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장의 뉴스분석] 공론위 떠넘길 거면 국회·정부는 왜 있나

김종윤 2017. 7. 26.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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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 여부
정부 "배심원단 결정 수용" 밝혀
독일은 '원전 중단' 의회서 결정
국가 장래 좌우할 에너지 정책
책임 회피 말고 주체로 나서야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김지형(59) 전 대법관은 24일 “최종 정책 결정은 정부나 입법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공론화 위원회는 공사중단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한을 갖지 않고 자문 내지 보좌 기능을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위원회가 구성하는)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은 정부 정책으로 그대로 수용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1일 “공론조사에서 가부 결정이 나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1차 회의에 앞서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단]
국가 에너지 정책은 장기 비전에 따라 꾸려져야 한다. 경제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하는 방안과 환경오염과 대형 사고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산업경쟁력 향상과 국가 안보를 위한 고민도 담겨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을 뛰어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현 정부 내에서조차 법적 권한과 책임 소재를 정리하지 못한 공론화위나 시민배심원단에 국가 에너지 정책의 결정을 맡기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물론 국회가 그동안 정파의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주요 이슈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도, 타협도 못한 게 사실이다. 대안으로 시민이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정책 제안을 하자는 시도는 우리 사회에 협의와 타협의 씨앗을 뿌리는 실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대의(代議)민주주의 국가다. 유권자의 뜻에 따라 구성된 국회가 있다. 문 대통령도 국민의 손으로 선출됐다. 나라의 장래가 달린 에너지 정책을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한다면 왜 정부와 국회가 존재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 위촉식 전 홍남기(가운데) 국무조정실장과 김지형(오른쪽, 전 대법관,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대화를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인문사회 분야 위원 김정인 수원대 법행정학과 조교수,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연구원 부원장, 과학기술 분야 유태경 경희대 화학공학과 부교수, 이성재 고등과학원 교수, 조사통계 분야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갈등관리 분야 김원동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 총 9명으로 구성됐다. [공동취재단]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 핵심 과제를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에 맡기는 건 정부와 국회의 책임 회피”라고 말했다.

더욱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청와대가 국회를 우회해 공약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론조사를 이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이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론조사에서 자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공정한 논의가 안 되면 배심원단은 보고 싶은 내용만 보고 마음이 기우는 쪽을 지지하는 단순 투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사민·녹색·기민당 등은 탈원전 공론화 논의에 20년 이상 참여했다. 시민단체 등과 토론했고 최종적으로 의회에서 표결로 탈원전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에서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치열하게 논의하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3개월 활동하는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은 참조할 의견에 그쳐야 한다. 국가 대합의를 주도할 주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의원이지 시민배심원단이 아니다.

김종윤 기자 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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