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정의 원더풀 페스티벌] 낮잠자듯 편안한 한낮의 여행

이귀전 2017. 7. 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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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겐츠에서 1시간, 장크트 갈렌

흥겨운 축제의 밤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름다운 별빛 아래 노래와 대화로 시끌벅적하던 광장은 동이 트고 별들이 숨어들면서 조용해졌다. 덕분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이 피곤한 몸을 일으키게 한다. 보덴 호수로 아침 산책을 나섰다.

여행 책자에 미식 여행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라고 추천한 식당. 노란색의 차양이 인상적이다.
호텔에서 몇 걸음 걷지 않고도 호수에 다다른다. 아침 햇살을 받은 호수가 눈부시게 빛난다. 그 위로 백조들이 유유히 물살을 가른다. 작은 새끼들이 그 뒤를 따르는 모습이 마치 동화책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호숫가 벤치에는 어제 파티를 마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던 젊은이들이 눈을 비비며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찬 이슬을 맞은 젊은이들이 걱정스럽다가도 무모한 열정의 젊음에 부러운 마음이 든다.
수영복을 입고 형형색색의 수영모를 쓴 사람들이 호수에 뛰어들기 전 몸을 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조용한 아침 호수를 깨운다. 보덴 호수 위에 떠 있는 풍선처럼 형형색색의 수영모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전날 파티를 즐긴 여행객들이 보덴 호수의 벤치에서 잠이 든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다 보니 방파제 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그 옆으로 응급차량의 모습도 보인다. 걸음을 재촉해 도착해 보니 수영복을 입고 형형색색의 수영모를 쓴 사람들이 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여름이지만 수영을 하기엔 조금 쌀쌀한 이른 아침이다. 그래도 수영모를 쓴 사람들의 얼굴은 차가운 호수에 뛰어든다는 긴장감보다는 소풍 나온 아이들 마냥 설레고 들뜬 표정을 하고 있다. 보덴 호수를 수영으로 건너는 행사는 음악 축제에 색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호수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후 열을 지어 서더니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차례대로 물에 뛰어든다. 수많은 사람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조용한 아침 호수를 깨운다. 호수 위에 떠 있는 풍선처럼 형형색색의 수영모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시야에서 멀어지는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는 호텔 뷔페를 이용했다. 테이블이 실내와 연결된 광장에까지 놓여 있다. 광장을 발코니처럼 사용하는 덕에 햇살이 드는 광장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스위스의 도시 장크트 갈렌(St. Gallen)을 방문하기로 했다. 오페라 공연 시각은 오후 9시다. 보덴 호수 주위는 충분히 거닐었으니 남는 시간에 그동안 방문하고 싶었던 장크트 갈렌을 돌아보기로 했다.

차량통행이 금지된 장크트 갈렌 구시가지 벽돌길을 따라 걸으니 수도원 지구가 나타난다. 중세시대 대표적인 수도원이었던 이 지역은 수많은 수도사가 학문과 종교적 열망을 불태웠던 곳이다.
스위스 장크트 갈렌주의 주도 장크트 갈렌은 16만명의 주민이 모여 산다. 스위스 동부의 중심도시이다. 알프스 산세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는 중세 수도원을 품고 있다.
장크트 갈렌은 스위스 장크트 갈렌주의 주도로, 16만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스위스 동부의 중심도시다. 해발고도 700m의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알프스 산세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는 중세 수도원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다른 나라지만 머물고 있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 40㎞의 거리이다. 운전하면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한다. 한나절 나들이를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갈 수 있다니 이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다. 가파른 알프스 도로를 따라 도착한 도시는 축제로 시끌벅적하던 브레겐츠와 다르게 조용하고 한적하다.

시내 중심부에 차를 세워두고 차량통행이 금지된 구시가지로 걸어 들어갔다. 중세의 벽돌로 단장된 구시가지의 거리는 아름답게 채색된 퇴창(밀어서 여는 창문), 아기자기한 부티크와 카페로 방문객들을 반겼다. 퇴창은 이 도시의 상징이라고 한다. 중세 벽돌길을 따라 걸으니 수도원 지구가 나타난다. 중세시대 대표적인 수도원이었던 이 지역은 수많은 수도사가 학문과 종교적 열망을 불태웠던 곳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도서관엔 수천년 동안 수기로 작성된 필사본을 포함해 17만권의 고서가 소장돼 있다.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을 보며 중세 암흑기를 넘어 르네상스가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이 학문과 종교적 열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던 수도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싶었다. 이 도서관과 수도원 지구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과 국경을 접한 장크트 갈렌은 보덴 호수로의 여정을 계획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음악 축제기간에도 많은 공연 관람객들이 브레겐츠에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 머물기도 한다. 도시 그 자체도 매력적이다. 수도원 지구를 비롯해 구시가지는 천천히 걷기에 좋은 장소다. 시내 곳곳에는 16∼18세기부터 내려오는 다채로운 색으로 채색된 가옥이 매우 인상적이다. 구석구석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출출함이 느껴졌다. 광장 한쪽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행 책자에 미식 여행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라고 추천한 식당이다. 노란색의 차양이 아름답게 둘러쳐진 자리에 앉았다. 지역 요리를 달라 하니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음식을 내어 온다. 투박하지만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다. 

아침햇살을 받은 보덴 호수가 눈부시게 빛난다. 그 너머 수상 무대가 보인다.
‘백조 가족’이 보덴 호수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고 있다. 새끼들이 어미 뒤를 따르는 모습이 마치 동화책의 한 장면 같다.
식사 후 대성당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로코코 양식의 홀에 한참을 머물다가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구시가지를 빠져나왔다. 한나절의 조용한 여행이었지만 마치 오래된 책에서 잊힌 비상금을 발견한 듯 숨은 보석 같은 여행지를 찾은 기분이다. 브레겐츠로 되돌아 오는 길 역시 국경선 넘기가 어렵지 않다. 초소에서 차량 속도를 줄이며 눈인사를 한 뒤 스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다. 아침에 떠나올 때는 조용하던 브레겐츠가 다시 축제의 열기로 시끌벅적하다.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관람객들로 광장이 북적인다. 공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런 활기찬 분위기가 휴가 기분을 돋운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축제에 어울리기 위해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어젯밤 만난 그들처럼 나 역시 한 손에는 방석을 들었다. 공연장은 벌써 많은 사람으로 꽉 차 있다. 오전 허전했던 무대장치에 불이 켜지고 공연준비를 시작하니 관객들의 흥분이 보름달처럼 타오른다. 이제 투란도트의 막이 오른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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