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다 말 안에 '꿈'있듯 .. 절망 속엔 희망 숨어 있죠

신준봉 2017. 7. 2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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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시인『도미는 도마 위에서』
도미 몸짓서 삶다운 삶 역설 느껴
열 번째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를 펴낸 김승희 시인.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상처, 환상, 광기, 폭주…. 몇 개의 단어로 김승희(65) 시인의 세계를 표현하자면 이런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다. 초기 시집들과, 자살미수 고백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1985년 산문집 『33세의 팡세』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던 탓이다.
당사자는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독자의 관성이 거꾸로 득이 될 수도 있다. 김씨가 최근 출간한 열 번째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난다·사진)를 아무래도 과거와의 연관 속에서 살피게 돼서다. 근황에 대한 궁금증이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인의 요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놀이처럼 경쾌한 제목과 디자인의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새 시집의 ‘시인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열 번째 시집이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또 기교가 절망을 낳는’(이상) 열 번째의 고개를 넘어온 것이리라.”

여기서 이상은 한 세기 전의 난해 시인 이상(1910~37), 맞다. 이상 연구서를 펴낸 전문가인 김씨가 이상의 문장을 인용하는 건 자연스럽다. 뜻도 자명하다. 가령 평생 모차르트 주변을 배회했던 살리에리 같은 이가 떠오른다. 천재를 타고나지 못해 좌절 속에 살다간 혹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평균적인 예술가들의 숙명을 집약한 표현이다. 한 때 세상을 호령했던 김씨로서는 어느 정도 겸양의 표현이겠지만.

지난 19일 김씨를 만났다. 까만색이 편하다며 땡볕인데도 까만색 차림이었다.

Q : 감회가 새롭겠다.

A : “참 많이도 썼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썼던 것 같다. 젊은 시절 삶에 대한 절망이 컸는데 그게 기교를 낳고, 하지만 금방 갈망에 사로잡혀 새로운 기교를 찾게 되고,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시집 낸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닌데, 악순환 같으면서도 그게 글 쓰는 사람들의 길인 것도 같고….”

Q : 『33세의 팡세』의 이미지가 여전하다.

A : “불의 여인, 초현실주의 무당, 이렇게도 불렸다. 글 쓰다 보면 자아도취에 빠진다. 밀폐된 방에 백합을 놓고 자면 죽는다는 식의 문학소녀 시절 감상적인 행동을 적었던 건데, 동맥을 끊었다든지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쨌든 군대·감옥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동일시가 이뤄져 그런 곳에서 특히 많이 읽혔다고 들었다.”

Q : 시집 제목, 표제시에 담긴 뜻은.

A : “도미 같은 생선에게 도마는 내일이 없는 장소, 갈데 없는 막장이다. 도마 위에서 도미는 꿈틀거린다. 절망적인 장면이지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삶다운 삶을 사는 시간 아닌가. 그런 생각이 담겨 있다.” 김씨는 “도미가 도마 위에서 꿈틀거린다고 할 때, ‘꿈틀거리다’라는 말 안에 바로 ‘꿈’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고 했다. 한국어는 그런 점에서 용기를 주는 언어라는 얘기였다. 절망 속에 숨겨진 희망, 남들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발견이란다. 다른 건 몰라도, 김씨가 시를 쓰는 이유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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