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초생활수급자는 '저축'도 하지 말라?

장선이 기자 입력 2017. 7. 26. 11:45 수정 2017. 7. 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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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소득층 우대 적금' 가입했더니

기초생활 수급비 80만 원으로 아버지와 둘이 빠듯하게 생활하는 대학생 이 모 씨는 내년 8월 적금 만기를 앞두고 걱정이 많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5.75% 고금리 상품으로 60만 원 이상의 이자소득이 생기지만, 이자 소득만큼 기초생활 수급액이 깎이기 때문입니다.

[이 씨 / 23세 (대구광역시)]
"은행에서 금리가 높고, 저소득층에 맞춘 상품이라고 해서 가입을 했는데 이자소득 공제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금리가 높다고만 말을 했어요. 라면 먹고 교통비 아껴가며 악착같이 저축했는데, 이렇게 깎일 줄 알았으면 저축을 안 했죠."

형편이 어려운 기초 생활수급자들을 위해 5~7%대의 높은 금리를 주는 금융상품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국내 3대 은행에만 저소득층 16만여 명이 가입해 있습니다. 하지만, 혜택을 받아도 이자 소득 대부분은 차감되다 보니, 결국 그 돈은 정부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 원금보다 손해 보기도…이의신청 빗발

이런 식이라면 원금보다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깁니다. 연리 6%짜리 적금을 들었다고 가정하고, 매달 5만 원씩 10년간 부으면 이자는 181만 원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적금 부어 생긴 이자 181 만원이 모두 소득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자 181만원 가운데 12만 원을 뺀 (1년에 12만원은 소득으로 간주하지 않고 공제해 줌)169만 원은 수급액에서 고스란히 차감됩니다. 이자 169만원을 받게 됐지만 그만큼 수급액이 깎이는 데다 이자소득세로 28만 원까지 내고 나면 (비과세 상품이 아닌경우 이자소득세15.4%를 내야함) 오히려 원금보다 16만원이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장롱에 돈을 넣어둔 것보다도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기초생활수급자 48살 유 모 씨는 아내와 아이 셋, 다섯 식구가 정부 지원금 150만 원으로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년간 저축한 청약통장 만기가 됐고, 원금 300만 원과 이자소득 140만 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자만큼 매달 11만원씩 차감되자, 해당 구청에 이의신청을 냈고, 몇 차례 문제 제기 끝에 돈을 환급받았습니다. 최근 지자체와 시민단체에는 이의신청이 빗발치고 있고, 관련 상품 해약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감사원·복지부 "이자도 소득"

복지부가 이렇게 이자 소득 액수만큼 차감을 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입니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기초생활 수급자의 월 만원이 넘는 이자소득에 대해 생계급여에서 차감하고 있습니다. 기초생활 수급자의 월 1만 원 초과 이자소득을 생계 급여에서 차감하는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기존에는 2천만 원 이상 이자소득을 급여 평가에 반영하고, 2천만 원 이하는 자진 신고할 경우만 반영했습니다. 그러다가 감사원이 부정수급 방지를 위해 모든 이자 소득에 대해 급여 평가에 반영하라고 권고하면서 수급비 삭감 조치를 취하게 된 겁니다.

복지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5조1항>에 따라 재산소득에 이자소득도 포함돼 있다며,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현행법상 체계라는 겁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간이 되는 ‘보충성의 원칙'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자 혜택만큼 지원금에서 삭감하는 현행제도에서는 생계급여에 의존하는 수급자들은 이자를 받기 위해 저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 '부정수급 막겠다'지만…계층이동 사다리 없애서야

박근혜 정부 들어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엄정히 관리해야 한다는 기조가 강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2013. 6. 24. 수석비서관 회의)
"부정수급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는 범죄 행위"
"강력한 의지로 부정수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종합 대책을 마련하라"

(박근혜 대통령. 2014. 9. 16. 국무회의)
"부정수급과 같은 재정낭비 사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해야"
 
[2013. 5. 14(화) 제1차 사회보장위원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발언>
"맞춤형 개별급여 개편과 관련, 국가의 책무뿐 아니라 수급자 자구 노력 등 개인책임 부분도 강조 필요"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소득증명 등에 대한 범부처적인 협조를 통한 상시적인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필요"

 
[2013. 7. 30(화) 제3차 사회보장위원회]
"저소득 가구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 정책은 제도의 부적정 수급자 예방 방안과 병행 추진 필요"
 
맞습니다. 귀한 혈세가 부정수급으로 낭비돼서는 안 되지요. 하지만, 10년 동안 원금 300만 원짜리 주택정약을 붓고 받은 이자소득 140만 원을 새로운 소득으로 보고 수급비를 삭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정수급자'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건 마른걸레를 비틀어 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기초생활수급비는 이 돈만으로 빠듯하게 한 달을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의 돈입니다. 정부는 약간의 근로소득이나 이자소득이 발생하더라도 이것을 소득으로 보고 수급비에서 삭감하는 조치를 반복적으로 시행하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기초생활 수급자들을 내가 약간의 여유로 일을 조금 할 수 있더라도, 일을 해도 그만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근로를 할 만한 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거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쓰러뜨리면서 수급자들에게는 빨리 돈 모아 탈 수급하라 종용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희망을 갖고 수급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정책의 칼날이 우리 사회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아닌, 부정부패한 기득권을 향하길 바랍니다.       

장선이 기자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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