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도 너무 빠른 집권여당의 증세론, '조세정의 VS 정치공학'

정진우 기자 2017. 7. 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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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증세의 정치학]집권여당의 입지 등 다양한 셈법이 속도전으로 이어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회의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17.7.26/뉴스1 <저작권자 &copy;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기획위)는 지난달 29일 ‘새 정부 조세개혁의 방향’이란 제목의 5페이지짜리 보도자료를 내놨다. 국정기획위의 그간 발표 내용과 결이 달랐다. ‘대기업과 고소득자, 자산소득자에 세금을 더 매긴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겼다. 문재인 정부 출범 50일만에 증세가 처음 공론화된 순간이다.

당시 소득세나 법인세 최고세율 등은 구체적으로 발표되진 않았다. 그간 부자 감세 정책으로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 하는 등 ‘조세정의 실현’이란 방향성에 방점이 찍혔다. 국정기획위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다. 굳이 증세 얘기를 이 시점에 꺼내는 게 맞냐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국정기획위내 집권여당 소속 정치인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떠올렸다.

하지만 ‘세제통’인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밀고 나갔다는 후문이다. ‘부자증세’란 프레임을 세워 공감대만 형성한다면 공약집에도 들어있던 ‘조세정의’란 국민과의 약속은 큰 부담없이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세법개정안 발표가 한달 이상 남은 시점에서 나온 증세방안을 놓고 여당내에선 “국정기획위의 대선공약에 대한 집착”이란 평가가 나왔다.

정확히 3주후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이 회의는 매년 예산안을 짜기 전 대통령이 모든 국무위원과 재정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자리다. 그런데 증세론이 이날 회의를 뒤덮었다. 복지를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서민과 중소기업은 빼고 돈을 많이 버는 일부 계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걷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을 지폈다. 그는 “과세표준 2000억원을 넘는 초대기업에 대해선 법인세율(현행 22%)을 25%로 인상하자”며 “소득 재분배를 위한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으로 현행 40%인 5억 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파장은 컸다. 집권여당 대표의 발언은 곧바로 증세논란으로 이어졌다. 속도전 양상을 띄었다. 당안팎에서 매일 증세 얘기만 나왔다. 주무부처 수장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보이지 않았다.

당내에선 여러 평가와 해석이 나온다. 여당이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청와대 개입설, 추 대표의 정치적 노림수 등 정치적 해석이 따라붙는다. 우선 민주당 원내대표단과 당직을 맡은 의원들은 올해 예산이 박근혜 예산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실제 문재인 예산은 올해 작업을 통해 내년에 편성된다.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정부답게 조세정의를 세우려면 지금 작업을 해야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수 있다. 여기에 추 대표가 앞장섰다는 분석이다.

최저임금 논란으로 꺾인 지지율 회복을 위해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추 대표가 그동안 당내·외 인사를 비롯해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등 주요 정책 집행때마다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는데 이를 푸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추 대표와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추 대표가 청와대와 정부를 대신해 증세론을 내세워주면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부담은 줄어든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측의 마음을 사려면 부자증세 카드만큼 좋은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가 당의 입지를 감안해 적극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당론으로 만들어놓은 부자증세 정책을 국정기획위를 통해 만들어놨는데 정작 청와대에서 이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자 당 대표가 직접 나서 힘을 실었다는 것이다. 실제 문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민보고대회에서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엔 증세를 시사하는 대목이 많이 담겼지만,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다. 다음날 열린 국가재정회의에서 추 대표가 이를 만회라도 하듯 작심하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증세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관계부처 등에서 시간을 두고 면밀하게 다뤄야 저항없이 추진할 수 있다”며 “최근 일주일새 여당을 중심으로 증세론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데, 정치적 계산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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