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취향] 남극점을 찍으니 알겠더라..'집이 최고다'
북극점·남극점 탐험한 극지 여행 전문가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기 위해 떠나
남극 여행 갈 때도 수영복 챙겨
Q : 배낭여행 1세대다 A : 여행 선구자라는 자부심이 있다. 해외여행자유화(1989년) 이전에 해외여행에 나섰으니까. 88년 당시 군 미필자가 해외로 나갈 방법은 딱 한 가지 ‘어학연수’였다.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지만, 그때는 ‘자비유학시험’이라는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했다. 영어시험인데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이어야 여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됐다. 국가고시에 통과하니 부모님은 ‘국비유학생’쯤으로 생각해서 여행을 허락한 듯하다. 어쨌든 겨우 60점 이상을 얻어 88년 난생처음 호주로 해외여행을 갔다.
Q : 여행 후 달라진 점이 있나 A : 여행 경험은 내 모든 것을 바꿔 놨다. 호주와 동남아 배낭여행을 마치고 예기치 않게 91년 대학생(홍익대 경영학과) 신분으로 여행사를 창업했다. 해외에서 만난 미국·유럽 등 서구권 여행자는 론리플래닛이라는 가이드북을 들고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여행정보를 얻을 길이 없어 대사관을 방문하는 게 고작이었던 시대이니 말이다. 91년부터 싱가포르 출판사를 통해 론리플래닛을 수입했다. 아예 독점 배포권을 따내고 싶어 93년 호주 멜버른으로 론리플래닛의 저자 토니 휠러를 만나러 갔다. 토니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Q :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를 꼽는다면 A : 남극이다. 지금껏 6번 남극을 여행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남극이라 하면 연구원이나 가는 곳으로 안다. 일본은 한해 500명 정도 남극을 여행한다. 남극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이나 칠레·아르헨티나에서 ‘크루즈’를 타고 와 바다 위에서 남극을 구경한다. 나는 좀 다른 방식으로 여행했다. 2007년 스키를 타고 남극 대륙을 질주했다. 60㎏ 가량의 짐을 썰매에 싣고, 하루 10시간 이상 스키를 탔다. 잠은 텐트에서 자고, 포대자루에 용변을 봤다. 샤워는 꿈도 못 꾼다. 꼬박 1달 동안 이동한 끝에 남극점을 찍었다. 전문 산악인인 허영호·고(故) 박영석 씨 이후 3번째로 남극점을 밟은 한국인이 됐다. 민간 여행자로서는 최초 기록이다. 사서 고생한 끝에 남극점을 찍고 든 생각은, ‘집이 최고다’라는 것(웃음).
Q : 남극에서 고생한 뒤 극지방 탐험은 멈췄는지? A : 남극점에서 집이 생각났던 건 가족이 그리워서였는지도. 그래서 이제는 아예 가족과 함께 떠난다. 2008년에는 아내와 ‘북극점’을 찍으러 나섰다. 북극은 거대한 빙하다. 바다에 표류하는 얼음덩어리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북극점’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북극 빙하에 공항을 만들었는데 북극 빙하가 움직이면 공항 위치도 변한다. 러시아에서 출발하려는데, 북극 공항까지 거리가 멀어져 비행기가 못 뜬다고 하더라. 다시 노르웨이 북단 롱이어반으로 가서 겨우 북위 89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들어갔다. 89도에서 90도(북극점)까지는 나침반을 보고 찾는다. 극지탐험에 나서는 이유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겸손해지기 위해서다. 남극이나 북극 등 원시 자연을 만나면 내가 지구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Q : 여행 베테랑으로서 챙겨가는 물건이 있나? A : 수영복. 따뜻한 나라를 갈 때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극 갈 때도 들고 갔다. 남극수영대회(polar plunge in antarctica) 참가 때 유용하게 썼다. 트레킹 여행을 갈 때도 꼭 가져간다. 걷는 중 우연히 마주친 호수에서 놀아야 하니까. 그리고 셔츠 한 벌과 로퍼도 반드시 챙긴다. 여행 중에 최소한의 격식 있는 복장을 갖춰야 하는 일이 꼭 생긴다. 미쉐린 레스토랑에 가거나, 미술관에 방문하거나 할 때 고어텍스 점퍼에 등산화를 신고 갈 수 없지 않나. 셔츠와 로퍼가 있으면 수트가 없어도 정장을 한 듯한 느낌을 낼 수 있다. 드레스코드를 맞추는 게 여행자의 중요한 예의범절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절대 들고 가지 않는 물건이 있다면, 김치나 고추장 등 한국음식을 꼽겠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양념 등을 활용해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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