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에 발 올리고, 비키니에 히잡 .. 무슬림이 뿔났다

노진호 2017. 7. 2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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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이슬람 희화화" 비난에 공식 사과
다른 문화 비하, 인종차별 고질병
중동 지역 한류 확산에도 악영향
MBC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중동 백작 역을 맡은 최민수. [사진 각 방송사]
최근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가 이슬람 문화 희화화 논란에 휘말렸다가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국내외 네티즌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한국어·영어·아랍어 등 3개 언어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글로벌하게 소비되는 ‘한류’의 시대, 우리 콘텐트들이 타 문화 존중, 인종·소수자 차별 금지 등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국제적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죽어야 사는 남자’의 한 장면. 히잡 쓴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있다. [사진 각 방송사]
‘죽어야 사는 남자’는 중동 지역 가상의 왕국 보두안티아국에서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이 된 한 한국인(최민수 분)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드라마다. 19일 방송 첫 회부터 히잡 쓴 아랍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수영장에 누워있거나, 최민수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내보내 논란이 됐다. 여성의 노출이나 음주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메인 포스터에서 최민수가 코란 바로 앞에 발을 갖다 댄 자세를 취한 것도 논란에 휘말렸다. 때마침 전통적인 한류 강세 국가인 일본·중국의 한류가 주춤한 가운데 이어 중동·동아시아 등 이슬람 문화권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논란은 더 컸다. “요즘 한류열풍에 열광 중인 국가들 중 이슬람국가가 많이 있고 이슬람 문화를 소재로 쓸 생각이면 더 조심하고 더 존중해야하지 않았나 싶다” “외국분들이 매우 화를 내고 있다. 관련 장면 삭제해 달라”는 반응이 시청자 게시판을 달궜다.
급기야 해외 네티즌들까지 해당 장면을 캡처하고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해 SNS에 공유하면서 “보이콧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한국어 번역기를 이용해 “나는 무슬림 소녀입니다. 나는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틀린 생각. 무슬림들이 저 드라마 때문에 너무 짜증 나. 우리에 대해 잘 배워!” 같은 글들도 올라왔다. 극중 “공주 한 명을 사고 나머지 두 명은 가지라”는 대사에 대해서는 여성비하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에 제작진은 21일 드라마 홈페이지와 트위터 등에 사과문을 올리고 “아랍 및 이슬람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 부적절한 묘사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촬영 과정에서 부족했던 점을 엄밀하게 검증하고 더욱 주의를 기울여 제작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또 문제 장면들을 다시보기(VOD) 서비스에서 바로 삭제했다.
2014년 ‘개그콘서트’에서 극중 ‘무엄하다드’로 불려 논란이 됐던 정해철(왼쪽)과 ‘억수르’역을 맡은 송준근. [사진 각 방송사]
이슬람 희화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KBS 2TV ‘개그콘서트’는 ‘만수르’라는 코너도 제기됐었다. 당시 ‘무엄하다드’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선보였다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희화화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에 해당 캐릭터의 이름을 아예 호명하지 않는 것으로 바꿨다. 2015년 ‘개그콘서트’는 ‘명인본색’ 코너에서 일본인 희화화를 소재로 했다가 또한번 논란에 휘말렸다.
홍현희는 ‘웃찾사’에서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비판받았다. [사진 각 방송사]
지난 4월 SBS ‘웃찾사’는 ‘레전드매치’에서 개그우먼 홍현희가 피부를 검게 칠하고 파와 배추 등으로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채 무대를 꾸며 ‘흑인 비하’ 논란을 낳았다. 이에 앞서 3월에는 걸그룹 마마무가 단독콘서트에서 흑인 가수 브루노 마스를 패러디한다며 흑인분장을 한 영상을 틀었다가 국내외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비슷한 이슈가 최근 몇년 간 문화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인종차별이나 문화 다원성 같은 이슈들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문화콘텐트 수출이 오히려 한국 사회의 인권수준에 대한 자기 폭로가 돼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이자 아시아에서는 상대적 강대국이라는 다소 이중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가해자의 위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연구원은 “아무리 가상 국가라는 설정이어도 해당 지역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우리 드라마가 한류 선봉장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콘텐트 제작자들도 글로벌 수준의 인권·젠더 감수성이나 문화적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희정 방송평론가는 “한류를 우리 문화의 일방적인 전파로 봐서는 한계가 있다”며 “한류의 진정한 의미는 글로벌 문화 시장의 상호 교류와 이해”라고 지적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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