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위반 84%는 영세업자 후려치는 '乙질'

최종석 기자 2017. 7.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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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질 못지않은 '乙질·丙질'
업계 먹이사슬 관행이 문제
납품 단가 깎고 계약서 안 쓰고.. 알짜 중소·중견기업의 '乙질'
乙丙 관계는 적발도 쉽지 않아

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2015년 영세사업자인 거래처 12곳을 불러 놓고 납품 단가를 깎았다. 형식은 합의였지만 사실상 일방적인 후려치기였다. 더구나 납품단가 인하 적용 시점을 최대 243일 전으로 잡았다. 황당한 '소급 후려치기'로 A사는 2억96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지만, 영세사업자들은 매출이 확 줄어드는 바람에 인건비 지출 등 경영계획이 엉망이 됐다.

또 다른 자동차 부품업체 B사는 2014~ 2016년 납품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최저가 입찰을 실시하고선, 선정된 업체와 추가로 협상을 벌여 대금을 더 깎았다.

C사는 2014~2016년 수급사업자들에게 부품 가공을 맡기면서 계약서를 써주지 않았다. 계약은 구두로만 진행됐다.

이들 3개 기업의 공통점은 '갑(甲)'인 대기업이 아닌, '을(乙)'로 통하는 중소·중견기업이란 점이다. 이들은 자기보다 더 영세한 병(丙) 기업을 상대로 갑처럼 '을질'을 하다 적발돼 최근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알짜 중소업체들이 영세업체 상대로 '을(乙)질'

A사는 연 매출 7000억원의 중견 자동차 부품회사인 대원강업이다. B사는 연 매출 5000억원의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인 화신, C사는 기아 카니발을 고급스럽게 개조한 하이리무진 모델로 히트한 자동차 부품업체 KC모터스다. KC모터스는 매출은 500억원대지만 당기순이익이 80억원에 달하는 알짜다. 하지만 직원 5~6명이 일하는 영세업체들을 상대로 계약서도 쓰지 않는 불법을 저질렀다고 공정위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 구조만 생각하면 진짜 '을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다"며 "갑인 대기업 못지않은 중소·중견기업들이 을질, 병질을 하면서 갑을병정의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정위에 접수된 하도급법 위반 사건의 84%(2015년 기준)는 중소·중견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김상조 위원장도 지난 13일 중소사업자 단체와 간담회에서 "하도급법을 위반한 사업자의 79%가 중소 사업자"라며 "그런 중소 사업자들이 더 작은 영세 사업자들을 상대로 불공정 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무조건 보호해 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법을 어기는 중소·중견기업 상당수는 알짜 기업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절반 정도는 여력이 되면서도 법을 어기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중소기업일수록 상습적으로 하도급업체 괴롭혀

전문가들은 "중소업체들일수록 상습적으로 하도급법을 어기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상습적으로 하도급법을 어긴 기업 11곳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10곳이 중소·중견기업이었다. 공정위 측은 "매년 명단을 공개하는데 대기업이 포함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했다.

경남 진주의 중소 건설사인 대경건설은 3년 연속 법을 어기다 적발됐고 중견기업인 동일, 현대BS&C, SPP조선은 2년 연속으로 적발됐다.

공정위는 11곳 중 휴대전화 배터리 보호회로 제조업체인 넥스콘테크놀러지에 대해선 과징금 2억6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하도급업체에 줘야 할 하도급 대금, 어음 할인료, 지연이자 등 3억여 원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 업체는 최근 3년간 하도급법을 4차례나 위반했지만 또 적발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적발될 때마다 돈이 없다고 하면서도 자진 시정을 해 처분을 경감받아왔다"며 "더는 봐주기 어렵다고 판단해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 전문가 A씨는 "요즘 대기업은 회사 이미지를 생각해 대금은 꼬박꼬박 주는 편"이라며 "대외 이미지보다 당장의 수익을 더 따질 수밖에 없는 중소·중견기업이 잘못된 관행에 익숙해 있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처럼 을병 관계도 무시무시한 먹이사슬에 묶여 있어 공정위가 적발하기가 쉽지는 않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대동공업 사건의 경우 대동공업이 강매한 트랙터가 30대가 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영세한 수급사업자들이 거래가 끊길 것을 걱정해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았다"며 "조사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9대만 적발해 제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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