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연수 탈 쓴 국외여행..의원님들 돈으로 가시죠

2017. 7. 2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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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 '묻지마 국외연수'
여행사가 짜는 '패키지 관광'
공무원은 '수행원'·보고서는 '짜깁기'

[한겨레]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지난 24일 충북도의회 앞에서 수해 속 유럽연수를 강행한 충북도의회 의원 4명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공

지난 5월 광주광역시 서구의회 의원 6명은 ‘패키지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사에서 짝을 지어준 일반인 11명과 함께 8박10일 동안 스페인·프랑스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비용은 예산에서 충당했다. 이들은 공무국외연수 계획에서 연수 목적을 ‘복지행정과 도시재생 선진지를 방문한 뒤 정책 개발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계획에 있던 쓰레기 소각 발전공장(스페인 마드리드)은 방문하지 않았다. 패키지 여행 상품 일정엔 들어 있지 않은 탓이다.

기록적인 홍수에도 유럽 국외연수를 떠난 충북도의회 의원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겨레>가 25일 취재한 광역·기초 지방의회 의원들의 국외연수 실태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목적부터 불분명…일정은 여행사에 문제의 씨앗은 의원들의 국외연수가 뚜렷하지 않은 목적에서 시작된다는 데 있다. 경북도의회 의원 13명은 지난해 10월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뉴욕·워싱턴으로 11박13일의 국외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목적은 뚜렷하지 않다. 연수계획서엔 “의정 현안 사항과 연계한 테마가 있는 선진행정 비교시찰로 도민 생활과 복지 증진에 필요한 정책과제 발굴 및 의정활동 전문성 향상”이라고 모호하게 적혀 있다. 의원들은 페루 마추픽추, 산악열차, 이구아수 국립공원, 코르도바주 예수상, 미국 국회의사당·백악관 등 유명한 곳을 돌아보고 왔다. 공식 일정은 페루 쿠스코시청사와 리마시의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의회를 방문해 경북도를 홍보하고 뉴욕경제인협회를 만나 면담한 게 전부다.

연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현지 일정도 통째로 일반 여행사에 맡기는 게 다반사다. 의원이나 의회사무처가 직접 여행 목적에 맞는 기관을 섭외하고 관련 일정을 짜는 데 전문적·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다. 최근 논란이 된 충북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 역시 위원장인 김학철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충주의 여행사를 선정해 연수 일정을 짰다. 인천·광주·울산·대구·충북·강원·제주 등 7개 지방자치 의회는 아예 관련 규정에 ‘공무국외여행’이라는 명칭을 쓴다. 장태수 대구 서구의원(정의당)은 “지방의회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전무해 대부분 여행사를 통해 해외연수를 가고, 의원 스스로 국외연수를 의정활동에 대한 보상적 차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각 의회는 연수 전 공무국외연수(여행)심사위원회에 계획서를 내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과 대학교수, 시민단체 등 9명으로 구성된 경기도의회 공무국외연수심사위의 경우 지난해부터 올해 현재까지 모두 21차례 도의원들의 국외연수 심사를 해 100% 통과시켰다.

공무원 동행, 왜?…술자리 응대에 술 심부름도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경기도의회 경제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프랑스 등 3개국 국외연수에 함께 다녀온 한 공무원은 <한겨레>에 “도의원들 술자리 응대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국외연수를 따라간 공무원들이 의원 수행원 노릇을 하며 ‘갑질’을 견뎌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경기도 한 기초 시의회 의장과 함께 호주로 국외연수를 다녀온 한 공무원은 “의장이 잠들 때까지 옆에 붙어 수행해야 했다. 의장이 전날 저녁에 과음해 아침밥을 호텔 뷔페에서 먹지 않겠다고 해서 아침밥을 따로 챙겨 방까지 배달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충북 지역의 한 공무원도 “호텔방 안에서 술을 먹으려고 안주를 사다 달라는 경우는 허다하다. 연수 방문지, 전문가 등도 공무원들이 일일이 다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공무원을 동행시키는 까닭은 부족한 의원 여비를 보충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경기도 포천시의원 8명은 의회사무처와 지자체 공무원 14명과 함께 지난달 독일과 스위스로 국외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경비는 1인당 328만원으로 의원당 배정 예산(250만원)을 넘었다. 이 때문에 1인당 더 많은 여비가 책정된 공무원(5급 389만원, 6급 이하 368만원)들을 많이 데려가 의원 자부담 몫을 채웠다는 의혹이 일었다.

연수보고서는 대필·짜깁기 ‘대충’ 각 광역의회 관련 규정은 국외연수를 다녀온 뒤 늦어도 30일 안에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 누리집 등에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방문 기관이나 관광지에 대한 포털 검색 정보를 짜깁기한 뒤 의원 1∼2명의 소감문을 덧붙여 만든 면피용 부실 보고서가 수두룩하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똑같은 내용의 글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방문기관 면담 결과도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유럽 5개국을 다녀온 충남도의원들의 보고서에는 기관을 방문해 누구와 면담했는지 아예 나와 있지 않다. 면담 때 의원들이 “응급환자 발생시 심폐소생술은 누가 실시 하는지”를 묻자 “소방서 전 대원이 할 수 있다”는 답을 하더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충북도 공무원은 “(연수를 동행해) 다녀와서는 보고서를 써야 하는 등 잡무가 많다. 의원들이 연수를 가지만 솔직히 연수 보고서를 쓰는 의원은 거의 없다. 방문기, 기행문 정도만 한 두명이 쓰면 보고서에 첨부하는 정도다”라고 털어놨다.

제대로 된 의원 연수를 하려면 전문가들은 사실상 견제 세력이 없는 지방의원들의 국외 연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의회 내 심사위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례적으로 가는 연수 자체를 없애는 것도 방안이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심사위가 제대로 기능해 연수 내용에 대한 사전·사후 검증을 해야 한다. 특별한 목적에 따라 심사위 통과 뒤 연수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강화해 해마다 연례 행사로 가는 관행도 없애야 한다”며 “전문가와 시민단체 활동가, 지역 주민이 동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전국종합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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