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우대 무임승차 "어찌하오리까"

2017. 7. 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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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만성 적자 신분당선 유료화 추진… 복지와 도시철도 손실 사이의 해법은

수도권 전철에 타고 있는 노인 이용객들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서성일 기자

“물론 공짜로 타는 혜택이 좋은 건 사실이긴 한데, 그래도 완전 무임으로 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돈 내고 타는 게 나라 전체로 봐선 좋다는 생각도 들어.”-김효덕씨(78·경기 성남시 분당구)

“노인들한테 복지가 될 만한 게 교통비 깎아주는 것 말고 뭐 그리 많지도 않아요. 이것(도시철도 요금할인)마저 줄이면 없이 사는 양반들은 더 어려워질 것 아냐?”-박모씨(69·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로우대’는 낡은 느낌을 주지만 엄연히 노인복지법 제26조에 명시된 표현이다. 교통요금 할인은 바로 이 노인을 공경하며 우대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빠르게 진행 중인 한국 사회의 고령화 때문에 ‘경로우대’ 정책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더 이상 노인이 드문 시대가 아니게 되어버린 탓이다. 지하철과 같은 도시철도를 무임으로 이용하는 노인 인구가 늘면서 각 지역의 도시철도공사마다 손실이 늘어난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를 줄이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도 같다. 그 어느 정치세력도 앞장서기 어려운 문제다.

고령화로 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인구가 늘어나는 일은 역설적이다. 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점만 보면 환영할 만하지만, 그 비용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더구나 해당 복지정책의 감축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인구도 이미 늘어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더 큰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 한마디로 표가 날아가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도 선뜻 손대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운임변경 신고 받은 국토부 결정은

이러한 상황에서 민자 도시철도 신분당선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받고 있다. 신분당선은 만성적인 적자로 파산 위기설까지 나왔던 노선이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분당선이 내놓은 자구책 가운데 하나가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요금할인을 폐지하는 것이다. 신분당선 1단계 구간(강남~정자)을 운영하는 신분당선 주식회사는 국토교통부에 7월 7일 65세 이상 노인에게도 요금을 받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운임변경 신고를 했다. 기본요금만 2150원으로 여타 수도권 도시·광역철도에 비해 높은 운임을 받았던 신분당선이 전면 유료화되면 노인 등 그간 무임 혜택을 누리던 계층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분당선 측으로서는 이제는 요금할인을 폐지하는 것 외에 더 남은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적자가 누적돼 2014년 이후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누적적자는 3931억원에 달한다. 결국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RG)에 따라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야만 파산을 피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지난해 기준 예측수입의 39%에 불과한 실제수입이 50%를 넘어야 한다. 무임승차 승객 비율이 16.4%에 달해 그로 인한 손실이 작년 140억원을 넘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무임승차 폐지는 불가피한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보통 운영사가 운임변경 신고를 하면 국토부 승인을 거쳐 운임이 확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신분당선의 경우는 경로우대 요금감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국토부로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처지다. 국토부가 신분당선 측 요구를 받아들이면 수도권 전철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노인에게도 운임을 받는 노선이 된다. 이미 지속적으로 무임승차 손실 보전을 요구하고 있는 서울 등 전국 대도시의 도시철도 공기업에서도 요금할인체계 개편을 요구할 수 있다.

이미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도시철도를 운영하고 있는 6개 광역지자체에서는 지난 6월 새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현행 요금할인제도에 관해 재검토해줄 것을 건의한 바 있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 지자체협의회에 따르면 작년 도시철도 전체 승객의 16.8%(4억2400만명)가 무임으로 서비스를 이용해 총 5543억원의 운임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작년 순손실 8395억원 가운데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66%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5378억원으로, 전체 운영적자 7652억원의 70.3%를 차지했다.

3.9%였던 65세 이상 인구가 13.2%로 도시철도에 대한 경로우대 할인은 1980년 반액 할인으로 시작된 이래 1984년 전액 무임으로 변경된 뒤 큰 변화 없이 33년째 시행되고 있다. 초기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전액 요금할인은 이후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등에게로 확대됐다. 논란은 정책 시행 시점에 전체 인구의 3.9%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15년 기준으로 13.2%로 급격히 증가하는 고령화와 맞물리면서 생겨났다. 여기에 도시철도 운영이 2000년대 들어 중앙정부에서 각 지자체 산하 공기업으로 차차 이관되면서 중앙정부로부터 요금감면 손실액을 지원받지 못하게 되자 각 지자체의 지원 요구도 점차 높아졌다.

각 지자체와 도시철도공사의 주장대로라면 요금감면 정책에 손을 댈 필요가 시급해 보이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요금할인을 받는 나이를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올리거나, 아니면 할인폭을 현재의 전액에서 50% 할인으로 줄이는 등의 대책을 도입한다고 해서 손실 감소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 실제로 생긴 손실이 아니라, 현재는 받고 있지 않지만 만일 요금을 받았다면 들어왔을 예상수입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 무임승차와 관계없이 도시철도는 운행되기 때문에, 무임승차 폐지로 노인 승객이 줄어들거나 그간 요금을 내지 않던 노인 승객들의 요금을 더 받는다고 해서 현재의 손실이 비례해서 줄어들지는 않게 된다.

게다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을 감안하면 경로우대 요금할인은 월 10만원 이상의 현물급여를 통해 부족한 노인 복지를 보완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9.6%로 전체 노인의 절반가량이 빈곤에서 자유롭지 않은 실정을 볼 때 노인 무임승차는 오히려 훌륭한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3배 이상, OECD 회원국 평균 노인 빈곤율보다는 4배가량 높은 빈곤율에 시달리는 노년층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도 제각기 다르다. 불가피하게 복지혜택을 줄이는 것이 노년층에게 직접적 타격이 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은 해법이기 때문에 의견은 더욱 엇갈린다. 그럼에도 고령화로 인한 복지비용 증가는 사회 전체의 부담이므로 이를 골고루 분담하는 방향이 가장 적합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때문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경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복지경영학회 회장)은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들에게 이동권, 사회관계 확보 등의 측면에서 훌륭한 복지제도라는 점을 충분히 홍보해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수 동양대 철도운전제어학과 교수도 “무임승차 손실액을 정부가 보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힘들다면 자치단체와 비율을 나눠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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