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자 할머니 떠난 나눔의 집.."나라도 지켜야지"

광주(경기도)=남형도 기자 2017. 7. 2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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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분위기 속 "20년 넘게 해결 못했다" 분노도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노제가 열린 25일 오후 나눔의집에 미국 뉴저지주 아시아역사연구모임 회원들이 방문해 고인이 된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25일 오전 11시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 향년 89세를 일기로 지난 23일 별세한 고(故)김군자 할머니의 노제가 끝난 뒤였다. 장례식이 끝난 뒤라 고단함이 밀려올 때지만 박옥선 할머니(94)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들어가서 주무시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도 "일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박 할머니는 "(김군자 할머니가 떠났으니) 나라도 나눔의 집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며 자리를 지켰다.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에 함께한 100여명의 추모객들이 돌아간 뒤 나눔의 집에는 정적이 흘렀다. 할머니들과 봉사자들, 나눔의 집 직원들은 김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거실 테이블 위에 누군가가 놓고 간 화분에는 김 할머니가 떠난 것을 보여주는 듯 꽃잎 한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장기간 봉사해 온 곽수연(가명)씨는 "김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 오면 늘 환하게 웃어 주셔서 매일 오면 보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며 "몸이 불편해진 뒤에는 일부러 주위 사람들과 정을 떼려고 하면서도 좋은 것을 감추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열린 故 김군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노제에서 고인의 영정이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흉상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뉴스1

이성순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은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대부분 피해 의식에만 젖어 계실 때에도 김 할머니는 남달랐다"며 "마이클 혼다 의원이 제기한 미의회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도 공이 컸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기부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그간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일갈도 이어졌다. 끝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떠난 고인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곽씨는 "20년 넘게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외치고 또 외쳤는데 결국 해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90)는 심경에 대한 물음에 "오늘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돌렸다. 곽씨는 "맨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말만 하는데 해결된 것이 없으니 이제 기자들도 보기 싫다고 하시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하루 전날인 24일 이 할머니는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박근혜 대통령을 뽑아준 책임이 누구한테 있느냐. 당신네들이 뽑지 않았느냐. 10만엔을 받고 팔아먹었느냐"며 "왜 이제 오셨느냐. 왜 우리한테 상처를 주느냐"고 말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통과시킨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침을 놓은 것이다.

나눔의 집에 걸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사진=남형도 기자

이날 나눔의 집에는 외국인들도 찾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문제를 접한 뒤 15년 넘게 봉사를 하고 있는 일본인 요코씨는 "저랑 비슷한 나이일 때 할머니들이 겪으신 일이고 같은 여성으로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일본인들은 현 세대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괜찮다고 하는데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요코씨는 이곳에서 봉사자인 한국인 남성을 만나 결혼도 했다.

미국 뉴저지에서 온 아시아역사연구모임 10여명도 나눔의 집을 찾았다. 이들은 마당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동상, 할머니들의 피해 실체가 담긴 사진 액자 등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사진을 찍었다. 미국인 빌씨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문제가 정말 슬픈 일이고 다시는 일어나면 안될 일"이라며 "일본 정부가 진실 규명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현재까지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실질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안 중 하나로는 해외를 중심으로 소녀상을 세우는 것을 제시했다. 안 소장은 "해외에서 소녀상을 세우면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때문에 일본 정부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며 "정부는 관련법에 따라 민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나눔의 집에 놓인 침상에 누워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나눔의 집 안쪽으로 들어가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세 분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거동은 물론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나눔의 집 간호사가 할머니들에게 주사를 놓을 때 "아프다"며 반복해서 외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이제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37명이다.

광주(경기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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