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사잇돌대출 출시 1년.."당국이 시키니까 하죠"

김형민 기자 2017. 7.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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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 정책 일환으로 추진 중인 사잇돌대출이 금융회사들에겐 부담을 주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복지'라는 이름으로 일선 금융사들에게 사잇돌상품을 판매하도록 하면서 금융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상품을 판매하는 상황이다.

조선DB

금융사들은 사잇돌대출의 경우 기존 영업환경에서는 도저히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A은행 여신담당 직원은 "시중은행들의 경우 4~6등급 중신용자에 대한 평가모형도 없다"며 "조만간 손실이 날 때를 대비해서 그냥 충당금이나 쌓을 준비나 하고 있는 심정"이라고 했다.

사잇돌대출은 중금리대출의 일종으로, 상환능력이 있는 중신용자(4~8등급)를 대상으로 1인당 최대 2000만원 한도로 운용된다. 금리는 은행의 경우 연 6~9%, 저축은행의 경우 9~16%까지다.

사잇돌대출은 대출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면 SGI서울보증보험이 전액 보장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상품 구조만 보면 금융사는 리스크를 지지 않지만 최고 5% 안팎의 보험료를 따로 서울보증보험에 내야한다. 부실이 발생하면 충당금도 쌓아야 하며 연체자에 대한 추심, 서울보증보험에 대한 환급 요청 등 사후관리 비용도 들어간다.

중신용자에 대한 대출 데이터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시중은행의 경우 중신용자를 대상으로 신용대출을 집행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적확한 대출 평가모형이 없어 SGI보증보험이 만든 모형을 가져다가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한 시중은행은 사잇돌대출 중신용자(4~6등급) 평가 시 일반 대출(1~3등급)로 그냥 승인심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들은 기존 중금리대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새희망홀씨와 사잇돌대출 상품이 충첩된다고 지적한다. 사잇돌이 수익성 측면에서 새희망홀씨보다 좋지 않고 인지도도 더 낮아 창구에서 사잇돌을 찾는 고객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새희망홀씨는 신용등급 5등급 이하 대출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으로, 사잇돌과 마찬가지로 한도 2000만원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 다만, 사잇돌과 달리 정부 보증이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새희망홀씨대출이 중금리 상품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사잇돌과 상충된다"며 "수익성 측면에서 새희망이 그나마 좀 나아서 은행 창구에서도 사잇돌보다는 새희망홀씨 상품을 먼저 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출시 1년을 맞은 사잇돌대출의 판매량도 정체된 상황이다. 시중은행은 지난해 7월부터, 저축은행은 같은 해 9월, 상호금융은 올해 6월부터 사잇돌대출을 판매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기존 1조원의 사잇돌대출 공급규모를 2조원으로초 확대하면서 판매를 독려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까지(7월 기준) 사잇돌대출 실적은 7828억원으로 당초 목표액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시중은행이 4549억원, 38개 저축은행이 3064억원을 판매했고 상호금융은 91억원을 취급했다.

주요 금융사들이 중금리상품을 취급하고 있는 곳이 많아 사잇돌대출 판매 유인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도 판매량 답보의 원인이다. 지난해 은행, 저축은행, 여전사의 중금리 대출 취급액은 9481억원으로 전년 대비 2.2배 늘었다. 이미 금융사들이 자사의 중금리 상품을 취급하고 있어 굳이 사잇돌대출을 판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주요 저축은행은 사잇돌보다 더 좋은 조건의 자체 중금리 상품을 가지고 있다”며 "사잇돌대출이 보증료를 납부해야 하는 등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어, 자체 중금리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사잇돌대출에 대한 당국의 드라이브가 더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정부의 금융정책 초점이 서민금융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인사청문회에서 “사잇돌대출을 확대하려면 취급 기관을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신협 등 다른 2금융권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보증 수수료 인하와 보증대상 요건 완화 등을 통해 금리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관치를 없애겠다는 금융당국의 외침도 사잇돌대출 같은 상품을 보면 공허해 보인다”며 “P2P나 인터넷은행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중금리대출을 자연스럽게 차지하도록 유도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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