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에 간 '야신' 김성근 "프로보다 재밌어..마음 편해서"

박소영 2017. 7. 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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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감독 있는 울산공고 인스트럭터 2개월차
프로야구 떠난 심정 "그립지 않고 홀가분해"
은퇴 후 여행·휴식? 야구장 오는 게 제일 좋아

25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5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협회 주최, 케이토토·하이원리조트 협찬) 1회전. 올해 첫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울산공고는 8회 초까지 설악고를 7-3으로 이기고 있었다.

울산공고는 이번 승리로 다크호스로 떠오를 절호의 기회였지만 8회 말 4실점하고 동점을 허용했다. 그리고 10회 말 승부치기 끝에 설악고에 7-8로 역전패했다. 다잡은 경기를 놓친 울산공고 선수들은 크게 낙담한 표정이었다.

이 때 경기장 한 쪽에서 쓸쓸한 표정을 한 사람이 있었다.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아쉽네. 아쉬워"하며 안타까워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현 울산공고 인스트럭터)이 25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5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 울산공고와 설악고의 경기를 감독실에서 지켜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20170725
김 전 감독은 지난 5월 23일 한화 지휘봉을 내려놓고 울산으로 떠났다. 원래 가까운 벗인 주인욱 동강병원 의료원장을 보러간 것이었다. 그런데 천생 야구인인 김 감독은 야구가 보고 싶어 울산공고 야구부를 찾아갔다가 인스트럭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마침 정미효 울산공고 감독이 김 전 감독이 신일중·고 감독으로 있던 1980년 당시 제자였다.

정미효 감독은 "김 감독님이 (한화를 맡으면서) 워낙 신경을 많이 쓰고 몸도 아팠기에 당분간은 야구를 안 보실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나 내 예상이 틀렸다. 야구 없이는 못 사시는 분"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야인이 되면 고교나 대학을 찾아 경기를 분석했다. 김 감독은 "원래 프로 감독을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고교나 대학 야구부를 찾아 가르쳤다. 그래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건 오랜만"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지난 2달동안 주 4회 정도 울산공고 훈련을 함께 했다. 그것도 선수단 구성원 중 가장 먼저 출근한다. 훈련하는 5시간 동안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고 선수들을 지도한다. 한화 감독 시절처럼 투수에겐 직접 투구 시범을 보이고, 타자에겐 배팅볼을 던져준다.

제5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대회 울산공고와 설악고의 경기가 25일 서울 목동경기장에서 열렸다. 3회초 1사 1,3루 울산공고 홍정민이 김시현 타석때 2루 도루를 성공시키고 있다 . 임현동 기자/20170725
포수 박선민(18)은 "김성근 감독님을 보고 얼떨떨했다. 엄청난 야구 지식으로 생전 보지 못한 다양한 훈련법을 가르쳐 주신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갔는데 배울수록 재미있다"고 했다. 1학년 투수 임우석(16)은 "공이 더 멀리 힘있게 나가도록 어깨와 팔꿈치를 잘 쓰는 방법을 배웠는데 정말 투구가 좋아졌다. 감독님 눈에 들면 하루에 200개씩도 던졌는데, 이틀 연속 투구는 안했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이날 울산공고 선수들 몰래 조용히 경기장을 찾았다. 김 감독은 "감독이 있는데 내가 나서면 안 된다. 나는 그저 야구가 보고 싶어 온 것"이라고 했다. 아직 선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한 김 감독은 1회 말 주자 3루에서 울산공고 선발로 나온 왼손 에이스 이성빈이 3타자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자 "잘 던지네"하고 칭찬했다.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프로야구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전이 12일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됐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일어서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잠실=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5.12/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현 울산공고 인스트럭터)이 25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5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 울산공고와 설악고의 경기를 감독실에서 지켜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20170725
한화 감독 시절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김 감독은 "한화를 떠나고 나서 프로야구 경기를 잘 안 본다. 하이라이트 방송만 서 너 번 봤다. 프로야구 감독 시절이 그립지는 않고 오히려 홀가분하다"며 "프로야구 대신 울산공고 경기를 자주 본다. 마음 편하게 봐서 그런지 재미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우리 나이로 76세다. 보통 사람들은 벌써 은퇴했을 나이다. 이제 좀 쉴 때도 됐을텐데, 김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구장 오는 게 쉬는 거야. 그래서 애들이 계속 이기면 좋겠어."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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