다. 자궁 출혈뿐만 아니라 시험관 아기 시술에도 쓰이는 약물이어서 국내 생산 중단 후 고가의 수입 주사제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쓰이고 있다. 싼 국산은 퇴장하고 그 자리에 고가의 외국산이 들어온 셈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정부가 퇴장 방지 약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원가 보전해주고, 저가 낙찰 방식의 병원 의약품 입찰에서 이를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 약제 업무 관계자는 "공공제약사를 설립해 수익이 나지 않는 필수 의약품을 정부가 생산 유통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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