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委·배심원단 법적 근거 없어.. 최종 책임은 대통령 몫"

황대진 기자 입력 2017. 7. 25. 03:09 수정 2017. 7. 25. 14: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전 공론화委 출범]
원로·전문가들 "충분한 시간 갖고 적법 절차 준수하는 게 중요"
- 공론화委·배심원단 대표성 있나
"원전 정책은 국가 에너지 대계.. 국민은 공론화委·배심원단에 결정 권한 위임한 적 없어"
- 전문가 참여도 필요
"고도의 전문적 지식 필요한데 일반 시민에 결정 맡겨서야"
- 책임 회피용 공론화는 곤란
"국민 의견 묻겠다는 건 좋지만 시민에 책임 미루는 식은 안돼"

정부가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발표하면서 '탈(脫)원전'을 향한 움직임에 공식 시동을 걸었다. 사회 원로와 각계 전문가들은 공론화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공론화위와 원전 중단 여부를 결정할 시민배심원단이 모두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인 만큼 최종 결정은 결국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내리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대의민주주의' 원칙 지켜야=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에 위배된다"고 했다. 허 교수는 "공론화위라는 게 헌법상 기구도 아니고, 전체 국민이 이 기구에 국가 백년대계인 원전 중단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위임한 일이 없다"면서 "헌법적 근거가 없는 공론화위가 이런 중대 결정을 하는 것은 소위 맨데이트(mandate·권한 위임)에 흠결이 있는 것으로 대의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했다. 공론화위나 시민배심원단은 법적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도 "국회의원을 국민 대표라고 하는 건 국민이 직접 선출하기 때문이지만 시민배심원단은 무작위 추출 방식이기 때문에 국민 대표로서 자격이 있느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설령 무작위 추출이 아니라 추천에 의해 정부가 선임을 한다고 해도 (친정부) 편향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4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현장. 이곳은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공사 일시중단을 의결함에 따라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3개월 동안 최소한 유지 작업 외에는 모든 공정을 멈춘 상태다. /김종호 기자

◇전문가 참여도 필요=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 대다수가 비전문가로 구성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로만 구성할 경우 '원전 마피아'처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집단의 목소리만 반영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반대로 전문가가 배제되는 상황에서는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살인 사건 같은 것들은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배심원을 할 수 있지만 원전 문제는 다르다"며 "치밀한 과학적·경제적 논의와 계산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런 것은 사라지고 정치적으로 '된다' '안 된다'는 싸움만 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도 "배심원단이 얼마만큼 정확히 상황을 판단할지 알 수 없고, 그런 일반 사람들의 얘기만 들어서 결정할 문제도 아니다"고 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원자력 전문가의 말만 들으라는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문제인 만큼 광장의 촛불에 의존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대학교수는 "공론을 들어보려면 탈원전에 대한 큰 방향 같은 걸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건 대통령이 이미 선언했고,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원전 공사 중단을 일반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맞지가 않는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시간'의 문제도 지적했다. 독일의 경우 공론화 방식으로 탈원전 정책을 결정할 때 20년이 걸렸는데, 우리 정부가 이를 3개월 만에 결론 내겠다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배심원단이 짧은 시간에 한두 달 공부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내려야=전문가들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내리는 것이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득표 인하대 명예교수는 "국가 주요 정책 결정을 공론화위나 배심원단이 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로 비칠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경우 결국 공론화 과정은 정치적 명분을 얻기 위한 편의적 조치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 대통령은 과거 당 대표 시절에도 위기에 몰리자 당원투표나 여론조사로 재신임을 묻자고 했는데 이번 공론화위도 그와 비슷한 행태"라며 "대통령이 시민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통령이 공약을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국민의 의견을 묻겠다고 한 것 아니냐"며 "공론조사 결과가 대통령 입장과 다르게 나올 수도 있는 만큼 공론화 과정의 부작용을 잘 검토해서 신중하게 시행한다면 국민 전체가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