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뀌었는데.. 공직사회에만 남은 外遊출장

조홍복 기자 입력 2017. 7. 25. 03:06 수정 2017. 7. 2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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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자율화 전 도입된 제도.. 선진문물 탐방 내세운 '낡은 관행'
지방의원이 年250만원 세금 써서 패키지 관광해도 아무 제재 없어
출장 관리 엄격한 기업과 큰 차이

최근 충북도의원들은 충북 지역에 최악의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 해외 연수에 나섰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조기 귀국했다. 흔히 '연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국회의원·지자체 의원·공무원의 공무 국외 여행이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수는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 '선진 문물 견학과 탐방'이라는 취지로 장려됐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는 요즘과는 맞지 않는 정책이다. 민간 기업에선 이 같은 외유성 출장이 사실상 없어진 지 오래다. 공직 사회에만 이런 시대착오적 세금 낭비가 남아 있는 것이다.

물난리 시기에 세금외유 사과 - 지난 22일 밤 충북도의회 김학철(왼쪽), 박한범 의원이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들은 충북 지역에서 사상 최악의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 외유성 해외 연수를 떠났다가 비난이 일자 조기 귀국했다. /신현종 기자

◇툭하면 '회기 중 외유(外遊)'

지난 22일 추경예산안 처리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족수가 부족해 소동이 벌어졌다. 본회의에 불참했던 여당 의원 26명 중 상당수가 해외 출장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임시 국회 도중 유럽으로 떠난 것이다. 작년 5월 정기국회가 열린 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데다, 단말기통신법 개정안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민생법안이 산적한 시기여서 이들의 처신이 문제가 됐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의원 외교 명목으로 해외에 다녀온 의원은 278명이었다. 이 중 90%인 252명이 회기 중에 다녀왔다. 19대 국회 4년간 351차례의 의원 외교에 세금 121억원(국회의장은 비공개라 제외)이 들어갔다.

◇대놓고 '패키지 상품' 이용

지방의원 연수제도는 1991년 지방의회가 30년 만에 부활하고, 1996년 관련 규정이 생기면서 활발해졌다. 광역·기초의원은 최대 250만원까지 받는다. 공무원이 해외를 나가려면 기관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시·도의회 의원들은 의장 결재를 통과하면 된다. 일부 지자체는 조례에 단순 목적의 국외 여행을 자제하도록 권고하지만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부적절한 시기'에 떠나는 외유성 연수가 특히 논란이 된다. 전남 시장군수협의회 회장인 박병종 고흥군수 등 전남 6개 지역 군수는 모내기를 하지 못할 만큼 가뭄이 심각했던 지난달 5박 6일 일정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 연수를 강행했다. 전북 정읍시의회 의원 11명과 수행 공무원 6명은 지난 2월 23일부터 8박 10일간 유럽 4개국을 돌았다. 당시 정읍에선 AI(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이 잇따라 발생해 축산 농민들의 시름이 컸다.

광주 서구의원 6명과 의회 직원 3명은 지난 5월 스페인과 프랑스를 8박 10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선진 도시의 행정 복지 사례를 활용하겠다고 취지를 밝혔지만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일반 관광객 11명과 섞여 다녀왔다. '패키지 연수'를 다녀온 이유에 대해선 "현지 공공기관 방문은 사전 교섭이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기업은 출장 중 관광 금지

공무 연수를 다녀오면 15~30일 안에 보고서를 의장 혹은 기관장에게 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어기거나 연수 내용이 비슷한 기존 보고서를 대충 짜깁기해 눈속임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공무원과 의원들의 외국 방문에 대해 "해외여행이 막혀 있던 시절 공무원들에게 해외 선진 문물을 배워 오라고 장려했던 것인데, 의미가 퇴색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서는 연수 제도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업무가 아닌 연수 개념의 단기 해외 출장은 없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출장 중 관광을 한 사실이 적발되면 문책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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