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을 몰아낸 도시..성동구의 힘은 '상생'

장우성 기자 2017. 7. 25.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선6기 3주년 인터뷰]정원오 성동구청장
"성동이 지향하는 포용도시, 국가적 대세될 것"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18일 서울 성동구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7.1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요즘 대세 지식인, 유시민 작가에게 발끈한 공무원들이 있다. ‘사피오섹슈얼’이라는 말까지 유행시킨 tvN 인기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한 이 말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은 적은 없었다.”

서울 성동구 공무원들은 이 주장에 결단코 동의할 수 없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민선6기를 통째로 바쳤다. 이들은 실제 방송사를 찾아가 성동구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기적’을 설명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인류 역사상 막은 적이 없다’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당당히 맞서온 지자체장이다. 그 결과 성수동 건물주 중 62%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지역상권 안정화를 위한 자율협약에 동참했다. 2~3배 임대료를 덜컥 올려놓고 못 내겠으면 나가라는 건물주들이 흔한 요즘 세태와 딴판이다. 도대체 어떻게 설득한 것일까. 18일 민선6기 3주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에게 그것부터 물어봤다.

“성동구 공무원들의 헌신 덕분입니다. 건물주를 일대일로 만나 이해해줄 때까지 찾아갔어요. 그렇게 생각을 바꾼 건물주가 나서서 다른 건물주를 설득하고 홍보도 해줬습니다. 그 결과 평균치는 62%지만 성동구에 사는 건물주만 따지면 90% 이상이 상생협약에 참여하고 있죠.”

세입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들면 돌아오는 반격은 ‘사유재산권 침해’다. 건물주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념적 잣대까지 들이민다. 그런데 정원오 구청장은 이런 논리는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임대료를 100~200% 올려 영세 세입자가 쫓겨난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가 점령한다. 도시의 특성이 없어지고 손님은 줄고 상권은 점점 몰락한다. 뒤늦게 임대료를 내려도 상가를 못 채운다. 신촌과 이대앞, 압구정동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쉽게 말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상생’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문제가 풀린다. 그는 “상생이 자리잡은 성수동은 임대료 상승률이 지난해 9% 수준에서 올해 4.8%로 오히려 떨어졌다. 임대료가 내려가도 장사는 잘 되고 땅값도 오른다”며 “건물주와 세입자의 상생은 결국 지역이 장기적으로 잘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생 분위기는 8월부터 성수1가2동 서울숲길 일대에 대형 커피전문점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업체가 주민 동의없이 입점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까지 이끌어냈다.

그래도 상생의 사각지대를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다. 성동구는 이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안심상가’를 조성했다. 구가 상가를 매입해 임대료 상승으로 내몰렸거나 위기에 처한 상가 임차인을 단기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5년 이상 마음을 놓고 장사할 수 있는 장기 공공안심상가도 조성 중이다. ㈜부영과 MOU를 맺고 지하 1층, 지상 8층규모의 대규모 안심상가도 건립할 예정이다.

성수동 수제화공동판매장을 둘러보는 정원오 성동구청장 (성동구 제공)© News1

마무리는 법과 제도의 강화로 이룬다. 정원오 구청장은 성동구가 지역구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 ‘지역상권 상생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에 힘을 쏟고 있다. 성동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조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법은 국가는 지역상생발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도지사는 시행계획 수립과 상가임대료가 급등한 지역을 지역상생발전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양대산맥을 이룰 법이다. 그는 “지역상권 상생발전법이 제정된다면 임대료 안정과 도시계획적 접근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지속가능한 상생도시를 실현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와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즘은 격세지감도 느낀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싸웠던 지난 3년간 사실 벅차기도 했다. 중앙정부가 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 등장 이후에는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정책을 설명해달라는 곳이 줄을 섰다. 법무부 담당 검사부터 중소기업청 간부까지 성동구의 노하우를 궁금해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화두로 꺼냈다.

그래서 새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다. 정 구청장은 “도시재생은 과거 뉴타운과 같은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다. 임대료부터 올리고 보는 것이다”라며 “문재인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의 전제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6년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는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핵심으로 한 신도시 의제를 채택했다. 미래 세계 도시를 이끌어갈 어젠다인 포용도시는 성동구의 지향과 맞아떨어진다. 정원오 구청장은 “계층 간의 대립구도로 가면 그 도시는 비전이 없다. 포용도시가 성동구의 방향이며 앞으로 국가적 대세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밖에도 성동구에는 민선6기 들어 희소식이 많았다. 특히 장기 숙원이자 정 구청장이 취임일성으로 해결을 다짐한 삼표레미콘 공장의 이전이 사실상 확정됐다. 아직 현대와 삼표가 이전 부지 등 조율할 문제가 남아 마지막 도장을 찍지는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주시하면서 최종 합의문이 빨리 도출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다. 삼표레미콘 부지가 서울숲으로 확장되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문화복합시설을 유치한다는 게 정 구청장의 생각이다. 그는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런던의 밀레니엄 돔 같이 강변을 장식하는 멋진 조형물이 들어선다면 성동은 서울의 ‘머스트 비지트 플레이스’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원오 구청장은 6월 코스타리카와 쿠바를 다녀왔다. 한국보다 경제규모나 국민소득은 적은 나라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특히 뿌리내린 사회적경제와 선진적인 공공의료 시스템이 부러웠다. 하지만 성동구가 도입하기에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 지방정부의 고질적인 재정난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요즘은 희망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 실현’ 약속 때문이다. 물론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가 고집해온 철통같은 논리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힘들다. 그래도 국세, 지방세 비중이 6대4로만 조정돼도 지방정부에게는 엄청난 축복이다. 그는 “그동안 중앙부처가 묶어놓은 게 많아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가 없었다”며 “국가가 떠넘겼던 복지 매칭비용만 국가예산으로 소화해줘도 성동구의 가용재원은 줄잡아 연 200~3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재량껏 쓸 수 있는 예산이 20~30억에 불과하다.

민선6기 345개 공약도 이미 82%를 완료했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같은 초선 구청장에게 임기 4년은 너무 짧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전 의사를 묻자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정원오 성동구청장 프로필 Δ1968년생 Δ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Δ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졸업 Δ임종석 국회의원 보좌관 Δ열린우리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Δ민주당 부대변인 Δ성동구도시관리공단 상임이사 Δ노무현재단 기획위원 Δ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18일 서울 성동구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7.1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nevermind@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