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블랙리스트 관여 공무원, 가해자이자 피해자.. 진실 밝힐것"

2017. 7.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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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체부 장관 인터뷰

[동아일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5일 인터뷰에서 자작시인 ‘처음 가는 길’이란 시를 통해 취임 후 한 달을 맞은 소회를 밝혔다. 도 장관은 “머리를 비워야 새로운 창조적 사유가 채워진다”며 “고은 시인의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시 구절처럼 직원들에게 눈치 보지 말고 언제든 휴가를 떠날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처음 가는 길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취임식에서 키플링의 시를 인용해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돼달라고 당부해 화제가 됐다. 취임 한 달을 맞아 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신의 시 ‘처음 가는 길’을 언급하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교육공무원으로 27년을 보냈기 때문에 관료사회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체부 업무가 워낙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처음 가는 길’이란 시가 떠올랐다. 공무원들과 직접 부딪쳐 보니 어떤 부처보다 자유롭고, 덜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다가 국정 농단의 주무대가 됐는지 안타깝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신나게 일할 능력을 가진 분들이다.”

―‘문화비 소득공제’ 정책을 도입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생활은 TV나 휴대전화를 보고 댓글 다는 소극적인 차원이 아니다.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창작의 주체가 돼 글을 쓰고, 여행하고, 사진 찍고 하는 생활 속 문화가 구현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문화 지출 비용을 보전해 주고, 근로자 휴가지원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길 기대한다. 휴가비는 7배 이상 소비 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문화비 소득공제는 서점이나 공연장에서 문구류, 식료품 등을 제외한 순수 문화 비용만 계산하게 하도록 하는 기술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서점에 판매시점 정보 관리(POS) 시스템을 도입하고, 카드 회사와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곧 시행할 것이다.”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위원회가 곧 출범할 것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조사하나. “지금까진 주로 청와대를 중심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전직 장차관, 교문수석실 사람들을 대상으로 검찰이 조사했고 재판을 받는 중이다. 블랙리스트 실행 공무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데 신중하게 접근하려 한다. 예술계에서 볼 땐 가해자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부당한 지시에 의한 피해자일 수도 있다. 또 어느 시기까진 가해자였다가, 또 저항하다가 불이익 받아서 쫓겨나면 피해자가 된다. 사례별, 사업별로 다르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찾고 기록해야 블랙리스트 같은 일들이 재발하지 않는다.

―장관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이유는….

“원래 대통령 직속기구로 하려 했지만, 적폐청산은 각 부처별로 장관 책임하에 진행하기로 정리됐다. 그래서 문체부 산하에 두고 장관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다. 20명의 인원이 6개월 동안 조사 업무를 맡는다. 필요하면 3개월 연장키로 했다.”

도 장관은 몇 차례 전 정권에서 임명된 문화예술단체장들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밝혀 주목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법률에 의해 신분이 보장된 사람들인데 일괄 사표를 강요할 수 없다”라며 “곧 임기가 끝나는 사람들부터 순차적으로 인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었던 ‘문화가 있는 날’을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전 정권의 브랜드 정책이라고 다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좋은 것은 확대하는 게 맞다. ‘문화가 있는 날’은 매월 마지막 주 1주일간으로 확대할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돼 기업 협찬도 어려운 현실인데….

“대기업은 후원금을 많이 냈다. 8800억 원이 걷혔으니까 목표액의 94.5% 정도다. 다만 공기업이 주저하고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기업이 돈을 내서 문제가 됐기 때문에 탄핵과 대선 과정을 지켜보며 눈치만 봤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기업도 맘 놓고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평창은 이번 정권의 첫 세계적인 행사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가을부터는 노태강 2차관을 평창에 상주시키며 빈틈없이 준비하겠다.”

―문체부 조직 개편은 어떻게 할 건가.

“김종 전 2차관 한 사람이 문체부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2차관 소관 업무가 원래 체육 분야인데 관광도 가져가고, 콘텐츠 진흥 업무에도 관여했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정상화하겠다. 문체부 1급 실장이 도맡아 온 국립중앙도서관장 자리를 민간에 개방하겠다. 국립중앙도서관장직을 공무원 출신이 아니라 도서관 전문가에게 넘겨줄 계획이다.”

―내년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는 문화예술진흥기금 확보 대책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향후 몇 년간은 국고(일반회계)에서 20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담뱃세나 체육진흥기금 중 4%를 문예기금으로 전용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2015년 6월 고시원에서 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된 배우 김운하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도록 예술인 고용보험과 실업급여를 검토 중이다.”

―활자매체 진흥을 위한 계획은….

“현재 전국에 공공도서관이 1000개가 있는데, 임기 내에 300개 이상을 더 신설하겠다. 요즘 초판을 1000∼1500부씩 찍는다. 공공도서관에 최소한 한 권씩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출판사가 좋은 책을 소신껏 만들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민간에서 진행하는 ‘작은도서관에 날개를’ 사업도 문체부가 협력해 더 진흥시키도록 하겠다.”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방침에 대해서는….

“가야사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인력이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국정과제 100대 과제에 포함되니까 돈을 어마어마하게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예산이 배정된 것은 없다.”

―본보는 국내 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한 ‘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무척 좋은 캠페인이다. 중국의 ‘한한령’ 여파로 국내 관광업계에서 피해를 본 중소업체 지원을 위해 1000억 원의 예산을 요청했는데, 추경에서 600억 원만 통과됐다.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문체부도 대통령부터 많은 국민들이 여름휴가 때 국내 여행지를 찾아줄 것을 권유하고 있다.”

―여름휴가 계획은….

“충북의 대야산과 속리산 숲속에서 일주일간 혼자 있으려 한다. 휴가 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빠져나갈 것은 빠져나가고, 텅 비는 자리가 생긴다. 그 자리에 새로운 상상, 새로운 사유가 채워질 것이다.”

도 장관은 휴가 때 읽을 책으로 윌 곰퍼츠의 ‘발칙한 예술가들’과 고미숙의 ‘로드클래식’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는 “‘발칙한 예술가들’은 예술적 상상력이 뛰어난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고, ‘로드클래식’은 길을 떠나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다룬 책”이라며 “딱딱한 행정업무에 굳어진 머릿속에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raphy@donga.com·유원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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