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폭탄론의 추억' 12년 만에 맞붙는 여야, 증세 '작명 전쟁'

유정인 기자 2017. 7. 2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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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프레임 선점 위해 ‘여론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왼쪽부터)이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방향 당정협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 공론화 이후 여야의 증세 ‘작명 전쟁’이 불붙고 있다. ‘명예과세·핀셋 증세’로 엄호하려는 여당부터 ‘새발피 증세’ ‘세금폭탄’으로 공격하는 야당까지 원내 5당의 정치적 입장만큼 다양한 증세의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론의 파장이 어디로, 얼마만큼 튈지 모르는 ‘증세 전쟁’에서 유리한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의도다.

민심이 증세 향배에 결정적인 만큼 초반 ‘이름 짓기’ 작업부터 공을 들이는 것이다.

■ ‘명예과세’ vs ‘세금폭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슈퍼리치 증세’ ‘핀셋 증세’에 이어 ‘명예과세론’을 띄웠다. 자유한국당의 ‘세금폭탄론’에 대응하는 성격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와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명예과세’라고 부르고 싶다”며 “명예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호소드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 발언은 ‘슈퍼리치 증세’ 등 대상 한정을 강조한 용어에서, 증세 대상자들의 책임을 이끌어내는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접근법을 바꾼 것이다. 초대기업·초고소득자 등 대상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한편 이번 증세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려는 뜻이다.

반면 한국당은 ‘실험정부의 실험정책’이라고 못 박았다. 전통적인 ‘세금폭탄론’에 이어 또 다른 작명법을 꺼낸 것으로, ‘문재인 정부=아마추어 정부’로 낙인찍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홍준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실험정부가 실험정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국민들이 정당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가공할 만한 세금폭탄 정책이 현재는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한정되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연장될지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고 전반적인 증세 불안감을 자극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또 다른 보수야당인 바른정당 김세연 정책위의장은 “핀셋 증세라기보다는 ‘새발피’ 증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눈가웅’ 증세”라고 비판했다. ‘중부담 중복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는 만큼, 오히려 정부의 ‘핀셋’ 증세는 종합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취지다.

■ 노무현 정부 ‘증세 무산’ 넘을까

지금의 작명 전쟁, 프레임 대결은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한 증세 논의가 야당인 한나라당(현 한국당)의 세금폭탄론에 막혀 무산됐던 기억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말 증세 필요성을 띄운 뒤 다음해 ‘비전 2030’에 증세 청사진을 담았다. 25년간 1100조원의 추가 재정을 투입해 삶의 질을 높여 나간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증세론은 당시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발을 샀다.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으로 규정하고 맹폭했다.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6년 신년회견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파탄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정권이 반성은커녕 ‘세금폭탄’으로 나오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국민을 편 갈라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정치”라며 ‘집권 시 감세’를 약속하기도 했다. 결국 세금폭탄론에 밀려 여론의 추동력을 얻지 못하면서, 노무현 정부 증세안은 유야무야됐다.

문재인 정부가 증세 논의 초반부터 세금폭탄론을 ‘선동정치’로 규정하고 강경하게 나서는 것은 이 같은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세 물길을 돌려 본 경험이 있는 야당과 증세 실패 경험을 새긴 여당이 12년 만에 다시 전면 대결에 나서게 된 셈이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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