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도시열섬' 서울의 밤은 교외의 낮보다 뜨거웠다

윤지로 입력 2017. 7. 26. 19:52 수정 2017. 7. 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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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에 데워지고..빌딩숲에 열기 갇히고.. 폭염·열대야 부추기는 '도시열섬' 현상
지난 20일 자정. 지구가 자전해 낮 동안 지글거린 태양을 등진 이 시간에도 서울 강남구의 수은주는 29.2도를 가리켰다. 이는 서울에서 10㎞가량 떨어진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과 광주시 오포읍이 12시간 전 즉, 해가 가장 높이 뜬 19일 정오에 기록한 것(각각 28.8도, 29.0도)보다 높은 온도다. 말하자면 ‘서울의 밤은 교외의 낮보다 뜨거웠던’ 것이다. 아스팔트와 고층 건물, 자동차 등이 합세해 열을 가두는 ‘도시열섬’이 일어난 결과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지구온난화와 달리 도시열섬은 이름 그대로 도시에만 출몰한다. 그리하여 도시의 여름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조만간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다. 도시인을 열섬에서 구출할 방법은 없는 걸까.

◆열에 갇힌 도시

전국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우리나라 평균 온도는 10년마다 0.27도씩 올랐다. 그런데 서울의 온도 상승 속도는 10년에 0.33도, 인천은 0.39도,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대구는 0.41도로 온난화가 더 빨리 진행됐다. 해남(0.14도), 제천(0.12도), 남해(0.22도) 등과 비교하면 1.5∼3.5배 빠른 속도다. 지구온난화에 더해 도시열섬이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환경부 환경공간정보서비스(EAIS) 자료를 보면 1980년대 말 이후 20년 새 7대 도시의 시가지 면적은 345㎢가 는 반면, 농경지·산림·초지는 322㎢ 줄었다. 시가지를 덮은 아스팔트는 도시 안에 열을 붙들어두는 주범이다. 아스팔트의 빛 반사율(알베도)은 0.04∼0.12 사이다. 1만큼의 빛을 받으면 대략 0.1은 반사시키고 0.9는 흡수한다는 뜻이다. 풀이 없는 맨땅의 반사율은 0.17, 잔디는 0.25다. 반사율이 낮은 아스팔트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도 더 많이 달아오른다. 여름철 유독 아스팔트 도로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설상가상으로 아스팔트로 달궈진 공기는 빽빽이 들어선 건물에 막혀 외부로 쉽게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에어컨 실외기, 자동차에서 나오는 열기도 도시온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도로 피복 상태, 녹지율, 건물 밀집도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같은 도시 안에서도 온도 차가 2∼3도 벌어진다. 이날 영등포구가 36.2도로 올여름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최고기온을 기록했을 때 은평·관악·강동구의 수은주는 33도대에 머물렀다. 영등포구와 강남, 서초, 종로구의 빼곡한 빌딩숲이 ‘열섬 안의 열섬’을 만든 셈이다.
서울시는 8월 말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 쿨링포그 시스템을 적용한 쿨 스팟(Cool Spot)을 운영한다고 21일 전했다. 가동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45분간 가동 후 15분간 멈추는 식으로 운영되며 기온이 25℃이하 이거나 습도가 80% 이상이면 자동으로 중지된다.

◆도시의 ‘바람길’을 허하라

폭염과 열대야가 강도를 더해가면서 살수차 같은 고전적인 방법 외에 최근에는 쿨링포그, 그늘막쉼터까지 등장했다. 쿨링포그는 물을 안개처럼 뿜는 장치를, 그늘막쉼터는 건널목 등에 만든 천막을 말한다. 시민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짜낸 아이디어인데, 어디까지나 ‘대증요법’일 뿐 도시열섬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도시열섬의 강도를 낮추려면 도시의 열 자체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도심으로 찬공기를 흘려보내는 거대한 선풍기가 있다면 어떨까. 황당한 이야기같지만 ‘바람길’이라고 하는 이런 개념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도시계획에 반영돼왔다.

바람길의 원리는 이렇다. 도심이 낮동안 태양열을 받으면 뜨거워진 공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그 빈 공간으로는 주변 공기가 유입되는데 이때 주변에 산이나 잔디밭이 있으면 여기서 만들어진 시원한 바람이 도심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다. 즉, 바람길 계획은 산 바람이 도심으로 흐르는 통로를 열어두는 것을 말한다. 시간당 초지 1㎡는 20㎥, 경사진 숲은 25∼30㎥의 찬공기를 생성한다. 이에 비해 개발지역은 1시간에 1㎥밖에 찬공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도시 인구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도 바람길을 가로막는 개발을 해왔다. 인왕산, 관악산 혹은 한강 주변에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가 대표적인 예다.

박석봉 광주대 교수(건축학)는 “우리나라 도시의 산자락에는 아파트가 그냥 서있는 정도가 아니라 겹겹이 싸여 있는데 이렇게 되면 찬공기가 결코 도심으로 흘러들어올 수 없다”며 “산과 한강에 인접한 고층 건물은 바람길을 막는 펜스”라고 지적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열환경에 취약한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1970년대부터 산 공기를 도시로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찬공기가 어디에서 얼마만큼 들어오는지 분석지도를 만들어 경사진 바람길에는 고층 건물을 짓지 않도록 하고, 지리적으로 열섬이 강하게 나타날 곳은 개발을 유보하는 식이다.

엄정희 계명대 교수(생태조경학)는 “독일 법에는 도시계획을 할 때 (열섬현상 같은) 도시 미기후를 고려하도록 돼있다”며 “최근에는 베를린 신공항 건설 후 폐쇄될 테겔공항 부지 내 찬공기를 어떻게 보호할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산림청이 ‘도시 바람길 숲’이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바람길을 막고 있는 건물 벽면을 녹화하거나 주변에 녹지를 만들어 산림의 찬공기가 우회해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국내 첫 바람길 사업이다.

박 교수는 “도시열섬과 개발이 상충될 때는 개발이 우선순위가 된다”며 “도시열섬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의 여름, 베트남처럼 아열대 더위 올 수도

세계 면적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은 1%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1%의 도시 공간에서 세계 생산량의 80%가 만들어지고 에너지의 80%가 쓰인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0%를 뿜어대는 곳도 도시다. 좁은 곳에서 압축적으로 생산·소비가 이뤄지다보니 도시의 기후변화는 다른 곳보다 더 극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은 최근 세계기상기구(WMO)와 함께 2100년 세계 주요 도시의 여름이 얼마나 더워질지를 예측해 발표했다. 온실가스 저감 여부에 따라 각 도시가 지금의 어떤 도시만큼 더워질지 매칭시킨 것이 특징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 추세를 이어간다면 서울의 여름(26.6도)은 베트남의 하이퐁(32.4도)처럼 더워질 전망이다. 북위 20도에 위치한 하이퐁은 한겨울에도 15도 이상을 유지하는 아열대 지역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한다 해도 중국 내륙에 있는 충칭(30.2도)만큼 온도가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온실가스 감축이 없다면, 일본 북부 도시 삿포로(20.9도)는 도쿄(26.2도)만큼, 캐나다 몬트리올(23.3도)은 카리브해에 접한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30.4도)만큼 더운 여름을 맞을지도 모른다.

가장 온도 상승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된 도시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다. 소피아의 여름철 온도는 24.3도인데 2100년에는 8.4도나 올라 이집트 북부 포트사이드만큼 더워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여름철 평균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중동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2100년 예상 온도는 44.8도, 이라크 바그다드는 무려 49.5도나 된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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